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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등산을 마치고 온몸이 땀으로 젖은 채 집에 들어와 씻고 나서 무심코 켜든 스마트폰에서 이 영화를 발견했습니다. 《디아블로(Diablo, 2025)》. 스콧 앳킨스라는 이름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액션 하나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배우라는 것을. 91분짜리 콜롬비아 배경 하드코어 리벤지 액션이라는 소개에 별 기대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세를 고쳐 앉게 만들더군요. 화려한 격투보다 첫 장면의 표정 하나가 저를 붙잡았습니다.
말 없는 눈빛이 대사보다 무겁게 박힌다
스콧 앳킨스가 연기하는 크리스 채니(Chris Chaney)는 말이 극도로 적은 사람입니다. 15년을 교도소에서 보내고 출소하는 그 첫 장면, 감옥 문이 열리는 순간 그의 얼굴에는 자유의 기쁨이 없습니다. 억울함도, 분노도 아닌 묵직한 결기(決氣) 무언가를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눈빛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절제된 연기가 오히려 더 깊이 꽂혔습니다.
앳킨스는 이 캐릭터를 과잉 없이 완성합니다. 죽은 여성의 유언 "내 딸 엘리사를 지켜달라"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그의 눈은 슬픔과 의무감 사이 정확한 어딘가를 가리킵니다. 입술을 꾹 다문 채 전달되는 그 무게가 긴 모놀로그(독백) 보다 훨씬 진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반면 마르코 자로(Marko Zaror)가 연기하는 사이코패스 킬러 엘 코르보(El Corvo)는 정반대의 신체 언어(body language)를 씁니다. 뱀처럼 비틀리는 몸짓, 웃는 듯 웃지 않는 표정. 그는 등장하는 것만으로 스크린에 냉기를 흘립니다. 액션 장면에서 자로의 움직임은 단순한 격투가 아니라 심리전입니다. 관객이 다음 동작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불규칙성이 공포의 핵심입니다.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chemistry)가 폭발하는 클라이맥스 대결 장면은 대사 한 마디 없이도 극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버스 운전을 하면서 매일 수십 명의 얼굴을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는데, 사람의 표정과 눈빛에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지 압니다. 앳킨스와 자로는 그 침묵의 언어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말없이도 그 사람의 감정이 전달된 순간을 경험해 본 적 있으십니까?
광야를 카메라에 담아 인간의 작음을 말한다
에르네스토 디아즈 에스피노사(Ernesto Díaz Espinoza) 감독의 연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카메라를 의도적으로 멀리 두는 방식이었습니다. 드론 샷(drone shot)과 롱 테이크(long take)를 활용해 콜롬비아의 광활한 지형 위에 작은 인간들을 올려놓는 미장센(mise-en-scène) 그 구도가 단순한 액션 이상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속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광대한 땅을 가로질러 달려가는 일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화면 가득 담아냅니다.
조명은 콜롬비아의 자연광을 적극 활용합니다. 어두운 이야기임에도 화면 자체는 선명하고 날카롭습니다. 그 선명함이 오히려 폭력의 리얼리티(사실성)를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음악 역시 긴장감을 인위적으로 부풀리기보다 행동과 침묵 사이에서 리듬을 조율하며 관객 스스로 긴장을 만들어 가도록 유도합니다. 감독은 "보여주되 설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예전에 저는 이런 류의 액션 영화를 볼 때 격투 장면의 타격감과 속도만 봤습니다. 그런데 60대가 되어 다시 보니 카메라가 어디를 향하는지, 왜 그 거리를 선택했는지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시각이 달라진 겁니다. 2004년 중국 산동성 청도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 기억이 납니다. 낯선 땅의 광대함 앞에서 저 역시 한없이 작은 존재였습니다.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간 가족 동반 주재원 첫날밤, 낯선 아파트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운 아이들이 "아빠, 우리 언제 한국 가?" 하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그냥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었습니다. 그 광야 같은 고요함 속에서 작은 인간 하나가 묵묵히 약속을 세웠던 것처럼, 크리스가 콜롬비아의 드넓은 들판을 혼자 달려가는 장면이 제 기억 속 그 방과 겹쳤습니다.
감독의 카메라는 그 외로움을 가장 정직하게 담아내는 방식을 알고 있었습니다.
조건 없는 약속 하나가 사람을 끝까지 움직인다
이 영화가 단순한 복수 액션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습니다. 크리스가 엘리사를 납치한 이유가 복수나 이익이 아니라 보호(保護)라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보상이 전혀 없는 보호입니다. 죽은 여성의 유언 한 마디가 전직 은행 강도를 움직이는 유일한 동력입니다. 납치의 형식을 취하지만 본질은 구출인 이 역설(paradox)이 이 영화의 핵심 서사 구조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보상 없이, 누군가의 부탁 하나만으로 위험한 일을 감당해 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10년 전 사기 피해와 주식 리딩 피해로 바닥을 찍었을 때를 떠올립니다. 그때 아내가 위암을 앓고 있었습니다. 1999년에 완치 판정을 받은 이력이 있었지만 경제적 위기 앞에서 건강까지 챙겨야 한다는 압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쿠팡 배달, 배민 라이더, 그리고 버스 운전까지 아무도 칭찬하지 않는 일들을 새벽부터 밤까지 이어갔습니다. 그것을 버티게 한 건 거창한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 곁에 있어야 한다"는 단 하나의 이유였습니다.
크리스가 엘 코르보의 칼날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장면에서 저는 그 시절이 겹쳐 보였습니다. 화려하지도,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싸움. 그럼에도 일어서는 사람. 이 영화는 그 평범하고 처절한 인간의 모습을 액션이라는 언어로 풀어냈습니다.
중국 로컬 학교에 아이들을 처음 보내던 날, 말 한마디 못 알아듣는 낯선 교실에 아들을 두고 나오면서 저는 혼자 주차장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여섯 달 뒤 그 아이가 중국 친구들과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걸 처음 봤을 때, 저는 차 안에서 몰래 눈물을 닦았습니다. 그 약속이 지켜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그런 순간이 있으셨습니까?
《디아블로》는 완벽한 영화가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엘리사 캐릭터의 내면 묘사가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크리스와의 관계가 감정적으로 더 쌓였다면 결말의 울림이 훨씬 컸을 것입니다. 콜롬비아 배경을 활용한 로케이션(현지 촬영)은 신선했지만, 카르텔 세계의 묘사가 다소 도식적으로 흐르는 부분도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스콧 앳킨스의 몸과 눈빛, 마르코 자로의 소름 돋는 존재감, 그리고 광야를 배경으로 인간의 작음과 약속의 크기를 대비시킨 감독의 연출력은 91분을 충분히 붙잡아 둡니다. 복수가 아닌 보호를 위해 달려가는 남자의 이야기가 필요한 분, 액션 속에서 인간의 의리(義理)를 찾고 싶은 분께 권합니다. 화려한 오락을 기대하셨다면 기대 이상이고, 깊은 드라마를 원하셨다면 조금 아쉬울 수 있습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