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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택시 자격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물 면허도, 시내버스 핸들도 저에게 운전은 밥줄이자 자존심입니다. 2017년 개봉 당시 〈택시운전사〉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 같은 사람 이야기겠구나" 싶었지만, 그때는 중국 MRO 사업이 무너지던 시절이라 극장에 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 영화를 제대로 마주한 건 버스 운전을 시작하고 한참 뒤, 늦은 밤 배차를 끝내고 기숙사 방에 혼자 누워서였습니다. 작은 핸드폰 화면이었지만 영화는 조금도 작지 않았습니다.
돈을 위해 잡은 핸들이 역사의 현장에서 떨리기 시작했다
송강호가 연기한 만 섭은 처음에 그냥 돈 때문에 움직입니다. 밀린 월세, 딸아이 밥값. 독일 기자를 태우고 광주까지 가면 큰돈을 받는다는 말에 덜컥 핸들을 잡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피식 웃었습니다. 너무 익숙한 마음이었으니까요.
2019년 제가 처음 시내버스 운전석에 앉던 날을 기억합니다. 중국에서 15년을 보내고 MRO 사업도 정리하고, 사기 피해에 주식 리딩 피해까지 겹쳐 통장이 텅 빈 상태였습니다. 자존심이고 뭐고 없었습니다. 버스 운전을 선택한 이유는 딱 하나, "매달 월급이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만 섭이 3만 원짜리 요금을 탐내며 먼 길을 나선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핸들을 잡았습니다. 부끄럽지 않습니다. 그게 현실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만 섭은 변합니다. 광주에 들어서고, 총에 맞은 젊은이들을 보고,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돈 생각이 사라집니다. 처음엔 서울로 도망치려다 다시 차를 돌립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한참 바라봤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산동성 칭다오 공장 시절이었습니다. 중국인 직원 왕웨이라는 젊은 친구가 생산라인 기계 오작동으로 손가락 두 개를 잃었습니다. 저는 관리책임자로서 처음엔 "어떻게 하면 회사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사실입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붕대 감긴 손을 들어 "메이관시(괜찮아요)"라며 웃는 그 친구를 보는 순간, 가슴 어딘가가 쿵 내려앉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안전 교육을 완전히 다시 짰습니다. 원가절감 수치가 아니라 사람 얼굴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만 섭이 차를 돌린 것처럼, 저도 그때 무언가를 돌렸습니다.
당신은 지금껏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이 어느 순간 의미로 바뀐 경험을 해보셨습니까?
영화는 1980년 5월, 실존 인물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와 택시운전사 김사복의 실화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1,21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대 흥행 상위권에 올랐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링크) 단순한 흥행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 이야기를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를 보여주는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송강호의 절제된 눈빛이 관객의 눈물을 대신 흘렸다
송강호가 연기한 만 섭은 처음부터 끝까지 '평범함'의 질감을 잃지 않습니다. 그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무서운 연기입니다. 외투 깃을 세우고 미터기를 두드리는 손버릇, 돈 계산할 때 슬쩍 올라가는 눈꼬리, 딸 생각에 피식 웃다가도 금세 굳어버리는 입술 배우가 의도를 숨길 때 연기는 비로소 살이 됩니다.
결정적 장면은 부상자를 들것에 싣고 뛰어가는 광주 시민들을 만 섭이 차 안에서 바라보는 순간입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핸들을 꽉 쥐고 아래턱을 미세하게 떱니다. 눈물이 흘러내리기 직전의 그 찰나에서 송강호는 멈춥니다. 울지 않습니다. 그 절제(節制)가 관객을 웁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무릎 위 손이 주먹이 되어 있었습니다.
토마스 크레취만은 언어 장벽을 오히려 무기로 썼습니다. 서툰 한국어 발음,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내리지 않는 두 손 그 손이 곧 그의 대사입니다. 말보다 행동이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한 연기였습니다.
유해진의 황기 사는 이 영화의 숨통입니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와 너스레로 긴장을 잠시 풀어주지만, 마지막 체크포인트 장면에서 웃음기 없는 그 얼굴은 관객의 가슴을 찌릅니다. 희극 배우가 비극을 연기할 때 진짜 슬픔이 옵니다. 예전에 저는 유해진을 코믹 조연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이 영화를 돌아보면 그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얼마나 숨 막혔을까 싶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살리는 방식은 참 다양합니다.
버스를 운전하다 보면 저도 비슷한 장면을 마주칩니다. 무거운 짐을 든 어르신,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휠체어 승객 — 그분들 앞에서 저는 늘 잠깐 멈춥니다. 평범한 핸들잡이가 그 순간만큼은 누군가의 황기사가 됩니다. 당신 주변에도 그런 황기사가 있었습니까?
외부자의 시선으로 열린 카메라가 광주의 5월을 증언했다
장훈 감독의 가장 큰 선택은 '외부자의 눈'으로 광주를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서울 사람 만섭과 독일 기자 피터를 주인공으로 세운 것 자체가 연출 의도(演出意圖)입니다. 광주 시민이 아닌 사람들이 목격자가 됨으로써, 관객도 똑같이 처음 보는 사람의 자리에 놓입니다.
카메라 문법도 그에 맞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초반 서울 장면은 핸드헬드 카메라가 만 섭의 바쁜 일상을 따라다닙니다. 그런데 광주에 진입하는 순간부터 카메라가 천천히, 그리고 넓게 열립니다. 롱샷(long shot)으로 거리를 바라보는 앵글 우리도 처음 보는 것이고, 우리도 몰랐던 것입니다.
조명 설계도 인상적입니다. 광주 낮 장면은 의도적으로 과노출(過曝出, overexposure)에 가깝게 처리되어 있습니다. 눈부시게 밝은 5월의 햇살 그 빛이 오히려 공포스럽습니다. 평화로운 빛 아래 벌어지는 폭력의 대비가 어떤 어두운 조명보다 잔인하게 느껴지도록 설계된 것입니다.
음악은 거의 없습니다. 침묵을 선택한 장면이 많습니다. 총소리와 발자국 소리, 울음소리만 남겨두는 방식은 관객의 귀를 그 공간 안으로 끌어들이는 몰입 기법(沒入技法)입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사망 165명, 행방불명 76명, 부상 3,383명이 공식 집계된 비극입니다.(출처: 5·18 기념재단, 링크) 숫자로는 담기지 않는 그 무게를, 이 영화는 소리와 침묵으로 담아냈습니다.
예전에 저는 역사 영화를 볼 때 "그때 사람들은 왜 그랬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나라면 어땠을까"를 묻게 됩니다. 중국 공장에서 부당한 지시를 받았을 때, 저는 몇 번을 고개를 숙였습니다. 만 섭처럼 차를 돌리지 못한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 기억이 이 영화를 더 아프게 만듭니다.
〈택시운전사〉는 영웅 이야기가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이 눈앞의 진실 앞에서 잠깐 더 용감해진 이야기입니다. 만 섭은 위대한 인물이 아닙니다. 돈 걱정하고, 겁먹고, 도망치려 했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60대 초반인 저는 1980년 그 5월을 이미 살았던 세대입니다. 하지만 광주가 어떤 곳이었는지는 오히려 이 영화를 통해 더 깊이 알게 됐습니다. 늦은 밤 기숙사에서 혼자 핸드폰으로 본 그 영화가 저를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게 했습니다.
운전대를 잡는 일은 그냥 밥벌이가 아닐 수 있습니다. 만 섭도 그걸 광주에서 배웠습니다.
이 영화는 역사에 관심 있는 분, 인간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고 싶은 분, 그리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스스로를 다시 바라보고 싶은 분께 권합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