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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집밥

    이준익 감독이 정진영, 이정은, 변요한과 함께 만든 2026년 가족 드라마로, 40년간 밥상 앞에만 앉아온 아버지가 처음 부엌에 들어서며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세로 화면으로 담아낸 작품입니다. 국내 최초로 세로형 숏드라마를 극장판으로 편집해 선보인 형식 실험이면서도, 부부 사이의 묵은 마음과 집밥 한 그릇의 무게를 146분 동안 진하게 풀어냅니다.

    작은아들이 며칠 전 저녁 밥상에서 불쑥 물었습니다. "아빠, 아빠가 요리 한 번이라도 해준 적 있어요?" 저는 젓가락을 든 채로 잠깐 멈췄습니다. 없었습니다. 한 번도. 그 말이 머릿속에 걸린 채로 며칠 뒤 《아버지의 집밥》을 보러 극장에 앉았습니다.

    세로 프레임이 파고든 아버지 얼굴

    처음엔 솔직히 낯설었습니다. 세로 화면이 극장 스크린에 올라오는 순간, "이게 맞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정진영 씨의 얼굴이 프레임 가득 들어차는 순간부터 그 생각은 사라졌습니다. 이준익 감독이 "가로 영화는 풍경화, 세로형은 인물화"라고 했다는 말을 나중에 읽었는데, 극장 안에서 이미 몸으로 느꼈습니다.

    하응이 처음 부엌에 들어서는 장면에서 정진영의 눈빛이 깊이 박혔습니다. 자신감도 두려움도 아닌, 자기 집에서 길을 잃은 사람의 표정이었습니다. 칼을 쥐는 손이 어색하고, 숟가락으로 간을 보려다 어디에 댈지 몰라 잠깐 멈추는 그 순간들이 세로 프레임에 갇혀 관객 얼굴 바로 앞으로 쏟아졌습니다.

    이정은의 연기는 더 조용하고 더 섬세했습니다. 순애가 남편이 끓인 음식을 처음 입에 넣는 장면에서 그는 말을 아낍니다. 맛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평가받는 입장이 된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  거기엔 연민과 통쾌함과 오래 묵은 외로움이 뒤섞여 눈 하나로 흘러나왔습니다. 변요한이 연기한 아들 명복이 그 밥상을 지켜보는 표정이 풀리는 순간, 극장 안 공기도 함께 풀렸습니다.

    저도 예전엔 이 영화를 "아내가 부엌에서 고생하는 이야기"로만 읽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달리 보입니다. 하응의 낯선 손이 결국 자기 자신을 처음 마주하는 남자의 손이라는 걸, 60대 초반이 되어서야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웨이하이 된장찌개가 가르쳐 준 것

    2004년, 저는 회사 발령을 받아 중국 산동성 웨이하이로 떠났습니다. 처음 6개월은 단신 부임이었습니다. 공장 관리책임자로 현지 직원 수백 명을 이끌면서도, 밤이 되면 텅 빈 숙소에서 혼자 컵라면을 뜯었습니다.

    6개월 뒤 아내와 두 아들이 웨이하이로 왔을 때, 아내는 짐도 채 풀기 전에 작은 중국제 냄비를 꺼내 된장찌개를 끓였습니다. 현지 된장은 맛이 달랐고 두부는 물컹했습니다. 저는 그 찌개를 두 그릇 비웠습니다. "맛있다"는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아마 안 했을 겁니다. 당연한 것처럼 앉아서 먹었겠지요.

    중국 15년 동안 아내는 이방 땅에서 아이 둘 키우며 삼시 세끼를 차렸습니다. 저는 그 밥상 앞에 앉기만 했습니다. 하응이 40년간 그랬던 것처럼. 영화를 보면서 그 청도 된장찌개가 자꾸 떠올랐습니다. 당신은 하응과 얼마나 다른가,라는 질문이 내내 떠나질 않았습니다.

