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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초, 중국 산동성에서 MRO 사업을 벌이던 저는 한국 출장길에 혼자 극장 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가족도, 아는 사람도 없이, 지친 몸 하나만 이끌고 들어간 어두운 극장에서 저는 두 시간 내내 입을 틀어막고 울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뺨이 젖어 있었고, 그 이유를 한참 동안 말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압니다. 스크린 속 덕수의 삶이 어딘가는 제 아버지의 이야기였고, 또 어딘가는 제 자신의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황정민이 억누른 눈물로 완성한 '짐을 진 남자'의 연기
황정민의 연기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억누름'입니다.
덕수는 웁니다. 하지만 절대 남 앞에서 먼저 무너지지 않습니다. 황정민은 그 경계선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듯 표현합니다. 독일 광산 사고 장면에서 동료 달구가 갱도 속에 갇혔을 때, 그의 눈빛은 공포와 책임감 사이에서 진동합니다. 눈물이 맺히지만 흘리지 않습니다. 입술을 꾹 다물고 턱을 약간 올리며, 오히려 달구를 향해 소리칩니다. "야, 정신 차려!" 그 몸짓 하나에 덕수라는 인간 전체가 담겨 있습니다. '나는 무너지면 안 된다'는 자기 명령이 몸 전체에서 배어 나오는 방식, 그것이 이 배우가 이 역할에 가져온 가장 큰 선물입니다.
노년의 덕수가 '꽃분이네' 창고에서 아버지 사진 앞에 쭈그려 앉아 오열하는 장면은 영화 전체의 정점입니다. 대사는 단 두 마디입니다. "아버지, 나 이만하면 잘 살았지요? 근데 솔직히 너무 힘들었거든요." 60년 치의 고단함이 그 짧은 문장 하나로 터집니다. 기교가 없습니다. 그냥 한 노인이 평생 참았던 것을 비로소, 아버지 앞에서만, 꺼내놓는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이 말은 이 사람 앞에서만 할 수 있다'라고 느낀 순간이 있으셨습니까? 저는 그 장면에서 처음으로 극장 안에서 소리를 내어 울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옆자리가 비어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배우의 몸짓이 곧 캐릭터의 내면이 되는 연기를 이 영화처럼 선명하게 보여준 한국 영화는 많지 않습니다. 김윤진의 영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 병원 복도에서 피투성이가 된 덕수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울다가도 표정이 굳어집니다. '이 남자 옆에 있어야겠다'는 결심이 얼굴로 고스란히 번지는 그 찰나, 말 한마디 없이 영자의 평생이 결정됩니다. 두 배우가 대사 없이 나누는 그 장면은, 제가 지금도 자주 떠올리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지하 수백 미터 광산과 이역만리타국에서 버틴 산업화 세대의 삶
덕수가 남동생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독일 광산으로 떠나는 장면을 볼 때, 저는 2004년 중국 산동성 청도로 첫 발령을 받던 날을 떠올렸습니다. 비행기 창밖으로 한국 해안선이 사라지던 그 순간, 마음 한구석이 싸늘하게 내려앉던 감각. 저는 혼자 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어찌 보면 덕수보다 나은 상황이었지만, 타국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무게만큼은 똑같이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큰아들이 중국 로컬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아이는 중국어를 한마디도 몰랐습니다. 선생님이 뭔가를 물었고 아이는 그냥 멀뚱히 서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빠, 나 학교 다니기 싫어"라고 했을 때 저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덕수처럼 '해야 한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그 아이가 중국 친구들과 운동장을 뛰어다녔습니다. 사람은 던져지면 헤엄치게 됩니다. 덕수도 그랬고, 제 아들도 그랬고, 저도 그랬습니다.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면, 실제로 1960년대 파독 광부는 총 7,936명, 파독 간호사는 약 1만 1천여 명에 달했습니다. 이들이 본국으로 송금한 외화는 당시 한국 경제 재건의 실질적 토대가 됐습니다.(출처: 한국산업인력공단 해외취업 역사관, 링크) 영화는 그 숫자 뒤에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덕수의 몸으로 복원해 냅니다.
윤제균 감독은 이 영화에서 플래시백(회상 기법) 구조를 시간축의 도구가 아니라 감정의 도구로 활용합니다. 현재의 늙은 덕수가 창고 문을 닫는 순간, 화면이 부드럽게 1950년대 흥남 부두로 넘어갑니다. 색감도 달라집니다. 현재는 낡고 탁한 황갈색 톤, 과거는 차갑고 푸른 회색 톤. 이 색조의 대비가 말없이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하지만 그때가 지금을 만들었다"라고 속삭입니다. 또 하나의 디테일, 주인공의 사투리 변화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흥남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직후 빨갱이 소리를 듣던 어린 덕수가 수십 년이 지나 완전한 부산 사투리를 쓰게 되고, 영자 역시 노년에 이르러 부산 말투로 자연스럽게 변해 있습니다. 언어가 세월을 대신 증언하는 방식입니다.
아버지의 짐을 넘겨받은 사람들만이 느끼는 이 영화의 진짜 무게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산업화 세대 아버지에 대한 헌정 영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떠올리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이 영화는 사실 짐을 넘겨받은 모든 세대의 이야기입니다. 덕수의 아버지가 덕수에게 "이 집 네가 지켜야 한다"라고 했고, 그 덕수는 평생 그 짐을 지고 살았습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저는 1984년 대기업에 공채로 입사해 생산관리와 공장합리화, 원가절감을 추진했고, 그 후 중국으로 건너가 공장 관리책임자로 8년을 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기도 당하고, 주식 리딩에도 속아 큰돈을 잃었습니다. 솔직히 그 시기에 '왜 나만 이런가'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덕수를 다시 떠올리면, 그가 한 번도 '왜 나만'이라고 묻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냥 합니다.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또 합니다.
영화는 2014년 개봉 당시 최종 관객 1,426만 명을 기록하며 한국 영화 역대 흥행 2위에 올랐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링크) 천만을 훌쩍 넘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마케팅 성공이 아닙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덕수의 얼굴에서 자기 아버지를 보았고, 혹은 자기 자신을 보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누군가의 짐을 지고 계십니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짐을 넘겨준 쪽이십니까? 그 질문 앞에서 이 영화는 정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덕수처럼 묵묵히 버텨온 사람들에게 "수고했다"라고 조용히 말해줄 뿐입니다. 저는 그 한마디가 두 시간짜리 영화의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아래와 같은 분들께 특히 권합니다.
- 1950~70년대 한국 현대사를 몸으로 겪은 세대 혹은 그 자녀
- 타지 생활, 이민, 파견 근무의 외로움을 알고 있는 분
- 황정민의 연기를 통해 인간의 억누름과 해방을 보고 싶은 분
- 가족의 무게와 감사함을 다시 떠올리고 싶은 분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