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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헤일메리] 기억도 없이 혼자 우주에서 깨어난다면 《마션》을 쓴 앤디 위어의 소설이 원작이라는 말 한마디에 이미 절반은 마음이 기울어 있었습니다. 거기에 라이언 고슬링이 직접 제작까지 참여했다는 소식까지 들으니, 개봉일을 달력에 표시해 두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배우자와 나란히 앉아 156분을 버텼는데, 영화가 끝나고 두 사람 모두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기억, 고립, 그리고 라이언 고슬링의 눈빛영화는 설명 없이 시작됩니다. 우주선 안, 라일랜드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가 홀로 눈을 뜹니다. 자기가 누군지도, 왜 여기 있는지도 모릅니다. 역행성 기억상실(retrograde amnesia, 특정 시점 이전의 기억이 소거되는 현상) 상태로 우주 한복판에 던져진 겁니다. 관객도 그와 함께 아무것도 모른 채 출발합니다.저는 이 도입부에서 등골이 서늘해졌습.. 2026. 6. 8.
[파묘] 귀신보다 역사가 더 무서웠던 두 시간 솔직히 말하면 저는 공포 영화를 잘 못 봅니다. 배우자가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저도 함께 다니게 됐는데, 그 이후로 귀신이 나오는 영화는 더 멀리했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이 "아버지, 이건 공포 영화가 아니에요"라며 억지로 끌고 간 게 파묘였습니다.오컬트라는 포장지 안에 든 것극장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미국 LA에서 활동하는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이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의뢰를 받아 움직이는 장면부터, 이건 단순한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풍수지리(風水地理, 땅의 기운이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동양 사상)를 근거로 묫자리가 화근임을 짚어내고, 풍수사(風水師, 땅의 기운을 읽어 묏자리나 집터를 잡는 전문가) 상덕(최민식).. 2026. 6. 7.
[애덤 프로젝트] 아버지에게 끝내 못한 말, 캐치볼 한 장면이 꺼냈다 버스 운행을 마치고 늦은 밤 집에 들어와 넷플릭스를 켰습니다. 딱히 뭘 볼 생각도 없었는데 추천 목록에 뜬 《애덤 프로젝트》를 그냥 틀었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보고 나서 한동안 리모컨을 손에 쥔 채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캐치볼 한 장면이 40년을 꺼낸 이유줄거리는 단순합니다. 2050년의 전투기 조종사 애덤(라이언 레이놀즈)이 시간 여행 중 2022년에 불시착해 12살의 자기 자신(워커 스코벨)을 만나고, 두 사람이 함께 2018년으로 가서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 루이스(마크 러펄로)와 재회한다는 이야기입니다. SF적 설정이 뼈대지만, 정작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은 거기 있지 않습니다.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건 세 사람이 함께 캐치볼을 하는 장면입니다.. 2026. 6. 7.
[레드 노티스] 사기꾼들 사이에서 싹튼 신뢰, 그 아이러니 서울 새벽 거리를 수백 명의 승객과 함께 달리다 보면, 집에 돌아와 뇌를 완전히 비우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날 밤도 그랬습니다. 소파에 몸을 던지고 넷플릭스를 켰을 때 알고리즘이 밀어주던 영화가 바로 《레드 노티스》였습니다.반전과 케미, 이 영화가 90%의 관객을 사로잡은 이유《레드 노티스》는 인터폴(INTERPOL, 국제형사경찰기구)의 최고 수배 등급을 뜻하는 '레드 노티스'를 소재로 한 글로벌 액션 코미디입니다. FBI 프로파일러(FBI Profiler, 범죄자의 심리·행동 패턴을 분석해 용의자를 추적하는 전문 수사관)인 존 하틀리는 전설적인 미술품 도둑 놀런 부스를 쫓다가 오히려 누명을 쓰고 레드 노티스 수배자가 됩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지만, 바로 이 설정이 영화 전체를 끌어가는 핵심 동력.. 2026. 6. 7.
[캐리온] 공항, 협박, 선택의 기로 2004년부터 7년간 중국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공항 보안 검색대를 수십 번 통과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냥 줄 서서 가방 올리고 벨트 풀고 통과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 검색대 직원이 어떤 마음으로 거기 서 있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뒤늦게 미안해졌습니다.공항이라는 무대가 만들어내는 밀폐감《캐리온》은 크리스마스이브의 LA 국제공항(LAX)을 배경으로 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날, 수십만 명이 귀향을 위해 몰려드는 공간. 영화는 이 혼잡함을 단순한 배경으로 쓰지 않습니다. 자우메 콜렛세라 감독은 공항이라는 공간의 특수성, 즉 들어가면 마음대로 나올 수 없고, 모든 이동이 감시되며, 예외 없이 검색을 받아야 하는 그 통제된 구조 자체를 압박 도구로 씁니다.TSA(.. 2026. 6. 6.
[천군] 예순의 버스 기사에게 던진 질문 , 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새벽 네 시, 핸들을 잡기 전에 짧게 눈을 붙이다 깼습니다. 잠이 다시 오지 않아 오래된 한국 영화 목록을 뒤지다 천군(2005)을 고르게 됐습니다. 박중훈, 황정민, 김승우 이름만으로도 믿음이 가는 배우들이었고, 이순신이라는 이름 석 자가 피곤한 눈을 붙들었습니다. 110분짜리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한동안 핸들 위에 손을 올려두고 생각했습니다. 대사 하나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너네는 적도 아니면서 왜 맨날 싸우냐."두 나라 군인과 한 사람의 이순신 —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것영화는 꽤 대담한 설정으로 시작합니다. 남북한이 공동 개발한 핵무기 비격진천뢰를 두고 북한 장교 강민길(김승우)이 핵물리학자 김수연(공효진)을 납치해 탈출을 시도하다, 433년 만에 찾아온 혜성의 기운으로 남북 군인.. 2026.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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