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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더커버 대디

    새벽 4시 반, 차고지에서 버스 시동을 걸며 저는 종종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떤 사람인가. 버스기사, 가장, 아빠, 남편, 아직 꿈을 버리지 못한 60대 남자. 살아오면서 불려 온 이름이 열 개가 넘습니다. 그리고 이름마다 저는 매번 다른 사람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언더커버데디'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멈칫한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위장하는 아빠. 어쩐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위장 근무하는 아빠, 그 눈빛이 모든 걸 들켰다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은 주인공의 "들키는 눈빛"입니다. 단단한 요원이어야 하는 장면에서도, 아이가 위험에 처하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마다 그의 눈에는 0.5초도 안 되는 찰나에 뭔가 흔들리는 빛이 지나갑니다. 그 흔들림이 이 영화 전체의 정서를 지탱하는 기둥입니다.

    저는 버스 운전을 6년째 하면서 백미러 너머로 수천 명의 얼굴을 봐왔습니다. 확신하건대, 진짜 감정은 언제나 말이 아닌 눈에서 먼저 새어 나옵니다. 피곤한 출근길 직장인이 문자를 보다가 갑자기 멍해지는 눈빛. 노인이 창밖을 보며 잠깐 가라앉는 눈빛. 주인공 아빠의 눈빛도 그랬습니다. "나는 요원이오"라고 몸 전체로 말하면서도, 눈만큼은 끊임없이 "나는 아빠요"를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장면에서 손을 잡는 동작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손에는 꽉 힘을 주면서도, 손목은 조심스럽게 받칩니다. 그 작은 동작 하나에 아버지라는 존재가 다 담겨 있더군요. 말이 아닌 몸으로 "나는 네 아빠다"를 표현하는 연기. 이것이 이 배우가 이 영화에서 해낸 가장 큰 성취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강한 척, 다 괜찮은 척하면서도 정작 소중한 사람 앞에서 눈빛이 흔들렸던 경험,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아이 시선 높이에서 포착한 따뜻한 세계

    감독의 연출 의도는 미장센(화면 구성 방식)에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카메라는 액션 장면에서도 유독 아이의 시선 높이에 자주 머뭅니다. 어른 허리춤 높이에서 바라보는 세상. 그 화각(카메라 앵글과 렌즈가 담아내는 시야 범위)이 "아이 눈에 이 세상이 얼마나 크고 낯선가"를 관객이 몸으로 느끼게 합니다.

    조명도 의도적입니다. 임무 수행 장면은 냉랭하고 날카로운 빛으로 처리되고, 아이와 함께 있는 장면에는 어김없이 황금빛 따뜻한 조명이 깔립니다. 이 대비가 영화 전체에서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명확하게 전달합니다.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어느 쪽인가."

    2004년 저는 가족을 데리고 중국 산동성 청도로 떠났습니다. 큰아들이 중국 로컬 학교에 첫 입학하던 날,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아이를 교실 앞에 세우고 돌아서는데 아이가 문 앞에서 저를 돌아봤습니다. 말없이 손을 한 번 흔들고 들어가더군요. 저는 그날 학교 담벼락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불안을 감추고 용기 있는 척, 다 계획된 척 살아왔는데, 아이 앞에서는 그 포장이 자꾸 얇아졌습니다. 언더커버데디의 주인공이 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장면마다 제 머릿속엔 그날 청도 학교 담벼락이 겹쳐 보였습니다.

    젊을 때는 이런 영화를 보면 "아, 재미있는 액션 코미디구나" 하고 가볍게 넘겼을 겁니다. 그런데 60대가 된 지금 다시 보니, 이 영화는 내내 "아버지란 무엇인가"를 물어보는 영화로 느껴집니다. 세트 하나, 소품 하나까지 그 질문을 향해 설계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이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어디였는지 댓글로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코미디 뒤에 숨겨진 진지한 질문 하나

    이 영화의 장르는 분명 패밀리 액션 코미디입니다. 웃음도 충분히 있고, 액션도 경쾌합니다. 그런데 감독은 그 코미디의 포장 안에 꽤 무거운 질문을 집어넣었습니다. 아버지라는 역할은 위장이면서 동시에 가장 진짜라는 역설.

    저도 오랫동안 강한 아빠를 연기했습니다. 10년 전 사기를 당하고 주식 리딩에 돈을 날렸을 때도, 아내에게는 한동안 숨겼습니다. 아내는 1999년 위암 수술을 받고 살아 돌아온 사람이라 "우리 많이 어렵다"는 말을 차마 먼저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에는 쿠팡 배달을 뛰고 낮에는 버스를 몰았습니다. 가족한테는 "요즘 좀 바빠서"라고만 했습니다. 위장이었습니다. 아빠라는 이름으로 하는 위장.

    그게 나쁜 것인지, 옳은 것인지 아직도 잘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는 압니다. 언젠가 아이들은 다 알게 된다는 것. 지금 큰아들은 경찰공무원이 됐고, 작은아들은 직장을 다닙니다. 어느 날 큰아들이 "아버지, 그때 많이 힘드셨죠"라고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말이 많지 않은 아이인데. 그 한마디에 뭔가가 툭 하고 풀렸습니다. 위장은 결국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모든 장면을 유쾌하게 풀어가면서도, 결말에서는 생각보다 긴 여운을 남깁니다.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중반부 이후 갈등 구조가 다소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조연 캐릭터들의 서사가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채 마무리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완성도만 본다면 더 깊어질 수 있었던 영화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추천하는 이유는 하나입니다. 웃으면서 보다가 문득, 나는 내 아이에게 어떤 아빠였는가를 조용히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님, 특히 바쁘게 살아오면서 가족에게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다고 느끼는 분들께 권하고 싶습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