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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능한사랑

    이창동 감독이 〈버닝〉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일곱 번째 장편 〈가능한 사랑〉은 파업 진압 뒤 해고된 노동자 부부와 그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려는 부유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충돌하며 계층 간 욕망과 시선의 권력을 해부하는 164분짜리 리얼리즘 드라마다. 전도연·설경구·조여정·조인성이 출연하며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9월 하순인데도 서울 아침 공기가 아직 끈적했습니다. 차고지에 새벽 6시 20분에 도착했을 때 아스팔트에서 열기가 올라오는 게 느껴졌고, 그 후텁지근한 날씨가 퇴근 뒤에도 좀처럼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극장에 들어서면서 에어컨 바람에 잠깐 안도했는데, 〈가능한 사랑〉이 시작되고 나서는 그 차가움마저 잊었습니다. 164분 내내 가슴 어딘가가 묘하게 떨렸습니다.

    운전석이 가르쳐준 시선의 권력

    저는 매일 이백 명 넘는 사람을 봅니다. 그런데 그 이백 명 중 저를 제대로 본 사람은 하루에 두세 명이 채 안 됩니다.

    환승 카드를 내밀면서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분들, 통화하면서 올라타 뒷자리로 직행하는 분들. 저는 보는 사람이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 바라보는 쪽은 선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바라봐지는 쪽은 그 시선 자체가 이미 권력이라는 걸 몸으로 압니다.

    어느 날 한 승객이 스마트폰을 꺼내 제 운전을 촬영하면서 "이 기사 불친절하다"라고 녹화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설명할 기회도 없이 '찍히는 사람'이 됐습니다. 영화에서 예지가 카메라를 들이댈 때 호석이 굳어버리는 그 표정, 저는 그게 낯설지 않았습니다. 유니폼을 입는 순간 나는 이미 누군가의 앵글 안에 들어와 있다는 감각. 그 불편함이 정확히 이 영화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독자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오늘 누군가를 '바라봤습니까', 아니면 '바라봐졌습니까'?

    1984년 관리자가 호석을 만난 밤

    저는 1984년 대기업에 공채로 입사해 생산관리 부서에서 공장합리화와 원가절감 운동을 직접 추진했습니다. 라인 속도를 올리고, 불량률 수치를 맞추고, 월말 보고서를 작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절 저는 숫자 뒤에 있는 사람의 허리와 손목을 보지 않았습니다.

    영화에서 파업이 진압되고 호석이 공장 밖으로 밀려나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서늘해졌습니다. 40년 전 내가 앉아 있던 자리가 어느 쪽에 가까웠는지를, 그제야 정직하게 들여다봤습니다. 예전에는 그 시절을 '효율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켰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그 납득이 흔들렸습니다.

    중국 산동성 칭다오 주재원 시절이었던 2006년 무렵, 현지 공장 직원 한 명을 라인 효율 문제로 교체한 적이 있습니다. 그 직원이 나가면서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냥 고개를 한 번 숙이고 나갔습니다. 그 뒷모습이 호석의 퇴장 장면 위에 겹쳤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처음으로 눈물이 났습니다.

    전도연의 무표정이 쌓아 올린 공포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두렵게 느낀 연기는 설경구의 분노가 아니라 전도연의 무표정이었습니다.

    미옥은 처절하게 울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담하고, 때로는 완전히 비어 있는 얼굴입니다. 예지의 카메라 앞에서 질문을 받을 때 눈을 잠깐 내리깔았다가 다시 올려다보는 그 짧은 순간에, 저는 "나는 지금 내 이야기를 팔고 있는 건가"라는 자기 의심이 스쳐 지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설경구의 호석은 분노를 꾹꾹 눌렀다 풀었다 하는 주먹과, 말을 시작했다가 멈추는 입술로 삼십 년 공장 인생의 자존심이 해체되는 과정을 표현합니다. 그 억압된 몸짓이 폭발보다 훨씬 더 큰 압박을 만들어냅니다.

    조여정의 예지는 악인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공감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미옥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들을 때 살짝 앞으로 기울이는 그 몸짓, 그게 공감인지 취재인지 스스로도 구분 못 하는 모호함. 그 미세한 틈에서 계층의 냄새가 새어 나옵니다.

    당신이라면 그 카메라 앞에서 어디까지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창동이 카메라로 묻는 진짜 질문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를 "계급과 영화 만들기에 대한 탐구"라고 직접 설명했습니다. 그 말이 과장이 아닌 이유는 영화의 구조 자체가 그 탐구를 실천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이 내포되면서 관객은 이중의 시선을 동시에 경험합니다. 예지의 카메라가 호석 부부를 담는 장면을 우리가 또 다른 카메라로 바라보는 구조. 바라보는 행위 자체가 착취가 될 수 있다는 질문을 관객에게도 되돌립니다.

    10년 전 사기를 당하고, 주식 리딩 피해까지 겹쳐 바닥을 쳤을 때 저는 쿠팡 배달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배달 플랫폼의 카메라 앞에 놓인 사람이었습니다. 평점이 매겨지고, 속도가 측정되고, 수락률이 기록됩니다. 그 숫자들이 나를 정의한다는 느낌. 2025년부터 N잡으로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어쩌면 그 숫자 밖에서 내 목소리를 갖고 싶다는 욕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는 해답을 주지 않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예지의 다큐멘터리가 완성됐는지, 호석이 어떻게 됐는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그 여백이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게 이창동다운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답을 주는 영화는 극장을 나서는 순간 잊힙니다. 질문을 남기는 영화는 밤새 따라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당신은 어떤 질문과 함께 극장을 나왔습니까?

    164분이 길다고 느끼는 분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 길이가 필요했다고 봅니다. 계층이라는 주제는 짧은 장면 몇 개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두 부부가 서로의 욕망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그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균열이 보입니다. 씨네 21 전문가 별점 평균 8.40점이 과하지 않은 작품이며, 감각적인 오락을 원하는 분보다 자신의 자리를 되묻고 싶은 분께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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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점 ★★★★☆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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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평 및 관람 포인트

    1984년부터 공장 관리자로, 중국 주재원으로, 그리고 지금은 버스 기사로 살아온 저에게 이 영화는 "당신은 지금 어느 쪽 카메라를 들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정확하게 겨냥했습니다. 정재일의 음악이 대사가 없는 장면에서 두 계층 사이의 공기를 채우는 방식을 놓치지 말고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전도연이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올려다보는 그 2초짜리 장면 하나가 이 영화 전체를 설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