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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리버] 존재하는 삶을 마주하다 ,강과 죽음, 버스 창 밖의 강

by 어성초님 2026. 6. 19.

데스리버

버스를 몰다 보면 한강 다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건넙니다. 저는 늘 그 물을 잠깐 봅니다. 신호도 아닌데 잠깐 보게 됩니다. 그게 버릇이 됐습니다.

"데스리버"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그 물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영화 앞에서, 존재하는 삶을 마주하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이번에 이 영화를 찾아보려다가 당황했습니다. 국내 데이터베이스 어디에도 "데스리버"라는 제목의 작품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KMDB(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네이버 영화, 다음 영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이 영화를 봤다거나 기억한다거나 하는 건 거짓말이 됩니다. 60년 넘게 살면서 거짓말은 결국 사람을 더 좁은 데로 몰아넣는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10년 전 사기를 당할 때, 상대방의 거짓말이 처음엔 그럴듯하게 들렸던 것처럼요. 그래서 저는 없는 장면을 있는 것처럼 쓰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데스리버"라는 제목 네 글자만으로도, 저는 꽤 오래 생각에 잠겼습니다. Death River, 죽음의 강. 그 두 단어의 조합이 묘하게 제 안에서 무언가를 건드렸습니다. 리뷰를 쓸 영화가 없는데, 써야 할 이야기는 생겼습니다. 그게 이 글의 시작입니다.

강이라는 것은 참 기묘한 존재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고대 그리스 철학자)가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매일 건너는 한강도, 매 순간 다른 물입니다. 흘러가는 물은 기다리지 않습니다. 중국 주재원으로 일하던 2004년, 황하를 처음 봤을 때 그 탁한 흙빛에 압도됐습니다. 황토고원에서 쓸려온 모래와 흙을 죄다 품고 흐르는 그 강이, 어쩐지 사람 인생을 닮았다는 생각을 지금도 합니다. 맑은 구간이 있고, 탁한 구간이 있고, 급류가 있고, 잠시 고요해지는 곳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지점도 영원히 머물지 않습니다.

제 인생에도 "죽음의 강" 같은 구간이 있었습니다. 2019년 무렵, 10년 가까이 공들인 중국 MRO(산업용 소모품 유지·보수·운영) 사업이 사기로 무너졌을 때입니다. 그 후 저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밤새 박스를 옮기고, 새벽엔 배민 배달을 뛰었습니다. 허리디스크가 있는 몸으로요. 발바닥이 저리고, 한쪽 귀는 잘 안 들리고, 혈압은 올라가 있는데 쉴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그 강이 얼마나 탁하고 빠르게 흘렀는지,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 구간에서 저를 건져낸 건 핸들이었습니다. 버스 핸들. 이상하게 들리실 수 있는데, 운전대를 잡으면 앞만 보게 됩니다. 백미러로 뒤를 확인하되, 방향은 앞입니다. 강이 어디서 왔는지보다 지금 어디로 흐르는지가 중요해지는 것처럼. 그게 제가 버스 운전에서 배운 메타포(어떤 것을 다른 것에 빗대어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제목 하나가 불러온 기억들  강과 죽음, 그리고 회복의 서사

"데스리버"라는 제목이 실제 영화로 존재하든 하지 않든, 그 단어가 자극하는 감정의 결은 분명합니다. 죽음을 향해 흐르는 강. 혹은 죽음처럼 보이는 그 흐름 속을 통과해서 어딘가에 닿는 이야기. 저는 후자를 믿는 사람입니다.

2025년 12월 21일, 저는 담배를 끊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겁니다. 금연(禁煙)은 정보로 알고 있던 것과 실제로 몸이 겪는 것이 완전히 다릅니다. 니코틴 의존성(뇌가 니코틴에 반응하도록 재편성된 상태)은 의지만으로 이기기 어렵다고 의사들이 말하는데, 저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의지가 아니라 약속에 기댔습니다. 사람과의 약속은 상황이 바뀌면 흔들리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은 제가 먼저 돌아서지 않는 한 변하지 않습니다.

