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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이스토리 5번째
    토이스토리 5


    만 60이 넘도록 이 나이에 아직도 장난감 얘기를 이렇게 진지하게 한다고 하면 웃을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새벽 두 시에 텅 빈 서울 도로를 버스로 달리다 문득 이 영화 생각이 났을 때, 저는 그게 장난감 얘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기억은 관계의 첫 번째 뿌리다

    1984년 대기업에 입사하던 날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스물도 안 된 나이에 넥타이를 매고, 이름 석 자가 새겨진 사원증을 목에 걸던 그 아침. 그때의 저는 제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역할이 있었고, 호명되었으며, 그 자리가 곧 제 존재의 이유였습니다.

    우디가 앤디의 방에서 가장 오래된 장난감으로 대우받던 시절도 그랬을 겁니다. 선반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세계가 전부였고,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 충분함이 얼마나 위태로운 기반 위에 서 있었는지는, 세월이 지나 봐야 압니다.

    토이 스토리 5는 기억이라는 장치를 서사의 중심에 놓습니다. 성인이 된 앤디 세대를 겨냥한 이 작품이 실질적으로 건드리는 감정은, 어린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나는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가깝습니다.

    픽사가 이 내러티브 앵커를 이 시리즈에서 일관되게 사용해 왔는데, 1편부터 4편까지 그 고정점은 언제나 '관계의 기억'이었습니다. 앤디가 우디의 이름을 신발 밑에 써두었다는 사실, 버즈가 스스로를 장난감이 아니라 우주전사라 믿었던 기억, 그 모든 것이 이 시리즈를 장난감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이야기로 만들어온 원동력입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앤디처럼 누군가를 기억하는 행위를 나는 과연 충분히 해왔는가. 2004년 중국으로 떠나던 날, 배웅 나온 몇몇 동료들의 얼굴을 저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동료들이 저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기억은 늘 일방적이거나, 비대칭적이거나, 혹은 왜곡되어 있습니다. 5편이 이 비대칭을 정면으로 다룬다면, 그것은 단순한 속편 이상의 무게를 가질 것입니다.

    유대는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다

    2004년 중국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저는 꽤 오랫동안 이방인이었습니다. 언어가 안 되는 것보다 더 힘든 건, 제가 쌓아온 맥락이 아무런 통용화폐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이십 년을 일한 경력이 그곳에서는 그냥 '모르는 외국인'이었습니다.

    버즈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며 혼란에 빠지던 장면들이 저는 왜 그렇게 마음에 걸렸는지, 이제는 압니다. 그건 그가 장난감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알아주는 관계로부터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대가 단순한 친밀감이 아닌, 정체성의 거울로 기능한다는 점이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다른 애니메이션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입니다.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을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토이 스토리의 장난감들이 왜 혼자서는 언제나 불안한지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기 피해 이후 쿠팡 배달을 뛰고, 배민 알바를 하고, 지금 버스 운전대를 잡기까지의 시간 동안 저를 붙들어준 것은 의외로 제도나 시스템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간을 버티게 해 준 건 제 곁에 아직 남아 있던 몇 개의 관계였습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자주 연락하지도 않지만,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

    우디와 버즈의 재결합이 5편의 중심축이라면, 픽사가 그 재결합을 어떻게 연출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감동의 공식을 그대로 반복한다면 관객은 그 순간을 느끼기 전에 먼저 계산할 것입니다. 주인공들이 왜 그 선택을 다시 하게 되는가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유대는 감정의 자원이 아닌 장르의 관습으로 전락합니다. 앤드류 스탠턴 감독이 이 지점에서 어떤 새로운 감정적 언어를 꺼내드는지, 그것이 이 영화의 진짜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영속성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증거다

    새벽 두 시, 텅 빈 강변도로를 달릴 때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 이 버스에 탄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나는 이 노선을 달리고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 차는 제시간에 이 자리에 있어야 한다.

    영속성(Permanence)이라는 감각, 이 영속성이라는 감각은 사실 어른의 감정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눈앞에 없을 때도 그 존재를 유지시켜 주는 행위입니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궁극적으로 묻는 것은 "장난감이 무엇인가"가 아닙니다. "쓸모를 잃은 존재는 어디로 가는가"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이 만 60세를 넘긴 저에게도 여전히 유효하고 절실한 이유는, 그 물음이 장난감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2023년 성령충만을 경험하고, 2024년 세례를 받으면서 저는 처음으로 '내려놓음'이 패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전까지는 쓸모없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우디가 자신이 더 이상 선택받지 못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장면이 성장 서사가 아니라 실존 드라마로 읽히는 이유는, 그것이 자존심을 내려놓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내려놓음 이후에도 우디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존재는 역할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4편이 충분히 아름다운 마침표였다는 점에서 5편의 존재 자체가 논쟁적입니다. 프랜차이즈의 상업적 필요와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완결 사이의 긴장감은 5편이 끝내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를 기다립니다. 하루 4시간도 채 못 자고, 고혈압 약을 챙겨 먹으며, 금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새벽에도 이 버스를 몰고 있는 건, 어쩌면 아직도 누군가의 손에 쥐어지기를 기다리는 장난감처럼 이 삶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영속성이란 그런 것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있는 것. 쓰이지 않아도 남아 있는 것.

    이 영화는 아이와 함께 극장에 가서 아이에게는 우디와 버즈의 모험을 보여주고, 본인은 그 옆에서 조용히 다른 무언가를 울고 오고 싶은 분께 권합니다. 특히 40대 이후, 한 번쯤 자신의 역할이 흔들렸거나 새로운 시작을 강제로 맞이한 적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는 위로보다 묵직한 공명을 건넬 것입니다.

    총평 및 관람 포인트

    4편으로 끝났어야 했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역할을 잃은 뒤에도 존재는 계속된다는 이 시리즈의 핵심 질문이, 상업적 속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효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국에서 15년을 보내고 돌아와 쿠팡 배달과 버스 운전으로 다시 시작했을 때, 저는 이미 그 질문을 몸으로 살아냈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볼 때는 우디가 선택받는 순간보다 선택받지 못한 채로도 그 자리에 있는 장면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픽사가 그 장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이 영화의 진짜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