    1999년에는 아내가 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 당일 아침, 수술복 차림으로 병상에 누운 아내가 제일 먼저 한 말이 "아이들 아침은 챙겼어요?"였습니다. 저는 대답을 못 했습니다. 챙기지 못했으니까요. 그날 처음으로 '이 사람이 없으면 어떡하나'를 생각했습니다. 잃어버릴 뻔해야 소중함을 깨닫는 남자들의 어리석음이, 하응에게도 저에게도 똑같이 있었습니다.

    버스 안 노부부가 건넨 질문

    얼마 전 오전 첫차를 몰다가 노부부가 함께 탑승하는 걸 봤습니다. 두 분 다 일흔은 넘어 보였습니다. 할아버지가 교통카드를 먼저 찍고 창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할머니가 뒤따라 들어오는데 할아버지는 돌아보지도 않았습니다. 종점까지 두 분은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릴 때, 할아버지가 먼저 일어나 할머니 손을 잡아 부축했습니다. 말은 없어도 손은 잡는 사람들. 그 짧은 장면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매일 핸들을 잡으며 승객들한테서 인생을 하나씩 배웁니다. 그날은 부부에 대해 배웠습니다. 40년을 같이 살면 저렇게 되는 건지, 아니면 저렇게 되려고 40년을 사는 건지. 영화 속 하응과 순애가 밥상을 사이에 두고 애증의 세월을 뚫고 서로에 대한 진심을 확인하는 결말을 보면서, 그 노부부 생각이 다시 났습니다. 당신도 그 할아버지처럼 손은 잡고 있는가,라고 영화가 조용히 물어보는 것 같았습니다.

    시골 밥상이 남긴 밥 한 그릇의 무게

    어릴 때 충북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봄이면 담배 모종을 심고, 여름이면 감자를 캤습니다. 그 시절 어머니는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밥을 지었습니다. 쌀이 귀한 날은 보리를 섞었고, 반찬이 없는 날은 된장에 고추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저는 그 밥을 먹고 학교에 갔습니다. 맛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그냥 먹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큰 수고인지를, 저는 오십이 넘어서야 조금씩 알기 시작했습니다. 14회 차 촬영과 33명의 스태프, 약 5억 원으로 만들어진 이 영화가 146분 동안 말하는 것도 결국 그 하나입니다. 당연하게 받아온 밥 한 그릇의 무게.

    하응이 처음으로 혼자 끓인 국을 상에 올리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국이 아니라 하응의 손을 비춥니다. 떨리지는 않지만, 조심스럽습니다. 그 손이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건, 어쩌면 그 손이 제 손이기도 해서였을 겁니다. 저도 언젠가 부엌에 한번 들어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은 못 하겠지만, 처음으로 그 생각을 진지하게 했습니다.

    이준익 감독과 세 배우가 만들어낸 이 영화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부엌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세로 프레임이라는 좁은 화면에서, 오랜 부부의 묵은 감정이 천천히 드러납니다. 40대 이상 부부가 함께 보면 상영 내내 서로 쳐다보기 불편할 만큼 찔리는 장면이 많습니다.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할 준비가 된 분, 그리고 오래된 관계를 다시 들여다보고 싶은 분께 권합니다.

    • 오랜 부부 관계를 돌아보고 싶은 40~60대 관객
    • 세로형 숏드라마라는 새로운 극장 경험에 관심 있는 분
    • 가족 드라마에서 울고 싶지 않고 대신 생각하고 싶은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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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점 ★★★½☆ (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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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평 및 관람 포인트

    작은아들의 그 질문 "아빠, 요리 한 번이라도 해준 적 있어요?"을 이 영화가 2시간 26분 동안 천천히 설명해 줬습니다. 중국 15년을 함께 버텨준 아내에게 청도 된장찌개 한 그릇의 고마움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하응의 어색한 손이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영화관을 나오며 집밥 한 그릇이 아니라 그 한 그릇을 차려온 사람의 시간을 비로소 세어보게 됩니다 그 셈을 시작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이 영화의 가장 조용하고 가장 강한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