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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인
    변호인

    2013년 12월 그 영화가 극장가를 휩쓸 때, 저는 중국 산동성에서 MRO 부품 재고표를 들여다보며 밤을 지새우고 있었습니다. 관객 1,137만 명을 기록하며 한국 사회를 뒤흔든 영화를(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링크) 올해 처음 봤습니다. 60 넘은 버스기사가 이어폰 끼고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두 번이나 일시정지 버튼을 눌렀습니다. 눈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가슴이 너무 무겁게 내려앉아서, 잠시 숨을 고르지 않으면 안 됐습니다.

    국밥집 아주머니의 눈물이 잠든 양심을 깨웠다

    영화에서 제 마음을 가장 먼저 건드린 건 송우석이 아니라 국밥집 아주머니 최순애였습니다. 김영애 선생님이 연기한 그 인물, 아들 진우가 끌려간 뒤 허름한 국밥집을 혼자 지키며 변호사 문을 두드리는 장면. "제 아들은 책을 읽었을 뿐입니다"라는 그 한 줄이 귀에 꽂히는 순간, 저는 2006년 청도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저는 산동성 청도 외곽 공장의 관리책임자로 막 부임한 해였습니다. 현지 직원들과 말이 완전히 통하지 않던 시절, 어느 날 공장 인근 작은 국숫집 주인아주머니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몸짓과 엉성한 한국말로 사정을 털어놓는데, 요지는 이랬습니다. 아들이 공장 납품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아 현지 공안에게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는 그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단순 심부름꾼이었는데 말이죠. 아주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제 손을 잡았습니다. 말이 안 통해도 그 손의 떨림은 알겠더라고요.

    결국 제가 현지 담당자와 함께 나서서 사실 관계를 정리해 준 덕에 아이는 며칠 만에 풀려났습니다만, 그 아주머니 눈빛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합니다. 영화 속 최순애의 얼굴에서 그 청도 아주머니를 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저는 그 국숫집 아주머니를 돕는 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눈앞에 억울한 사람이 있으니 도왔을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야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때 제가 모른 척하고 사무실로 돌아갔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나름의 이유를 댔겠지요. "중국 공안 일에 외국인이 끼어드는 건 위험하다"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그 합리화가 얼마나 쉬운지를, 영화 속 송우석의 초반 모습이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독자 여러분은 눈앞에 억울한 사람을 두고 외면한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그 질문이 지금도 불편합니다. 불편하다는 건, 아직 살아 있는 양심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전문용어 하나 짚고 가겠습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국가보안법(國家保安法)은 1948년 제정된 법으로, 반국가 단체의 활동을 규제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는 공안통치(公安統治) 수단으로 남용되어 수많은 무고한 시민이 간첩 혐의를 뒤집어쓴 사례가 있었습니다.(출처: 국가인권위원회, 링크)

    법정에서 터진 사자후가 시대의 벽을 흔들었다

    송강호라는 배우를 처음 스크린에서 만난 건 꽤 오래전 일이지만, 이 영화에서의 그는 분명히 달랐습니다. 초반부의 송우석은 능글맞고 세속적인 인물입니다. 돈 냄새 맡는 데 귀신같고, 부동산 등기 업무로 떼돈을 버는 세무변호사. 송강호는 이 인물을 연기할 때 눈빛에 묘한 활기를 심어둡니다. 반짝이되 따뜻하지 않은 눈빛, 세상을 이미 다 파악한 사람처럼 약간 비스듬히 기울인 자세, 돈 이야기가 나올 때 순간적으로 빨라지는 말투. 이 디테일들이 쌓여 관객은 자연스럽게 이 인물을 "영리하지만 아직 덜 깨어난 사람"으로 읽게 됩니다.

    예전에 저는 이런 유형의 인물을 단순히 "속물"이라고 봤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게 읽힙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감각을 닫아온 사람입니다. 저도 중국에서 15년을 보내는 동안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걸 보면 아프니까, 안 보이는 척하는 법을 배웠던 시절이요. 그러다 어느 순간 그 감각을 열면 얼마나 크게 흔들리는지, 송우석의 변화가 그걸 아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그가 진우의 고문 흔적을 눈으로 확인하는 장면에서 송강호의 연기는 완전히 다른 결로 전환됩니다. 말이 없어집니다. 눈빛이 흔들리다가 굳어집니다.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는 그 정지된 침묵이 어떤 대사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전달합니다. 이동진 평론가가 "거인의 사자후"라고 표현한 법정 장면에서 송강호는 목소리를 높이되 절규하지 않습니다. 분노를 억누르는 사람의 떨림, 바로 그 절제(節制)가 오히려 더 강하게 심장을 건드립니다.