담배 생각이 날 때마다 저는 강물처럼 흘려보내려 합니다. 크레이빙(craving, 강렬한 욕구 충동)이 올 때 억지로 잡으려 하면 더 거세집니다. 그냥 보내면 됩니다. 강물처럼. 죽음의 강이라고 이름 붙인 그 물도, 결국 어딘가에서 바다를 만납니다.

저는 지금 서울 시내버스 운전을 하면서 보험설계사 일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60대 초반에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고혈압약을 먹고, 허리에 파스를 붙이고, 이어폰을 한쪽만 꽂고 통화를 합니다. 그래도 지금이 탁한 황하의 구간보다는 훨씬 맑은 쪽이라는 걸 압니다. 배우자가 1999년 위암을 이겨냈고, 두 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살고 있습니다. 작은 것들이지만, 흘러가지 않고 남아있는 것들입니다.

만약 "데스리버"라는 영화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저는 그 영화가 이런 이야기를 담았으면 좋겠습니다. 강을 건너는 사람의 이야기. 죽음 같은 물살을 통과해서, 반대편 기슭에 발을 딛는 이야기. 극적인 반전이나 화려한 복수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냥 건너는 것, 그게 충분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버스 창 밖의 강 - 60대 기사가 읽는 삶의 유속(流速)

저는 매일 한강 다리를 건넙니다. 출근길 승객들은 대부분 핸드폰을 봅니다. 강을 보는 사람은 드뭅니다. 저는 그게 가끔 아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운전을 하는 저도 강을 '제대로' 볼 수는 없습니다. 그냥 잠깐 시선이 닿을 뿐입니다. 그 잠깐이 오늘 하루를 다시 잡아줄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유속(流速, 흐르는 물의 속도)이라는 게 있다면,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젊을 때는 급류처럼 빠르게 흐르는 것이 좋은 것인 줄 알았습니다. 중국에서 8년을 살면서 이 도시 저 도시를 다닐 때도 그랬고, 사업을 키울 때도 그랬습니다. 빠르게 흘러야 성공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사기를 당하고 나서, 쿠팡 새벽 배송을 하면서 알았습니다. 느리게 흐르는 것도 흐르는 겁니다. 멈춘 게 아닙니다.

버스 안에서 저는 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봅니다. 무거운 짐을 든 할머니, 학교 가기 싫은 표정의 중학생, 출근길에 눈이 풀린 직장인. 그 사람들 하나하나가 다 자기 강을 흘러가고 있습니다. 어느 구간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다들 흐르고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을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역할을 합니다.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그냥 그렇게 생각하면 핸들을 잡는 게 조금 더 단단해집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딸 때 배운 개념 중에 레질리언스(resilience, 역경에서 회복하는 심리적 탄력성)가 있습니다. 강이 바위를 만나 방향을 바꾸면서도 계속 흐르는 것, 그게 레질리언스와 닮아 있습니다. 부러지지 않고 휘는 것. 저는 제 인생이 부러지지 않고 휘어서 지금 여기까지 흘러왔다고 생각합니다.

"데스리버"가 언젠가 실제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저는 꼭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제대로 된 리뷰를 써드리겠습니다. 배우의 눈빛이 어떻게 흔들렸는지, 감독이 카메라를 어느 각도로 기울였는지, OST가 어느 장면에서 숨을 참았는지. 그건 그때 가서 쓰겠습니다. 지금은 그냥 이 제목 하나가 저한테 준 것들을 쓰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강은 죽음만 싣고 흐르지 않습니다. 다 싣고 흐릅니다.

이런 분께 권해드립니다. 삶의 어느 탁한 구간을 지나고 계신 분, 강물 같은 이야기에 위안을 받으시는 분, 그리고 영화 한 편 없이도 오래 생각하고 싶은 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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