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카레 바커 감독, 마이클 존스턴·인디 네버레티 주연의 2026년 공포·로맨스 영화. 초자연적 장난감으로 빈 소원이 병적 집착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았으며, 로튼 토마토 94%·전 세계 5억 달러 흥행을 기록한 작품이다.
오늘 새벽 5시 20분,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옵세션(2026)》 예고편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어제 퇴근 후 혼자 본 영화인데, 1시간 넘게 달리는 동안 장면 하나가 계속 머릿속에서 재생됐습니다. 니키가 베어의 집 앞 골목에 서서 그를 바라보는 눈빛, 따뜻한데 왜 무서운지 설명이 안 되는 그 장면이었습니다.
소원 하나가 공포의 씨앗이 된 이유
음반 매장 직원 베어가 '원 위시 윌로우'라는 장난감에 친구 니키를 향한 소원을 빕니다. 단순한 설정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그 단순함을 절대 가볍게 쓰지 않습니다.
소원이 이루어진 뒤 니키는 베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좋아하도록 강제된' 상태입니다. 그 차이를 영화는 집요하게 파고듭니다. 보는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는 건 장면이 잔인해서가 아니라, 화면 속 감정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2004년 중국 산동성 칭다오로 발령받던 날, 저의 소원도 단순했습니다. "돈 좀 모아서 빨리 돌아오자." 그 소원 하나가 저를 15년 묶어뒀습니다. 주재원 8년, 현지 MRO 사업 7년. 큰아들이 로컬 초등학교 입학 첫날 "아빠, 친구들이 말을 못 알아들어"라며 울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달랜다고 한 말이 "한 달만 지나 봐"였는데, 그 한 달이 몇 년이 됐습니다.
한번 빈 소원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이 '제삼자의 상충되는 소원' 아니면 '당사자의 죽음'뿐이라는 설정이 남 얘기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2019년 사업 실패라는 형태의 강제 종료로 귀국했고, 소원 하나가 인생 절반을 가져간 셈이 됐습니다.
눈빛으로 전달한 집착의 온도차
마이클 존스턴이 연기한 베어는 소원을 빌기 전까지 니키를 바라보는 시선에 그리움과 망설임을 공존시킵니다. 과잉 없이 담담하게. 그 소극성이 이후 공포의 대비를 더 선명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인디 네버레티의 니키는 이 영화가 가진 무게 전체를 짊어집니다. 눈빛에는 따뜻함이 넘치는데 동시에 자신의 것이 아닌 감정에 끌려다니는 공허함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집착이 심해질수록 몸짓이 흔들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단호해지는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 섬뜩합니다. 흔들릴수록 확신해지는 사람, 그게 공포입니다.
버스를 몰다 보면 그런 눈빛을 가끔 목격합니다. 작년 가을, 종점에서 출발하자마자 탄 30대 초반 여성이 꼬박 두 시간을 문자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내리기 직전 들린 목소리가 "왜 안 받아, 어디 있어, 나 지금 찾아갈 거야"였습니다. 그 표정이 무섭도록 간절했는데, 니키의 눈빛과 정확히 같은 온도였습니다. 사랑인지 집착인지 본인도 구분 못 하는 경계, 버스 기사는 매일 그 경계선 위의 사람들을 조용히 목격합니다.
캐스팅 측면에서 보면 존스턴과 네버레티의 조합은 의도가 분명합니다. 두 배우 모두 10~20대 관객에게 친숙한 얼굴이라는 점에서, 이 이야기가 '낯선 괴물의 공포'가 아니라 '내 주변 사람의 공포'임을 처음부터 각인시키는 효과를 냅니다.
1999년생 감독이 뒤집은 공포 문법
저와 34년 차이 나는 커리 바커 감독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건 젊은 패기보다 관찰자의 냉정 함입니다.
