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2023년 연출한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을 만들어낸 이론물리학자 J.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일생을 킬리언 머피가 연기한 전기 드라마다.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포함한 7개 부문을 수상했으며, 과학적 성취와 도덕적 죄의식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을 묵직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당신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나라를 위해, 전쟁을 끝내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그 명분들이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 "안 된다"라고 말하기가 불가능해지는 지점이 옵니다. 《오펜하이머》는 바로 그 지점에 선 한 인간의 이야기입니다.저는 이 영화를 퇴근 후 밤 열한 시쯤 소파에 앉아 틀었습니다. 하루 열두 시간 가까이..
조선호 감독, 홍경·노윤서·김민주 주연의 2024년 한국 로맨스·멜로 영화 〈청설〉은 2009년 대만 동명 원작을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청각장애인 수영 선수와 도시락 배달 청년의 사랑을 한국 수어로 담아냈다. 말 대신 손짓과 눈빛으로 전하는 소통의 본질을 청량한 초여름 색감 속에 섬세하게 풀어낸다.지난달 버스를 몰던 중에 있었던 일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노원 방면 노선을 운행하던 오후 2시 무렵, 50대쯤 되어 보이는 여성분이 정류장에서 올라타셨는데 교통카드 단말기에서 오류음이 울렸습니다. 뒤에 승객 네댓 명이 줄을 서 있었고, 저는 반사적으로 "잔액 확인해 보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제 입술을 물끄러미 보시더니 손을 귀 옆에서 살짝 흔드셨습니다. 저는 그제야 알아차렸습니다. 청각장..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키아누 리브스·견자단·빌 스카스가드 주연의 액션 스릴러로, 지하 세계 권력 조직 '하이 테이블'에 맞선 존 윅의 최후 사투를 담은 시리즈 4편입니다.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 '선택과 그 대가'를 묵직하게 파고드는 연출과, 흔들리지 않는 카메라로 담아낸 압도적 거짓 수 액션이 특징입니다.퇴근하고 들어온 날 저녁, 작은아들이 소파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물었습니다. "아버지, 존 윅 4 보셨어요? 유튜브에서 계단 장면이 난리 났던데." 저는 그때까지 존 윅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날 바로 동료 기사에게 예고편을 보여 달라 했고, 키아누 리브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또 일어서는 그 반복을 30초쯤 보다가 그냥 예매 버튼을 눌렀습니다. 2시간 49분 2시간 49분이라..
《슈퍼배드 4》는 크리스 리노드 크리스 리노드이 연출하고 스티브 카렐, 크리스틴 위그, 윌 페렐이 목소리 연기에 참여한 2024년 애니메이션 코미디로, 전직 슈퍼빌런 그루가 신생아를 맞이하며 다시 한번 가족과 정체성 사이에서 흔들리는 이야기를 담았다. 미니언즈의 유쾌한 소동과 새로운 빌런의 등장이 맞물리며 94분을 빠르게 채운다.오늘 아침 회사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40분 달리고 나서 턱걸이 봉 앞에 섰습니다. 10개, 쉬고, 8개, 쉬고, 마지막 6개. 작년 10월 처음 시작할 때는 3개도 버거웠는데, 이제는 세트 사이 쉬는 시간이 줄었습니다. 몸이 바뀌는 건 눈에 잘 안 띄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 달라졌구나" 하고 느껴집니다. 《슈퍼배드 4》를 보고 나서 딱 그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루가 빌런에서..
존 M. 추 감독, 신시아 에리보·아리아나 그란데 주연의 2024년 뮤지컬 영화로, 브로드웨이 원작을 160분의 대형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입니다. '착한 마녀'와 '나쁜 마녀'의 반전된 시선으로 편견과 우정,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며, 전 세계 박스오피스 7억 5천만 달러를 돌파한 2024년 최대 화제작입니다.당신은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걸 포기한 적 있습니까? 아니면, 반대로 '나쁜 사람'이라는 낙인을 감수하고서라도 자신의 길을 걸어간 적은요? 영화 《위키드》를 보고 나서 며칠째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습니다초록빛 편견이 만든 두 마녀의 온도차엘파바(신시아 에리보)는 초록 피부 하나만으로 태어날 때부터 낙인이 찍힌 존재입니다. 오즈 시즈 대학교에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그녀가 강..
〈화란〉(2023)은 김창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탈출구 없는 마을에서 살아남으려는 17세 소년 연규(홍사빈)와 이미 범죄 세계의 일부가 된 치건(송중기)의 이야기를 124분 동안 밀도 높게 담아낸 한국 누아르 드라마다. 화려한 액션 없이 인물의 눈빛과 침묵만으로 절망을 쌓아 올리는 연출이 이 영화를 다른 누아르와 구별 짓는 핵심이다.오늘 아침 회사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40분을 뛰다가 문득 〈화란〉의 마지막 장면이 머릿속을 스쳤다. 허리 강화 운동을 마치고 거울 앞에 서는데, 작년 이맘때만 해도 허리가 아파 제대로 서지도 못했던 내가 지금은 턱걸이 10개를 넘기고 있다는 게 실감 났다. 꾸준함이 방향이 된다는 것, 이 영화는 그 반대편을 보여준다. 방향을 잃은 사람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