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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웍스 2026년 신작 《포가튼 아일랜드》는 조엘 크로포드·재뉴얼 머카도 감독이 연출한 애니메이션으로, 졸업 후 서로 멀어지던 두 親友가 기억이 사라지는 신비의 섬에 빨려 들어가며 우정의 본질을 마주하는 작품입니다. H.E.R. 와 라이자 소베라노의 성우 연기, 2D·3D를 오가는 독창적 작화, 필리핀 민속 신화를 녹인 세계관이 어우러져 로튼 토마토 신선도 100%를 기록했습니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애니메이션을 혼자 보러 간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극장은 아이들 손 잡고 가는 곳이라고 오랫동안 여겼으니까요. 그런데 큰아들은 경찰공무원이 됐고, 작은아들은 제 방을 쓰지 않은 지 오래입니다. 두 아들이 각자의 삶으로 떠난 뒤부터 쉬는 날 오전이 묘하게 비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야간 운행을 마치고 돌아온 다음 날 반차를 내고 집 근처 CGV에 들렀다가, 포스터의 형광빛 초록과 보랏빛 색감에 눈이 걸렸습니다. 꿈속 풍경 같다는 느낌으로 표를 끊었고, 그 충동이 꽤 오랜만에 무언가를 기억하게 만들었습니다.
잊힌 얼굴들, 버스 핸들 위의 기억
저는 하루에 많게는 400명 가까이 태웁니다.
교복 입고 조는 학생, 장바구니를 무릎에 올린 할머니, 이어폰 꽂고 창밖을 멍하니 보는 직장인들. 저는 그분들 얼굴을 6년간 봐왔지만, 기억나는 얼굴은 손에 꼽습니다. 그분들도 저를 기억하지 않겠죠. 요금 단말기에 카드를 대고 자리를 찾아가면 그걸로 끝이니까요.
영화에서 조와 라이사가 포가튼 아일랜드 안에서 서로의 이름을 잊어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거창한 저주가 아니었습니다. 천천히, 아주 자연스럽게, 그냥 흐릿해지는 방식이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사람이 사람을 잊는 건 마나의 저주가 아니어도 이렇게 일어나는 일이구나' 싶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10년 전 매일 보던 사람의 얼굴을 지금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으신가요?
2004년 웨이하이로 발령받던 날, 저는 공항 입국장에서 처음 만난 현지 통역 직원의 이름을 그날 저녁 메모장에 적어뒀습니다. 잊어버릴 것 같아서였습니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 메모장은 없고, 이름도 없습니다. 기억이란 붙들려고 애써야 겨우 남는 것임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목소리가 기억을 붙드는 방식
H.E.R. 가 맡은 조의 목소리는 싱어송라이터 출신답게 대사에 가락이 실려 있었습니다.
활달하게 앞으로 달려 나갈 때는 음색이 밝고 탄력 있게 튀어 오르다가, 라이사와의 균열이 깊어지는 장면에서는 말끝에 미세한 떨림과 공백이 스며들었습니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숨소리 하나로 감정의 무게를 전달하는 방식은, 노래와 연기의 경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사람만이 구사할 수 있는 표현이었습니다.
라이자 소베라노의 라이 사는 라이 사는 반대 결이었습니다. 조가 감정을 밖으로 터뜨리는 인물이라면, 라이 사는 안으로 눌러 담다가 임계점에서 한꺼번에 쏟아내는 인물입니다. 그 억눌림의 시간을 소베라노는 목소리의 밀도로 표현해 냈습니다.
두 음성이 교차하는 장면에서는 불협화음을 내다가 마침내 화음을 찾아가는 두 악기처럼 들렸습니다. 연출 면에서도 조엘 크로포드 감독은 기억이 흐려지는 순간마다 3D 장면을 2D 평면 작화로 전환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단순한 시각 변주가 아니라, 기억이 옅어질수록 세계가 입체감을 잃는다는 철학을 화면의 물리적 차원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저는 대기업 생산관리 시절 공장합리화 보고서를 수백 장 썼습니다. 숫자와 도표로 가득 찬 문서들이었는데, 지금은 그 숫자들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1984년 입사 첫날 선배가 "공장은 사람이 먼저야"라고 했던 말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또렷합니다. 기억에 남는 건 정보가 아니라 감각이라는 걸, 이 영화의 음향 설계가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줬습니다.
기억을 포기하고 탈출할 수 있는가
영화의 핵심 질문은 단순합니다. 가장 소중한 추억을 포기해야만 이 섬을 탈출할 수 있다면, 당신은 할 수 있겠느냐고.
저는 못 하겠습니다.
2009년 겨울 웨이하이 해안가, 영하 10도가 넘는 바람 속에서 포장마차에 앉아 빨간 껍데기 새우를 손으로 까먹던 그 장면을 포기하고 탈출한다는 건 상상이 안 됩니다. 아내 손이 빨개져도 웃고 있었고, 아이들은 게 다리 빨면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포장마차 주인아주머니가 "한국 가족이 제일 잘 먹는다"라고 했던 그 말까지.
그 기억은 10년 전 사기를 당해 목돈을 날리고, 2019년 MRO 사업을 접고 빈털터리로 귀국하던 날에도 저를 버티게 한 것들이었습니다.
MRO 사업 마지막 날, 중국 공장 문을 잠그면서 열쇠를 주머니에 넣던 손이 떨렸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게 그 새우 포장마차였습니다. 무너지는 기분인데 왜 그게 생각났는지, 지금도 잘 모릅니다. 아마도 기억이란 게 논리가 아니라 온도로 저장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는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어 스스로 섬으로 들어오는 인물도 등장시킵니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스러운 기억들마저 지금의 나를 만든 재료라는 걸, 환갑이 지나서야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악당 마나의 동기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억을 훔치는 섬의 지배자라는 설정은 매력적인데, 그가 왜 그 일을 하는지에 대한 서사가 얕아 후반부에 감정적 무게가 조금 분산됩니다. 두 주인공의 우정에 집중한 나머지 세계관의 깊이가 다소 희생된 느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필리핀 민속 신화를 바탕으로 한 시각 언어, H.E.R. 와 라이자 소베라노의 성우 조합, 폴라로이드와 카세트테이프라는 아날로그 오브제를 통한 감성 설계는 드림웍스가 오랫동안 도전하지 않았던 방향을 과감하게 시도한 결과물로 충분히 가치 있습니다. 우정에 관한 애니메이션을 찾는 분, 또는 오래된 친구와의 거리감을 느끼는 분이라면 이 영화가 꽤 깊이 파고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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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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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및 관람 포인트
버스 핸들을 잡고 수십만 명을 스쳐 보낸 사람으로서, 기억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지를 몸으로 압니다. 이 영화는 그 사실을 두려움이 아니라 따뜻한 긴장감으로 다루는데, 그 온도가 저한테는 제법 정확하게 닿았습니다. 관람 시 2D와 3D가 전환되는 순간마다 그것이 단순한 연출이 아니라 기억의 밀도를 표현하는 언어라는 점을 의식하며 보시면, 이 영화가 전혀 다른 깊이로 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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