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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윅 4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 키아누 리브스·견자단·빌 스카스가드 주연의 액션 스릴러로, 지하 세계 권력 조직 '하이 테이블'에 맞선 존 윅의 최후 사투를 담은 시리즈 4편입니다. 단순한 복수극을 넘어 '선택과 그 대가'를 묵직하게 파고드는 연출과, 흔들리지 않는 카메라로 담아낸 압도적 거짓 수 액션이 특징입니다.

    퇴근하고 들어온 날 저녁, 작은아들이 소파에서 핸드폰을 보다가 물었습니다. "아버지, 존 윅 4 보셨어요? 유튜브에서 계단 장면이 난리 났던데." 저는 그때까지 존 윅이라는 이름을 제대로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날 바로 동료 기사에게 예고편을 보여 달라 했고, 키아누 리브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고 또 일어서는 그 반복을 30초쯤 보다가 그냥 예매 버튼을 눌렀습니다. 2시간 49분 2시간 49분이라는 게 살짝 걸렸지만, 새벽 4시 반 기상에 이미 단련된 몸이라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텅 빈 눈빛이 말하는 것

    키아누 리브스의 존 윅은 4편에 이르러 말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겁습니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이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의 무감각한 눈빛이 화면을 가득 채웁니다. 대사가 한 마디도 없는 파리 계단 장면에서도 관객이 숨을 참게 되는 건, 그 공허한 눈빛이 몸의 움직임과 만나는 순간 폭발적인 에너지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견자단이 연기한 맹인 킬러 케인은 이 영화의 또 다른 중심축입니다. 눈을 감은 채 지팡이 하나로 공간 전체를 장악하는 동작은 무술의 경지가 아니라 예술의 경지였습니다. 케인은 존 윅과 싸우면서도 내내 슬픈 표정을 짓습니다. 적이지만 동료이고, 싸워야 하지만 죽이고 싶지 않은 그 감정의 층위를, 견자단은 눈을 감은 채 눈썹과 입 꼬리만으로 표현해 냈습니다.

    저는 버스를 운전하면서 승객들의 표정을 자주 봅니다. 룸미러로 보이는 얼굴들은 대부분 무표정이지만, 그 무표정 속에도 수십 가지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오후 2시쯤 혼자 탑승하는 중년 남성들의 얼굴이 특히 그렇습니다. 어디를 가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그 눈빛에서 무언가가 읽힙니다. 케인과 존 윅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딱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말이 필요 없는 상호 이해. 두 배우의 케미는 이 영화를 단순한 액션물에서 인간 드라마로 끌어올리는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의 연출 원칙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카메라를 흔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즘 액션 영화들이 흔드는 카메라로 긴박감을 만들어 낼 때, 존 윅 시리즈는 거의 모든 전투 장면을 고정 카메라나 완만한 이동 카메라로 담아냅니다. 혼란스럽게 편집해서 강하게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강해서 강하게 보이는 액션입니다.

    조명 활용도 탁월합니다. 파리 아르크 드 트리옹프 야간 전투 장면은 자동차 헤드라이트만을 광원으로 사용합니다.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그 화면은 현대적이면서도 서부극의 결투를 연상시킵니다. 오사카 호텔 전투의 붉은 조명, 베를린 클럽 씬의 형광 불빛까지, 각 전투 장소마다 전혀 다른 색온도와 분위기를 설계해 냈다는 점은 단순한 액션 연출을 넘어 시각적 건축에 가깝습니다.

    음악과 사운드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총성은 과장 없이 묵직하게 처리되고, 음악은 전투가 가장 격렬할 때 오히려 잦아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정적이 더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1984년 대기업 생산관리 시절, 제가 공장 라인에서 배운 것 중 하나가 '소음이 줄어드는 게 오히려 문제의 신호'라는 것이었습니다. 기계가 멈추면 공장이 조용해집니다. 이 영화에서 음악이 사라지는 순간들이 딱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무언가가 끝나기 직전의 정적. 그 감각을 감독은 사운드로 정확히 짚어 냈습니다.

    계단을 다시 오르는 사람들

    파리 사크레쾨르 대성당 앞 계단 전투는 이 영화의 정점입니다. 존 윅은 계단 꼭대기에서 총에 맞아 굴러 떨어집니다. 그리고 다시 기어오릅니다. 또 떨어집니다. 또 오릅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본의 아니게 픽 웃음이 나왔습니다. 옆 좌석 분이 살짝 쳐다보셨을 정도로요.