바커 감독은 기존 공포 영화의 문법인 점프스케어, 어두운 복도, 이유 없는 괴물 대신 '관계의 불편함' 자체를 공포 장치로 씁니다. 카메라는 니키가 베어를 바라볼 때 지나치게 가까이 붙어서 촬영합니다. 연인 사이라면 자연스러울 거리인데, 조명과 배경음악이 그 거리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특히 니키 등장 장면마다 음악이 로맨틱한 멜로디와 불협화음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연출이 인상적입니다. 지금 사랑을 보고 있는 건지 위협을 보고 있는 건지 뇌가 판단을 못 하도록 설계된 겁니다. 유튜브 채널 출신 감독답게, 시청자의 감각을 어떻게 교란할지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1984년 대기업 공채로 입사해 공장 합리화·원가절감 운동을 추진하던 시절, 저는 "문제가 어디서 발생하는지를 먼저 봐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바커 감독은 공포의 발생 지점을 '외부의 괴물'이 아니라 '내부의 감정'으로 옮겼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로튼 토마토 94%를 받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니키의 사슬과 내가 끊어낸 40년
영화의 핵심 메시지가 '자유 의지 없는 사랑의 공허함'인데, 저는 영화 내내 금연을 생각했습니다.
2025년 12월 21일, 하나님 앞에서 담배를 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40년 넘게 피운 담배입니다. 처음 2주는 버스 핸들을 잡으면서도 손이 떨렸습니다. 신호 대기 중 옆 차에서 담배 연기가 흘러오면 창문을 닫으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순간만 버티게 해 주십시오." 백 날을 한꺼번에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만 붙들었습니다.
집착도 그렇게 끊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니키는 소원에 묶여 스스로 사슬을 끊지 못했습니다. 저는 10년 전 주식 리딩 피해를 당할 때도 비슷했습니다. 처음 수익이 조금 났을 때 이미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한 번만 더"가 집착이 됐고 결국 큰돈을 날렸습니다. 집착은 항상 소원처럼 시작해서 덫이 됩니다. 지금은 쿠팡 배달, 배민 배달, 버스 운전, N잡을 병행하며 한 푼씩 쌓고 있습니다. 느리지만 이번엔 집착이 아니라 의지입니다. 니키가 끝내 갖지 못했던 것, 저는 갖고 있습니다.
《옵세션(2026)》은 '사랑을 억지로 만들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을 공포 장르로 풀어낸 드문 영화입니다. 잔인한 장면보다 감정의 온도가 무기인 작품이라, 공포 영화를 잘 못 보는 분도 충분히 견딜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지금 사랑하는 건지 집착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되는 분, 아니면 누군가에게 그런 감정을 받아본 분이라면 화면이 더 깊게 파고들 겁니다.
✦━━━━━━━━━━━━━━━━━━━━━━✦
별점 ★★★★★ (5/5)
✦━━━━━━━━━━━━━━━━━━━━━━✦
총평 및 관람 포인트
매일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밟으며 '오늘 하루만 버티자'라고 다짐하는 저에게, 이 영화는 의지와 집착이 얼마나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지를 다시 확인시켜 줬습니다. 니키의 눈빛에서 제10년 전 모습을 봤고, 베어의 무력함에서 선택의 무게를 다시 느꼈습니다. 관람 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소원이 발동되기 직전과 직후, 니키가 베어를 바라보는 각도와 거리가 얼마나 미묘하게 달라지는지입니다. 그 한 장면 차이에 이 영화가 하려는 말이 전부 담겨 있습니다.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경주기행] 평범한 복수자가 열어낸 상실의 기행 (0) | 2026.09.15 |
|---|---|
| [오디세이] 지친 눈빛이 헤쳐온 귀환의 무게 (0) | 2026.09.13 |
| [호컴] 봉인된 문 앞에서 귀를 막아야 할 공포 (0) | 2026.09.03 |
| [눈동자] 꺼져가는 시야 속 진실을 붙잡은 눈빛 (0) | 2026.09.02 |
| [패스트 라이브즈] 침묵이 쌓인 인연 경계인의 얼굴 (0) | 2026.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