버스 운행을 마치고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는데, 채널을 돌리다 유덕화 얼굴이 화면을 꽉 채우고 있었습니다. 리모컨을 멈추는 데 0.1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중국 주재원으로 8년을 살면서 홍콩 영화를 워낙 달고 살았으니, 유덕화 얼굴은 저에게 일종의 조건반사 같은 것입니다.당나라 장안은, 내가 살던 그 땅이었다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은 서기 690년 당나라를 배경으로 합니다. 역사상 최초의 여황제를 꿈꾸는 측천무후(유가령 분) 앞에 심복들이 아무런 흔적 없이 불에 타 죽는 연쇄 변사 사건이 벌어지고, 황실은 "하늘의 분노"라는 민심의 공포 속에 뒤흔들립니다. 측천무후는 누명을 쓰고 변방으로 쫓겨났던 천재 수사관 적인걸(유덕화 분)을 급히 불러들여 사건을 맡깁니다. 적인걸은 잿더미만으로 수사를 시작해 황린(..
야간 버스 운행을 마치고 새벽에 귀가해 소파에 기댄 채 넷플릭스를 켰습니다. 채널을 돌리다 차은우 얼굴이 화면에 딱 뜨길래 "요즘 애들이 좋아한다는 배우가 저렇게 생겼구나" 하며 무심히 봤습니다. 그런데 임주경이 거울 앞에서 혼자 메이크업 연습을 하는 장면에서 그만 멈추고 말았습니다.화장 한 겹 뒤에 숨겨둔 나만의 민낯 이야기임주경(문가영)은 왕따를 당하고 자살까지 생각했던 아이입니다. 그런 그녀가 우연히 발견한 구원이 메이크업이었습니다. 완벽하게 포장된 '여신'으로 새 학교에 전학 가서 인기를 얻지만, 민낯이 들킬까 봐 늘 조마조마하며 살아갑니다. 드라마 전반에 깔린 이 긴장감이 단순한 하이틴 로맨스를 넘어서는 지점입니다.저도 '민낯'을 숨겨본 적이 있습니다. 2004년, 가족을 데리고 중국 산동성 청..
버스 운전 비번 날, 저는 보통 헬스장부터 갑니다. 2024년 10월부터 매일 1시간 이상 러닝과 턱걸이를 이어온 루틴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오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싶다는 이상한 충동이 생겼습니다. 예고편에서 스친 네온빛과 눈 내리는 홍콩 거리가 가슴 한편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15년을 살았던 사람으로서, 그 도시 특유의 냄새 같은 것이 화면 너머로 전해질 것 같았습니다.결론부터 드리면, 125분 내내 단 한 번도 핸드폰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 자체가 저에게는 최고의 평점입니다.금성무의 눈빛이 왜 그토록 오래 남는가금성무(진청우)가 연기한 차남 리우퉁은 말이 적습니다. 대사로 감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의 눈빛은 끊임없이 말을 겁니다...
버스 운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대개 밤 열두 시가 넘습니다. 씻고 소파에 기대면 그제야 허리가 좀 풀리는데, 그 시간에는 무거운 드라마보다 시원하게 치고받는 액션 한 편이 딱입니다. 유튜브를 뒤적이다 「생사위기」 예고편을 봤는데, 조문탁이 좁은 기내 통로에서 맨몸으로 테러리스트를 상대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순간 "아, 이 양반이구나" 싶었습니다. 황비홍. 2004년 청도 공장 숙소에서 혼자 밤을 보내며 케이블 TV로 보던 바로 그 배우였거든요.대사 없이 눈빛 하나로 모든 것을 전달한 조문탁의 연기조문탁이 연기하는 장즈융은 전직 특수부대 교관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그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한 전사의 용맹함이 아닙니다. 제가 가장 주목한 장면은 테러리스트들이 기내를 장악하는 순간, 장즈융이 아무 행..
버스 핸들을 잡은 지 벌써 6년이 넘었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명의 얼굴을 백미러 너머로 봅니다. 어느 오후, 한 중년 남자가 올라타더니 종점까지 내내 주식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정류장마다 멈출 때마다 숫자가 바뀔 때마다 그 표정이 달라지더군요. 종점 가까이에서 그 남자가 핸드폰을 무릎에 탁 내려놓고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그 얼굴이, 10년 전 사기 당하던 시절 거울 속 제 얼굴과 너무 닮아 있었습니다.일본 영화 〈미친 탐욕〉(원제: 蟲, 2025)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딱 그 남자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원제 '蟲(むし)'은 벌레라는 뜻인데, 탐욕에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벌레는 들어올 때 어디로 들어왔는지 모르게 스며들고, 한..
야간 운행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새벽 한두 시가 넘을 때가 많습니다. 그날도 허리 스트레칭을 하면서 습관처럼 폰을 뒤적이다 예고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정지소라는 배우가 낯선 공간에서 누군가를 묶어놓는 장면, 그리고 그 인질이 자기 이복언니라는 자막. 손가락이 멈췄습니다. 허리 아픈 것도 잊고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동생을 살리려다 선을 넘어버린 해란의 막다른 선택해란(정지소)이 이복언니 소진을 납치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동생의 수술비 10억. 이복언니가 부잣집에서 아무 부족함 없이 자라는 동안, 자기는 동생을 살리려고 남의 손발을 묶어야 했습니다.저는 이 장면에서 손이 떨렸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은 아니었지만, 가족을 살리기 위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혼자 떠안는 그 감각이 낯설지 않았기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