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림 감독의 2013년 작 《관상》은 조선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천재 관상가 내경(송강호)이 수양대군(이정재)의 역모를 꿰뚫어 보면서도 역사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는 비극을 그린 사극 드라마입니다. '얼굴로 운명을 읽는다'는 독창적인 소재에 묵직한 역사적 질문을 얹어, 개봉 당시 누적 관객 913만 명을 돌파한 화제작으로, 배우들의 압도적인 앙상블 연기가 139분 내내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합니다.버스 휴게실에서 동료 기사 한 분이 "형님, 얼굴 잘 읽으시잖아요, 이 영화 딱 형님 스타일"이라며 툭 던진 말 한마디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였습니다. 퇴근 후 소파에 기대어 틀었는데, 139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빠져들었습니다.송강호 눈빛이 담아낸 앎의 고통저는 핸들을 잡은 지 7년이 넘었습니다...
버스 핸들을 잡은 지 7년이 넘었습니다. 매일 서울 구석구석을 오가다 보면 이 도시가 얼마나 다른 세계들로 겹쳐져 있는지 몸으로 느낍니다. 동료 기사가 "요즘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난리야"라고 했던 2019년 저녁, 퇴근 후 혼자 영화관에 앉았고 그날 이후 이 영화는 제 머릿속에서 한 번도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계단 위에서 맡은 냄새가 계급의 언어였다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스스로 "계단 영화"라고 불렀습니다. 반지하에서 평지로, 평지에서 박 사장의 언덕 위 저택으로, 그 저택 지하에 다시 방공호. 카메라는 이 영화 내내 오르고 내리는 일만 반복합니다. 기택 가족이 박 사장 집 언덕을 걸어 올라갈 때 카메라는 서서히 틸트 업(tilt-up,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촬영) 상승의 욕망을 품은 앵글..
2006년 여름, 저는 중국 웨이하이 공장 주재원 생활을 막 시작하던 참에 여름휴가로 잠깐 귀국해 혼자 극장을 찾았습니다. 가족은 중국에 두고 온 채였고, 그 서늘한 혼자라는 감각이 오히려 스크린 속 한강의 여름 햇살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극장을 나와 서울 거리를 혼자 걸었습니다. 사람들은 평소처럼 웃고 이야기했지만 이상하게 제 마음만 무거웠습니다. 영화 속 괴물보다 가족과 떨어져 있는 제 현실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한강 한복판에서 시작된 진짜 공포봉준호 감독이 던진 첫 번째 도발은 '대낮'이었습니다.일반적인 괴수 영화(Monster Movie)는 어둠 속에서, 안갯속에서, 실루엣을 조금씩 보여주다 마지막에 전모를 드러냅니다. 공포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온다는 장르적 문법(Genre..
2013년 12월 그 영화가 극장가를 휩쓸 때, 저는 중국 산동성에서 MRO 부품 재고표를 들여다보며 밤을 지새우고 있었습니다. 관객 1,137만 명을 기록하며 한국 사회를 뒤흔든 영화를(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링크) 올해 처음 봤습니다. 60 넘은 버스기사가 이어폰 끼고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두 번이나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습니다. 눈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가슴이 너무 무겁게 내려앉아서, 잠시 숨을 고르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국밥집 아주머니의 눈물이 잠든 양심을 깨웠다영화에서 제 마음을 가장 먼저 건드린 건 송우석이 아니라 국밥집 아주머니 최순애였습니다. 김영애 선생님이 연기한 그 인물, 아들 진우가 끌려간 뒤 허름한 국밥집을 혼자 지키며 변호사 문을 두드리는 장면. "제 아들은 책을 읽었을 ..
저는 택시 자격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물 면허도, 시내버스 핸들도 저에게 운전은 밥줄이자 자존심입니다. 2017년 개봉 당시 〈택시운전사〉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 같은 사람 이야기겠구나" 싶었지만, 그때는 중국 MRO 사업이 무너지던 시절이라 극장에 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 영화를 제대로 마주한 건 버스 운전을 시작하고 한참 뒤, 늦은 밤 배차를 끝내고 기숙사 방에 혼자 누워서였습니다. 작은 핸드폰 화면이었지만 영화는 조금도 작지 않았습니다.돈을 위해 잡은 핸들이 역사의 현장에서 떨리기 시작했다송강호가 연기한 만 섭은 처음에 그냥 돈 때문에 움직입니다. 밀린 월세, 딸아이 밥값. 독일 기자를 태우고 광주까지 가면 큰돈을 받는다는 말에 덜컥 핸들을 잡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피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