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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신강림

    아내가 틀어놓은 드라마에 슬쩍 끼어든 게 화근이었습니다. "저 배우 누구야?" 한 마디에 시작된 《여신강림》 감상이 어느새 열두 편을 넘겼습니다. 60대 버스 기사가 청춘 로맨스 드라마에 빠져든 밤, 그 이야기를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민낯을 숨긴 채 새봄고에서 살아남기

    임주경(문가영)은 전 학교에서 외모로 왕따를 당한 아이입니다. 메이크업(화장 기술)을 무기로 새 학교 새봄고에서 '여신'으로 완벽하게 재탄생하지만, 민낯이 들킬까 봐 매일 노심초사합니다. 처음엔 "요즘 드라마답다"라고 가볍게 봤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이게 단순한 화장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과 혼자 있을 때의 진짜 모습 사이의 간극, 그게 이 드라마의 진짜 주제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살면서 그 간극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중국 산동성 청도·웨이하이에서 주재원으로 8년을 살았는데, 저는 항상 '한국 회사의 얼굴'이어야 했습니다. 말도 서툴고 문화도 낯설고 외로움은 쌓이는데, 겉으로는 늘 여유 있어 보여야 했습니다. 속은 흔들리는데 바깥으로는 괜찮은 척. 그게 저만의 메이크업이었던 셈입니다. 주경이가 민낯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문가영 씨 연기가 이 감정을 정확히 잡아냈습니다. 화장한 주경의 얼굴은 밝고 당당한데, 눈 속에는 언제나 들킬까 봐 조마조마한 빛이 숨어 있습니다. 웃고 있지만 웃지 않는 눈, 그 두 감정이 동시에 존재하는 표정이 이 배우의 핵심 연기력입니다. 화장을 지운 민낯의 주경은 어깨를 안으로 모으고 시선을 내리깔며 보폭이 작아집니다. 반면 풀 메이크업의 주경은 턱을 들고 보폭이 넓어집니다. 대사 없이 몸 하나로 이야기를 하는 배우, 참 드문 경우입니다.

    화장 뒤에 감춰진 이중 삶의 무게

    이수호(차은우)는 완벽한 외모와 성적을 가졌지만, 친구 세연을 잃은 죄책감을 혼자 짊어지고 있습니다. 차은우 씨의 연기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웃음이 눈까지 닿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세연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그의 눈은 초점이 흐릿하게 풀리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습니다. 눈물을 참는 사람보다 이미 눈물도 다 말라버린 사람의 눈이 더 무겁다는 걸 이 배우는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호의 그 혼자 짊어지는 무게가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제가 MRO 사업을 하다 사기를 당하고 무너졌을 때, 가족 걱정시키기 싫어서, 창피하기도 해서 아무한테도 제대로 말을 못 했습니다. 그냥 혼자 삭히면서 쿠팡 박스 날랐고, 배민 오토바이 탔고, 결국 버스 핸들을 잡았습니다. 여러분도 혼자 짊어지고 있는 무게가 있으신가요?

    황인엽 씨의 한서준은 능청스럽게 웃다가 혼자 있을 때 빠르게 가라앉는 표정의 낙차(감정의 급격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잡아냈습니다. 세 인물 모두 외면(外面)과 내면(內面) 사이에서 균열이 일어나는 캐릭터입니다. 드라마는 그 균열이 결국 서로를 통해 메워지는 과정을 그립니다. 로맨스(연애 서사)가 장르의 외피지만, 본질은 자기 자신을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보여주는 용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김상협 감독이 포착한 청춘의 진짜 얼굴

    김상협 감독은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도 웹툰 원작을 드라마로 풀어내는 능력을 인정받은 연출가입니다. 이 드라마에서 그의 연출 특징은 클로즈업(피사체를 가까이 당겨 찍는 기법)의 타이밍에 있습니다.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보다 감정이 올라오기 직전의 찰나를 잡아냅니다.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는 눈꺼풀, 입술을 살짝 깨무는 순간, 손끝이 떨리는 장면. 거기에 카메라를 들이댑니다.

    조명(라이팅) 활용도 눈에 띄었습니다. 주경의 화장한 모습에는 따뜻한 황금빛 조명을 쓰고, 민낯 장면에서는 형광등 느낌의 차가운 백색 광원을 씁니다. 같은 공간에서 조명 하나로 인물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배경음악(OST) 역시 대사보다 한 박자 먼저 감정을 예고합니다. 이 세 가지 연출 요소가 맞물릴 때, 이 드라마는 청춘 로맨스를 넘어서 심리극의 밀도를 획득합니다.

    추천 대상: 외모 콤플렉스를 겪어본 분, 이중적인 자아로 힘들었던 분, 차은우·문가영 팬, 웹툰 원작 드라마를 좋아하시는 분께 권합니다. 반면 느린 전개를 답답하게 느끼시는 분이나 학원물 장르가 맞지 않으시는 분께는 조금 길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별점: ★★★☆☆ (3/5)

    연기와 연출은 충분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멜로(연애) 공식에 기댄 전개가 아쉬웠습니다. 60대 버스 기사가 끝까지 본 드라마라는 것만으로도, 이 작품이 단순한 10대 드라마가 아님을 증명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