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워크〉(2025)는 신현규 감독의 첫 장편으로, 자신의 탄생일에 사라진 할아버지를 찾아 혼자 길을 나서는 16살 정희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가족 영화입니다. 황지아, 유승목, 김민경이 주연을 맡아 말 대신 눈빛과 침묵으로 가족의 상처와 온기를 전달하며, 기장 일대의 실제 바닷가 풍경을 배경으로 어설프지만 따뜻한 성장 로드 무비를 완성했습니다.지난 주말 오전, 아내가 요양보호사 시험 준비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동안 저는 혼자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버스 핸들을 잡지 않아도 되는 하루가 어색할 만큼 가벼웠고, 상영 목록을 훑다가 〈문워크〉라는 제목에서 손가락이 멈췄습니다. "16살 아이가 사진 한 장 들고 할아버지를 찾아 가출한다"는 한 줄 소개가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두 아들이 중국 로컬학교를 다니던..
새벽 4시 반, 차고지에서 버스 시동을 걸며 저는 종종 생각합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떤 사람인가. 버스기사, 가장, 아빠, 남편, 아직 꿈을 버리지 못한 60대 남자. 살아오면서 불려 온 이름이 열 개가 넘습니다. 그리고 이름마다 저는 매번 다른 사람처럼 살아야 했습니다. '언더커버데디'라는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멈칫한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위장하는 아빠. 어쩐지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위장 근무하는 아빠, 그 눈빛이 모든 걸 들켰다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은 주인공의 "들키는 눈빛"입니다. 단단한 요원이어야 하는 장면에서도, 아이가 위험에 처하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마다 그의 눈에는 0.5초도 안 되는 찰나에 뭔가 흔들리는 빛이 지나갑니다. 그 흔들림이 이 영화 전체의 정서를 지탱..
버스 운전 비번 날, 저는 보통 헬스장부터 갑니다. 2024년 10월부터 매일 1시간 이상 러닝과 턱걸이를 이어온 루틴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어두운 극장 안에서 오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싶다는 이상한 충동이 생겼습니다. 예고편에서 스친 네온빛과 눈 내리는 홍콩 거리가 가슴 한편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중국에서 15년을 살았던 사람으로서, 그 도시 특유의 냄새 같은 것이 화면 너머로 전해질 것 같았습니다.결론부터 드리면, 125분 내내 단 한 번도 핸드폰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 자체가 저에게는 최고의 평점입니다.금성무의 눈빛이 왜 그토록 오래 남는가금성무(진청우)가 연기한 차남 리우퉁은 말이 적습니다. 대사로 감정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의 눈빛은 끊임없이 말을 겁니다...
버스를 몰다 보면 한강 다리를 하루에도 몇 번씩 건넙니다. 저는 늘 그 물을 잠깐 봅니다. 신호도 아닌데 잠깐 보게 됩니다. 그게 버릇이 됐습니다."데스리버"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그 물이 먼저 떠올랐습니다.존재하지 않는 영화 앞에서, 존재하는 삶을 마주하다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도 이번에 이 영화를 찾아보려다가 당황했습니다. 국내 데이터베이스 어디에도 "데스리버"라는 제목의 작품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KMDB, 네이버 영화, 다음 영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이 영화를 봤다거나 기억한다거나 하는 건 거짓말이 됩니다. 60년 넘게 살면서 거짓말은 결국 사람을 더 좁은 데로 몰아넣는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10년 전 사기를 당할 때, 상대방의 거짓말이 처..
버스 핸들을 잡으면서 영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정확히는 영화가 아니라, 오늘 버스에 탔다 내린 사람들 생각이다. 젊은 여자가 이어폰을 꽂고 창밖을 보는 표정, 점심시간도 아닌데 혼자 도시락 봉투를 들고 탄 30대 남자, 누군가에게 카카오톡을 보내다가 잠깐 멈추는 얼굴. 나는 그 얼굴들을 뒤통수로 느끼면서 운전한다. 손수현 감독의 독립영화 「프리랜서」(2024)를 처음 접하게 된 건, 그런 얼굴들을 오래 보아 온 내가 이 영화의 제목에서 뭔가를 직감했기 때문이었다.자유롭다는 말 뒤에 숨겨진 삶의 무게이 영화는 단편이다. 러닝타임이 짧다. 그런데 짧다는 게 얕다는 뜻은 아니다. 연수와 현지, 두 여자가 술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연수는 현지의 대범한 삶이 걱정되고, 현지는 연수의 경제 사정이 걱정된..
북한산 등산을 마치고 온몸이 땀으로 젖은 채 집에 들어와 씻고 나서 무심코 켜든 스마트폰에서 이 영화를 발견했습니다. 《디아블로(Diablo, 2025)》. 스콧 앳킨스라는 이름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액션 하나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배우라는 것을. 91분짜리 콜롬비아 배경 하드코어 리벤지 액션이라는 소개에 별 기대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들더군요. 화려한 격투보다 첫 장면의 표정 하나가 저를 붙잡았습니다.말 없는 눈빛이 대사보다 무겁게 박힌다스콧 앳킨스가 연기하는 크리스 채니(Chris Chaney)는 말이 극도로 적은 사람입니다. 15년을 교도소에서 보내고 출소하는 그 첫 장면, 감옥 문이 열리는 순간 그의 얼굴에는 자유의 기쁨이 없습니다. 억울함도, 분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