    웃음이 나온 건 남의 일 같지 않아서였습니다. 2024년 10월, 허리디스크가 심해져서 퇴근 후 소파에 그냥 쓰러지던 때가 생각났습니다. 한쪽 발바닥 저림이 심할 때는 계단 한 칸 내려가는 것도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러다 회사 헬스장을 기웃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러닝머신 시속 4킬로미터, 평지 걷기 20분이 전부였습니다. 다음 날 또 나왔습니다. 그다음 날도요. 지금은 매일 1시간 이상 러닝에 턱걸이, 허리 강화 운동을 더하고 있고, 허리가 눈에 띄게 호전됐습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보는 사람도 없고, 그냥 오늘 하루 또 해냈다는 것만 남는 시간. 존 윅이 계단을 굴러 떨어지고 다시 기어오르는 그 반복이 정확히 그 느낌이었습니다. 독자분들은 지금 어떤 계단을 오르고 있으신가요? 굴러 떨어진 적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다시 기어오른 적이 있으신가요?

    오사카 기차역 전투 장면에서 버스터 키튼의 슬랩스틱을 오마주한 연출이 삽입되는데, 그 장면이 묘하게 웃기면서도 처연합니다. 넘어지는 사람의 이야기를 웃음으로 포장한 버스터 키튼처럼, 이 영화도 비극을 스펙터클로 감싸고 있습니다.

    체계에 맞선 개인의 대가

    존 윅을 짓누르는 '하이 테이블'이라는 지하 세계 권력 구조를 보면서, 자꾸 중국에서의 시간이 겹쳐 보였습니다.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청도와 웨이하이 공장의 관리책임자로 있을 때, 저는 본사와 현지 사이에 끼인 존재였습니다. 본사는 원가를 낮추라 하고, 현지 직원들은 임금을 올려 달라 했으며, 납기는 항상 어제까지였습니다.

    그 체계 안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1984년 대기업 공채로 입사해 생산관리와 원가절감을 몸으로 배웠던 경험이, 청도 공장의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도 작은 개선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체계가 개인을 삼키려 할 때,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결국 '어떻게 버티느냐'입니다. 존 윅이 하이 테이블에 맞서는 방식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힘으로 부수는 게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아서 스스로의 선택을 완성하는 것.

    일본어 부제 '무쿠이(報い)', 즉 '대가'라는 단어는 이 영화가 전하려는 핵심을 압축합니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고, 그 대가를 회피하지 않는 것이 자유라는 것. 저는 2019년 중국에서 MRO 사업을 정리하고 빈손으로 귀국하던 비행기 안에서 그 생각을 했습니다. 누구를 탓하기보다, '내가 선택했고 내가 감당한다'라고. 지금의 버스 운전석과 N잡과 새벽 헬스장이 그 대가이고, 그 대가를 성실히 치르고 있다는 것에 오히려 당당함을 느낍니다.

    독자분들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지금 당신이 치르고 있는 '대가'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대가를 선택했을 때의 자신을 지금도 인정하고 있으신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이 영화는 모든 분께 권하기 어렵습니다. 2시간 49분이라는 러닝타임은 액션 영화치고 상당히 길고, 중반부 베를린 씬은 흐름이 다소 처집니다. 주제의식이 묵직함에도 불구하고 결말부는 다소 급하게 마무리된다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전 시리즈를 보지 않은 분이라면 인물 관계와 세계관 파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니, 1편부터 순서대로 보시길 권합니다.

    추천 대상을 꼽자면, 스타일리시한 액션 연출에 관심 있는 분, 오래 버텨온 사람의 이야기에 감정이입이 되는 분, 그리고 선택과 책임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화려한 영상으로 경험하고 싶은 분입니다.

    별점: ★★★☆☆ (3/5)

    — 액션과 연출은 5점, 서사의 완성도와 2시간 49분 조절은 2점. 그 평균입니다.

    총평 및 관람 포인트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말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이 영화는 그걸 몸으로 보여 줍니다. 계단을 굴러 떨어지고도 다시 기어오르는 장면이, 중국에서 사업을 접고 빈손으로 귀국하던 날의 제 심정과 겹쳐 보여서 한동안 자리를 못 떴습니다. 관람 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음악이 사라지는 순간들입니다. 총성도 대사도 없이 오직 정적만 남는 그 몇 초가, 이 영화에서 가장 무거운 대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