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키》(2016)는 이계벽 감독이 일본 영화 《열쇠 도둑의 방법》을 리메이크한 한국형 반전 코미디로, 목욕탕 열쇠 하나가 바뀌면서 냉혹한 킬러와 무명배우의 인생이 통째로 뒤집히는 이야기를 유해진·이준의 대조적인 연기로 풀어낸다. 가벼운 웃음 속에 계급과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슬며시 끼워 넣은 작품으로, 러닝타임 112분 내내 쉼 없이 웃다 보면 묘하게 뒤통수가 얼얼해진다.버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게 밤 11시가 넘었습니다. 허리는 뻣뻣하고, 발바닥엔 여전히 저림이 남아 있었습니다. 무거운 영화는 도저히 엄두가 안 나서 채널을 돌리다가 유해진 씨 얼굴이 화면에 걸렸고, "이 배우가 나오면 일단 믿는다"는 오랜 원칙대로 그냥 틀었습니다. 그게 《러키》와의 첫 만남이었습니다.비누 한 장이 뒤바꾼..
이철하 감독의 2026년 액션 코미디 《오케이 마담 2》는 꽈배기집 폐업 위기와 사춘기 딸과의 냉전으로 지쳐 있던 전직 요원 미영(엄정화)이 초호화 크루즈에서 납치 사건에 맞닥뜨리며 다시 한번 각성하는 이야기다. 박성웅·이상윤·려운·박진주 등이 가세해 1편보다 넓어진 무대와 두터워진 케미로 유쾌한 긴장감을 완성한다.작은아들이 아침에 출근하면서 문 앞에서 한마디 던졌습니다. "아버지, 오늘 비번이면 오케이 마담 2 보세요. 경찰서 동료들이 엄청 재밌다고 하던데." 큰아들은 경찰공무원이라 주말 근무가 잦아 같이 가긴 어렵다고 했고, 아내는 간호조무사 필기시험 준비로 교재를 펼쳐놓은 채였습니다. 결국 오후 비번을 맞아 혼자 CGV 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평일 낮인데도 중년 여성 관객들로 좌석이 제법 찼더군요..
〈문워크〉(2025)는 신현규 감독의 첫 장편으로, 자신의 탄생일에 사라진 할아버지를 찾아 혼자 길을 나서는 16살 정희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가족 영화입니다. 황지아, 유승목, 김민경이 주연을 맡아 말 대신 눈빛과 침묵으로 가족의 상처와 온기를 전달하며, 기장 일대의 실제 바닷가 풍경을 배경으로 어설프지만 따뜻한 성장 로드 무비를 완성했습니다.지난 주말 오전, 아내가 요양보호사 시험 준비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동안 저는 혼자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버스 핸들을 잡지 않아도 되는 하루가 어색할 만큼 가벼웠고, 상영 목록을 훑다가 〈문워크〉라는 제목에서 손가락이 멈췄습니다. "16살 아이가 사진 한 장 들고 할아버지를 찾아 가출한다"는 한 줄 소개가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두 아들이 중국 로컬학교를 다니던..
새벽 4시 반, 차고지에서 버스 시동을 걸며 저는 종종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떤 사람인가. 버스기사, 가장, 아빠, 남편, 아직 꿈을 버리지 못한 60대 남자. 살아오면서 불려 온 이름이 열 개가 넘습니다. 그리고 이름마다 저는 매번 다른 사람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언더커버데디'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멈칫한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위장하는 아빠. 어쩐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위장 근무하는 아빠, 그 눈빛이 모든 걸 들켰다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은 주인공의 "들키는 눈빛"입니다. 단단한 요원이어야 하는 장면에서도, 아이가 위험에 처하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마다 그의 눈에는 0.5초도 안 되는 찰나에 뭔가 흔들리는 빛이 지나갑니다. 그 흔들림이 이 영화 전체의 정서를 지탱..
버스 운전 비번 날, 저는 보통 헬스장부터 갑니다. 2024년 10월부터 매일 1시간 이상 러닝과 턱걸이를 이어온 루틴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오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싶다는 이상한 충동이 생겼습니다. 예고편에서 스친 네온빛과 눈 내리는 홍콩 거리가 가슴 한편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15년을 살았던 사람으로서, 그 도시 특유의 냄새 같은 것이 화면 너머로 전해질 것 같았습니다.결론부터 드리면, 125분 내내 단 한 번도 핸드폰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 자체가 저에게는 최고의 평점입니다.금성무의 눈빛이 왜 그토록 오래 남는가금성무(진청우)가 연기한 차남 리우퉁은 말이 적습니다. 대사로 감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의 눈빛은 끊임없이 말을 겁니다...
버스를 몰다 보면 한강 다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건넙니다. 저는 늘 그 물을 잠깐 봅니다. 신호도 아닌데 잠깐 보게 됩니다. 그게 버릇이 됐습니다."데스리버"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그 물이 먼저 떠올랐습니다.존재하지 않는 영화 앞에서, 존재하는 삶을 마주하다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이번에 이 영화를 찾아보려다가 당황했습니다. 국내 데이터베이스 어디에도 "데스리버"라는 제목의 작품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KMDB, 네이버 영화, 다음 영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이 영화를 봤다거나 기억한다거나 하는 건 거짓말이 됩니다. 60년 넘게 살면서 거짓말은 결국 사람을 더 좁은 데로 몰아넣는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10년 전 사기를 당할 때, 상대방의 거짓말이 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