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운행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아내가 "오늘 같이 영화 한 편 볼까요?" 하더군요. 요양보호사 일 마치고 피곤할 텐데도 그런 말을 건네는 게 기특해서, 저도 허리 좀 풀고 소파에 앉았습니다. 마침 〈야당〉이 눈에 들어왔어요. 유해진, 강하늘이 나온다길래 크게 고민 없이 틀었는데, 123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보고 나서 한참 소파에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옛날 기억이 올라오는 게 어쩔 수가 없었거든요.황병국 감독의 연출 "악은 처음부터 악한 얼굴을 하지 않는다"황병국 감독, 솔직히 배우로는 익숙한 얼굴이지만 감독으로는 이번이 처음 접한 분입니다. 〈부당거래〉에서 국선 변호사로, 〈베테랑〉에서 생활형 캐릭터로 오랫동안 현장을 누빈 분인데, 바로 그 배우 경험이 이 영화 전반에 짙게 배어 ..
사기 피해로 모든 것이 무너지던 시기, 저는 이 영화를 봤습니다. 화면 속 아버지가 딸의 손을 놓지 않으려 버둥치는 장면에서, 저는 그만 핸들 위에서 참았던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상처는 회복의 시작점이 된다2013년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호프》는 2008년 실제 발생한 '나영이 사건'을 모티프로 합니다. 여덟 살 소녀 소원(이레 분)이 등굣길에 성폭력 피해를 입고, 가족이 그 충격 속에서 무너지고, 다시 천천히 일어서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영화는 사건의 잔혹함보다 그 이후의 시간에 집중합니다. 소원이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부터, 가족이 어떻게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껴안는지를 따라가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 서사입니다.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에서 철저한 절제의 미학을 선택했습니다. 영화 ..
새벽 네 시, 서울 도심을 달리는 버스 핸들을 잡고 있으면 가끔 이상한 생각이 떠오릅니다. 모든 것을 갖고 싶었던 사람이 결국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이야기. 1987년 극장에서 처음 봤던 영화 한 편이 그 생각과 함께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마스터즈 오브 유니버스》입니다.야망은 어떻게 영웅을 악으로 이끄는가이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이트너의 수호자 히맨(돌프 룬드그렌)이 스켈레터(프랭크 란젤라)의 음모를 막다가 우주 열쇠를 통해 지구로 떨어지고, 낯선 행성에서 평범한 십 대들 과 함께 다시 이트너로 돌아가 최후의 결전을 치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제작비는 턱없이 부족했고, 히트너 장면보다 지구의 황량한 교외 장면이 훨씬 긴 이유도 바로 그 예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포기하지 ..
하루 네 시간도 못 자는 날이 많습니다. 버스 핸들을 잡고, 보험 전화를 돌리고, 틈틈이 병원 동행 봉사를 마치고 나면 새벽이 되어 있습니다. 그 피로 속에서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을 봤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몸은 복제되어도 기억과 감정은 오직 하나의 미키에게 남는다.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면서도 섬뜩합니다. 머나먼 행성을 식민지화하는 우주선 안에서 '익스펜더블(expendable)'이라 불리는 존재, 미키 17(로버트 패틴슨)은 죽을 때마다 새 몸으로 복제됩니다.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또 투입됩니다. 그 과정이 반복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18번째 미키가 생성된 상태에서 17번째 미키가 살아 돌아옵니다. 시스템은 이 상황을 용납하..
영화 《듄: 파트 3》는 프랭크 허버트의 원작 소설 『듄 메시아(Dune Messiah)』를 바탕으로 제작 중인 드니 빌뇌브 감독의 SF 영화입니다. 황제가 된 폴 아트레이데스가 예언과 권력의 무게 속에서 인간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그릴 예정이며, 전작과는 다른 철학적 색채가 더욱 강조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2004년 중국 청도에 처음 부임했을 때, 저는 회사가 내린 역할을 짊어진 채 낯선 땅에 내던져진 사람이었습니다. 아직 개봉 전인 《듄: 파트 3》을 기다리는 지금, 그 8년의 감각이 자꾸 폴 아트레이데스의 얼굴과 겹칩니다.예언은 인간을 역할로 가둔다저는 중국에서 8년을 살았습니다. 한국 본사에서는 "현지 전문가"로 불렸고, 중국 직원들에게는 "본사 사람"으로 통했습니다. 어디에도 온전히 속..
영화 《오디세이(The Martian)》는 2015년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SF 생존 드라마입니다. 화성에 홀로 고립된 NASA 우주인 마크 와트니가 과학과 창의력,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의지로 살아남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앤디 위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2025년 영화 《오디세이(The Martian)》는 2015년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SF 생존 드라마입니다. 화성에 홀로 고립된 NASA 우주인 마크 와트니가 과학과 창의력,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의지로 살아남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앤디 위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새벽 4시, 텅 빈 서울 외곽도로를 달리다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핸들을 잡은 손, 창밖의 무인 가로등, 적막한 도로. 화성의 붉은 황야와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