    곽도원이 연기한 차동영 검사도 인상적입니다. 그가 무서운 이유는 스스로를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눈빛에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확신에 찬 눈, 정의롭다고 믿는 사람의 단단한 표정. 이것이 이데올로기(ideology)의 무서움입니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잔인함을 정당화한다는 것을, 곽도원은 과잉 없이 정밀하게 표현합니다.

    양우석 감독의 연출 방식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영화는 스펙터클을 피합니다. 고문 장면도, 시위 장면도 직접 보여주기보다 미장센(mise-en-scène, 화면 구성의 총체)을 통해 결과와 반응으로 전달합니다. 좁고 어두운 취조실, 형광등 하나가 깜박이는 구금 공간. 그 폐쇄적 공간이 말하는 것은 단순한 배경 이상입니다. 권력이 개인을 어떻게 압축하고 질식시키는지를 공간 자체가 증언합니다.

    나라면 그 법정에서 저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잃을 게 많다는 걸 아는 사람이 그 모든 걸 걸고 일어서는 순간, 그게 영화의 가장 큰 질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고문 청년의 침묵이 가장 강렬한 증언이었다

    임시완의 연기가 놀라웠습니다.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을 산산이 부수며, 고문(拷問)으로 몸과 정신이 무너진 청년 박진우를 연기할 때 그는 시선을 의도적으로 허공에 고정시킵니다. 초점 없이 떠도는 눈, 질문에 반응하지 못하고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 자신이 진우라는 사실조차 잊은 듯한 공허한 표정. 이 연기가 무서운 이유는 과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리 지르지 않아도, 눈물 흘리지 않아도, 그 침묵이 고문의 실체를 가장 적나라하게 증언합니다.

    저는 버스를 운전하면서 가끔 그런 눈빛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무언가에 깊이 짓눌린 사람 특유의 공허한 눈. 뒷자리에 조용히 앉아 종점까지 내리지 않는 손님, 요금을 넣고 고개를 들지 못하는 손님. 저는 백미러로 그 사람들을 한 번씩 다시 봅니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지만, 그냥 한 번은 봐야 할 것 같아서요.

    박진우가 결국 법정에서 스스로 자신이 박진우임을 밝히는 장면은 이 영화의 카타르시스(catharsis, 감정의 정화)입니다. 무너진 줄 알았던 한 인간이 마지막 남은 자존(自存)을 붙들고 일어서는 그 순간, 저는 2019년을 생각했습니다. 주식 리딩방 사기로 큰돈을 잃고 쿠팡 배달 박스를 짊어지고 새벽 아파트 계단을 오르던 때. 그때도 제가 저라는 사실만은 잊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바닥이어도 내가 나라는 것, 그게 버틸 수 있는 이유였습니다.

    이 영화가 단순한 정치 드라마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제도와 권력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한 인간이 어떤 계기로 각성(覺醒)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각성의 촉매가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국밥을 먹여준 아주머니의 눈물이었다는 것이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마지막 장면, 99명의 변호인이 법정에 서는 그 엔딩. 처음 봤을 때는 뭉클하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니, 그 99명은 각자의 국밥집 아주머니를 마음속에 품고 일어선 사람들이었겠구나 싶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삶에는 그런 사람이 있으신가요? 누군가의 떨리는 손을 잡게 만드는 그 존재 말입니다.

    결론: 솔직한 평가와 추천 대상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이 다소 과잉되는 지점이 있고, 차동영이라는 인물은 악의 입체성이 조금 더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선악 구도가 명확한 만큼 갈등의 긴장감이 중반 이후 예측 가능하게 흘러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꼭 봐야 할 작품입니다. 특히 이런 분들께 권합니다.

    • 살다가 한 번쯤 "이게 옳은 일인지" 알면서도 외면한 적 있는 사람
    • 무너질 것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
    • 60대든 20대든,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고 싶은 사람

    국밥집 아주머니의 눈물이 한 변호사를 바꿨듯, 이 영화 한 편이 당신의 무언가를 조용히 건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그 가능성을 믿습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