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핸들을 잡은 지 7년이 넘었습니다. 매일 서울 구석구석을 오가다 보면 이 도시가 얼마나 다른 세계들로 겹쳐져 있는지 몸으로 느낍니다. 동료 기사가 "요즘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난리야"라고 했던 2019년 저녁, 퇴근 후 혼자 영화관에 앉았고 그날 이후 이 영화는 제 머릿속에서 한 번도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습니다.계단 위에서 맡은 냄새가 계급의 언어였다봉준호 감독은 《기생충》을 스스로 "계단 영화"라고 불렀습니다. 반지하에서 평지로, 평지에서 박 사장의 언덕 위 저택으로, 그 저택 지하에 다시 방공호. 카메라는 이 영화 내내 오르고 내리는 일만 반복합니다. 기택 가족이 박 사장 집 언덕을 걸어 올라갈 때 카메라는 서서히 틸트 업(tilt-up,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촬영) 상승의 욕망을 품은 앵글..
2006년 여름, 저는 중국 웨이하이 공장 주재원 생활을 막 시작하던 참에 여름휴가로 잠깐 귀국해 혼자 극장을 찾았습니다. 가족은 중국에 두고 온 채였고, 그 서늘한 혼자라는 감각이 오히려 스크린 속 한강의 여름 햇살을 더 선명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극장을 나와 서울 거리를 혼자 걸었습니다. 사람들은 평소처럼 웃고 이야기했지만 이상하게 제 마음만 무거웠습니다. 영화 속 괴물보다 가족과 떨어져 있는 제 현실이 더 크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한강 한복판에서 시작된 진짜 공포봉준호 감독이 던진 첫 번째 도발은 '대낮'이었습니다.일반적인 괴수 영화(Monster Movie)는 어둠 속에서, 안갯속에서, 실루엣을 조금씩 보여주다 마지막에 전모를 드러냅니다. 공포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온다는 장르적 문법(Genre..
하루 네 시간도 못 자는 날이 많습니다. 버스 핸들을 잡고, 보험 전화를 돌리고, 틈틈이 병원 동행 봉사를 마치고 나면 새벽이 되어 있습니다. 그 피로 속에서 봉준호 감독의 신작 미키 17을 봤습니다. 영화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몸은 복제되어도 기억과 감정은 오직 하나의 미키에게 남는다.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면서도 섬뜩합니다. 머나먼 행성을 식민지화하는 우주선 안에서 '익스펜더블(expendable)'이라 불리는 존재, 미키 17(로버트 패틴슨)은 죽을 때마다 새 몸으로 복제됩니다. 위험한 임무에 투입되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또 투입됩니다. 그 과정이 반복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18번째 미키가 생성된 상태에서 17번째 미키가 살아 돌아옵니다. 시스템은 이 상황을 용납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