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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턴

    김도영 감독, 최민식·한소희 주연의 2026년 드라마·코미디. 낸시 마이어스의 2015년 할리우드 원작을 한국식으로 각색해, 실버 인턴 기호와 젊은 CEO 선우가 세대를 뛰어넘어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가는 과정을 생활감 넘치는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나이 앞에 멈칫한 적이 있으신가요? 이력서 한 줄이 아니라 사람 한 명으로 다시 시작해야 했던 그 순간 말입니다. 저는 《인턴 2026》 포스터에서 최민식 씨의 은발 얼굴을 보는 순간, 무언가가 복부를 건드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영화를 본 건 평일 오전이었습니다. 새벽 네 시에 버스를 차고지에 반납하고 씻고 나니 여섯 시가 넘었더군요. 잠이 오지 않아 CGV 앱을 열었다가 오전 8시 40분 첫 상영을 잡았습니다. 관객은 저 포함 아홉 명이었습니다.

    수첩 한 권이 말해주는 절박한 성실함

    스크린 속 기호(최민식)가 젊은 직원들이 스마트폰으로 처리하는 회의 내용을 꺼낸 수첩에 꼬박꼬박 받아 적는 장면이 있습니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지만 저는 웃다가 목이 조금 메었습니다.

    그 수첩은 개그 소재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이 속도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노인의 절박한 성실함이었습니다. 최민식은 사무실 문을 들어서기 직전 단 한 번 크게 숨을 들이쉬는 동작 하나로, 이 인물의 자존심과 불안을 동시에 담아냈습니다. 대사 한 마디 없이도 '나는 여기 짐이 되러 온 게 아니다'라는 다짐이 전해졌습니다.

    저도 2019년 중국에서 MRO 사업을 정리하고 귀국한 뒤, 쉰다섯 살에 버스 운전기사 시험 원서를 냈습니다. 접수처 직원이 "어르신, 1종 대형 있으세요?" 하고 물었을 때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어르신'이라는 단어가 귀에 박히던 그날, 저는 기호 씨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 무너진 것도 아니고
    • 아무렇지 않은 것도 아닌
    • 딱 그런 얼굴

    그 원서를 낼 때 제가 꺼내 든 것도 일종의 수첩이었습니다. 중국 공장 관리 20년을 접고 처음 하는 일 앞에서, 교육 내용을 두 번 세 번 받아 적으며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기호 씨의 수첩이 웃음 코드가 아니라 생존 전략으로 읽힌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손을 찍는 카메라가 담아낸 같은 언어

    김도영 감독의 카메라가 이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포착하는 것은 인물의 손입니다. 기호가 선우의 책상을 정리하는 손, 선우가 투자 보고서를 넘기다 멈추는 손, 두 사람이 처음으로 같은 방향을 보며 화이트보드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는 손. 감독은 손을 통해 '이 두 사람은 다른 언어를 쓰지만 같은 방식으로 일한다'는 것을 말없이 증명합니다.

    한소희의 연기도 이 연출 흐름 안에서 빛납니다. 선우가 회의실에서 결정을 밀어붙일 때 어깨는 올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 남아 노트북을 닫을 때, 그 어깨가 미세하게 내려앉습니다. 대사 한 마디 없이 어깨의 낙차만으로 이 여자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를 전달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조명 설계도 흥미롭습니다. 선우의 유리벽 사무실은 낮에도 차가운 백색광으로 채워져 있고, 기호가 혼자 수첩을 펼치는 창가 자리는 자연광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따뜻한 노란 톤입니다. 같은 공간 안에서 두 사람의 온도 차이를 빛으로 먼저 보여주고, 영화 후반부에 가서야 그 두 색온도가 조금씩 섞이기 시작합니다.

    저도 2004년 청도 공장에 처음 부임했을 때 비슷한 감각을 경험했습니다. 현지 직원 120명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는데 입에서 말이 나오질 않던 첫 조회 날, 저는 그 자리에서 통역 없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았습니다. 생산 라인을 직접 걷고, 직원들 작업하는 손을 들여다보는 것. 말이 안 통해도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보였으니까요. 기호가 선우의 일하는 방식을 손부터 관찰하는 그 장면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기호 씨 얼굴에서 내 쉰다섯을 읽다

    영화에서 기호가 회사 위기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장면이 있습니다. 오래된 사람들은 위기 때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등받이에서 등을 똑바로 세웠습니다.

    2010년쯤 웨이하이 공장에서 핵심 부품 납기가 열흘 밀렸을 때, 저는 사흘을 라인 바닥에서 직원들과 같이 자다시피 하며 공정을 붙잡았습니다. 그때 현지 직원 팀장 리우 씨가 "당신은 한국 사람 같지 않다"라고 했습니다. 칭찬인지 아닌지 몰라서 통역한테 다시 물었더니 "책임지는 어른 같다고요" 했습니다. 기호가 선우에게 주는 것도 결국 그 무게였습니다. 경험치나 스펙이 아니라, 책임지는 어른의 자리.

    큰아들이 로컬학교에서 처음 1주일을 버티고 돌아와 "아빠, 중국어 한 마디도 못 알아듣겠어" 했을 때, 저는 "그래, 아빠도 처음엔 그랬어"라고만 했습니다. 그 아이가 6개월 뒤 중국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걸 보면서, 적응이란 게 결국 시간과 버팀의 문제라는 걸 배웠습니다. 기호 씨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 꼭 그 6개월과 닮아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영화를 보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를 묻고 끝냈을 겁니다. 지금은 '나는 이미 저렇게 살고 있었구나'라고 읽힙니다. 그게 예순을 넘어서 이 영화를 보는 것과 서른에 보는 것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 달려온 사람만이 알아보는 것들이 있습니다. 기호가 선우에게 전하는 것들, 그게 바로 그런 종류입니다. 거창한 조언이 아니라, 수십 년치 버팀이 몸에 배어 나오는 것들. 60대 이상 관객이라면 기호 씨에게서 자신을 보게 될 것이고, 30~40대라면 선우의 어깨에서 지금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세대 어느 쪽에 앉아도 충분히 자기 이야기로 읽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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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점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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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평 및 관람 포인트

    저는 요즘 매일 아침 헬스장에서 러닝을 뛰면서, 2025년 12월에 끊은 담배 생각을 하루에 한 번쯤 합니다. 버팀이라는 게 대단한 의지가 아니라 그냥 하루를 한 번 더 지나가는 것임을 몸으로 익히는 중입니다. 기호가 수첩을 꺼내는 그 손이 결국 그 버팀의 몸짓이었고, 그래서 이 영화는 제게 위로보다 확인에 가까웠습니다. 관람 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두 사람이 처음으로 같은 방향을 보며 화이트보드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는 장면입니다. 그 장면에서 카메라가 어느 쪽 손을 더 오래 머무는지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