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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겨울, 저는 중국 웨이하이의 작은 아파트 거실에서 노트북 화면으로 이 영화를 처음 봤습니다. 가족을 데리고 산동성으로 건너간 지 막 1년이 채 되지 않던 시절이었고,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는 소식은 동료 주재원의 입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영화가 끝났을 때 저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두 아들은 이미 잠들어 있었고, 아내는 뜨개질을 하다 말고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뭔가 목덜미를 세게 붙잡힌 느낌, 그게 〈실미도〉였습니다.
국가에 버려진 사람들, 안성기와 설경구의 눈빛이 말한 것
안성기가 연기한 최재헌 준위의 눈빛은 이 영화에서 가장 복잡한 언어입니다. "김일성 목을 따 오라"는 명령을 전달하는 순간에도, 부하들이 훈련으로 쓰러지는 장면을 바라볼 때도 표정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절제된 무표정 속에서 엄청난 갈등이 읽힙니다. 군인으로서의 복종과 인간으로서의 죄책감이 뒤엉킨 눈빛을 안성기는 대사 없이 전부 보여 줍니다. 베테랑 배우만이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설경구가 맡은 강인찬은 정반대의 방식으로 감정을 폭발시킵니다. 그는 몸 전체로 연기합니다. 극한의 훈련 속에서 이를 악물고, 동료의 죽음 앞에서 무너지고, 반란을 결심하는 순간 눈 안에서 무언가가 '켜지는' 장면에서 저는 숨을 참았습니다. 그리고 허준호의 조 중사. 냉혹한 인솔자처럼 보이지만 영화 마지막, 사탕을 사 들고 뛰어오는 장면 하나로 관객의 심장을 흔들어 놓습니다. 도착하지 못한 사탕, 전달되지 못한 마음 허준호는 그 허무함을 뒤늦게 달려오는 발걸음과 멍해진 얼굴만으로 표현했는데, 그것이 그 어떤 대사보다 깊이 박혔습니다.
저는 이 배우들을 보면서 1984년 대기업에 공채로 입사하던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생산관리 부서에서 원가절감 운동을 주도하던 젊은 시절의 저는, 조직이 시키는 일을 완벽히 해내면 언젠가 인정받는다고 믿었습니다. 684부 대원들이 "사면"이라는 약속 하나를 붙잡고 지옥훈련을 버텼듯, 저도 "성실함이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 하나로 살았습니다.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한참 뒤였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여쭤봅니다. 여러분은 믿었던 약속이 증발해 버린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 순간 어떻게 버티셨습니까?
침묵으로 질문하는 강우석 감독의 연출이 남긴 상처
강우석 감독은 이 영화를 단순한 액션 블록버스터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7개월에 걸쳐 강원도, 제주도, 파주, 인천, 실미도까지 장거리 로케이션을 감행한 것은 '실제감'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카메라는 훈련 장면에서 피사체에 바짝 붙어 흔들립니다. 핸드헬드 카메라(손으로 직접 들고 찍는 촬영 방식)의 거친 흔들림은 이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폭력적이었는지를 형식 자체로 증명합니다.
조명은 훈련 초기와 후반부에 극명하게 달라집니다. 초반의 섬 장면은 거칠고 날 선 자연광이 지배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화면은 점점 침침해지며 채도(색의 선명도)가 낮아집니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이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희미해지고 있음을 색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음악도 과하지 않습니다. 감독은 감정을 음악으로 주입하는 대신 침묵을 자주 선택했는데, 오히려 그 침묵이 국가의 망각을 상징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실미도 사건은 실화입니다. 1968년 실제로 조직된 대북 침투 부대, 684부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 영화는 2003년 개봉 당시 약 1,10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최초로 천만 관객을 달성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링크)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가 그토록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데는 이유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관객들 역시 어딘가에서 "버려진 느낌"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었기 때문 아닐까요?
2004년 국방부는 684부대 관련 일부 자료를 공개했고, 사건의 실체가 공식적으로 인정되기 시작했습니다.(출처: 국가기록원, 링크)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이 사실이 세상에 제대로 알려졌을지, 저는 지금도 의문입니다.
감독의 연출이 가장 빛난 장면을 하나만 꼽으라면, 저는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을 택하겠습니다. 반란을 일으킨 부대원들이 시내버스를 탈취해 서울로 진입하는 그 시퀀스(연속 장면 단위)에서 카메라는 차창 밖 서울 시가지를 담담하게 비춥니다. 일상적인 도시 풍경과 그 안에 갇힌 비극이 충돌하는 장면. 버스 운전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저에게 이 장면은 특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저도 매일 그 핸들을 잡고 서울 거리를 달리기 때문입니다.
버스 핸들을 잡고 떠올린 그 섬, 나도 뭔가를 기다렸다
최근 버스를 몰다가 라디오에서 오래된 군가가 흘러나왔습니다. 그 멜로디가 뇌리에 걸리면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저는 서울 시내버스를 운전하면서 매일 수많은 얼굴을 봅니다. 아침 첫 차에 오르는 공사장 인부, 새벽부터 출근하는 간호사, 눈도 못 뜨고 버스에 올라 손잡이에 매달려 조는 젊은이들. 그 사람들을 보며 저는 종종 생각합니다. 저 사람은 지금 무엇을 참고 있을까,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
684부 대원들은 약속된 사면을 기다리며 3년 4개월을 버텼습니다. 저도 기다린 적이 있었습니다. 2013년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중국 현지에서 MRO(Maintenance, Repair, Operations·산업용 소모품 유통) 사업을 시작했을 때, 저는 믿었던 파트너에게 사기를 당했고 주식 리딩방에 끌려다니다 남은 돈마저 잃었습니다. 국가가 684부 대원들의 존재를 지워버렸듯, 시장과 사람들은 저의 노력을 그냥 증발시켜 버렸습니다. 허망함이 어떤 감정인지, 그때 처음 뼛속 깊이 알았습니다.
영화에서 설경구가 외칩니다. "우리가 뭘 잘못했냐!" 저도 새벽마다 쿠팡 배달을 돌고 배민 배달을 뛰면서 속으로 수없이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냐고.
그러나 그들과 제가 달랐던 점이 있습니다. 저는 끝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버스 운전석에 앉고, 헬스장에서 매일 1시간 이상 러닝과 턱걸이를 하고, 이백 강의를 들으며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2025년 12월에는 30년 넘게 피운 담배도 끊었습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그리고 제 의지로.
예전에 이 영화를 봤을 때는 "국가에 배신당한 비극"으로만 읽었습니다. 지금 다시 보니 다르게 보입니다. 이 영화는 배신당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인간으로 남으려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차이가 20년이 지나서야 보였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 영화에서 누구에게 가장 감정이입이 되셨나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국가입니까, 아니면 그 약속을 끝까지 믿었던 부대원들입니까?
이 영화의 아쉬운 점도 솔직히 말씀드려야겠습니다. 후반부 서울 진입 이후의 전개가 다소 급격합니다. 3년 4개월을 공들여 쌓아 온 인물들의 내면이 마지막 20분 안에 빠르게 소비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부대원 개개인의 사연을 좀 더 깊이 다뤘다면 비극의 무게가 더 묵직하게 전달됐을 것입니다. 블록버스터적 스펙터클(시각적 대형 장면)을 선택하느라 인물의 내밀함을 일부 희생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한국 현대사에서 외면당한 진실을 꺼내 들었고, 그 용기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닙니다.
추천 대상:
- 한국 현대사와 분단의 비극에 관심 있는 분
- 국가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본 분
- 묵직한 드라마와 강렬한 액션을 함께 즐기고 싶은 분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