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한 감독의 2004년 멜로드라마 《내 머릿속의 지우개》는 정우성·손예진 주연으로, 조기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내와 그 곁을 끝까지 지키는 남편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최루성 연출을 의도적으로 절제하면서도 관객의 가슴을 오래 울리는 작품으로, 개봉 당시 전국 관객 317만 명을 동원하며 2004년 한국 멜로 영화 흥행 1위를 기록했습니다.2007년 겨울, 웨이하이의 체감온도는 영하 15도 아래로 떨어지는 날이 많았습니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빌라 틈새를 파고드는 소리를 들으며, 아내가 어디선가 구해 온 DVD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였습니다. 좁은 거실에 네 식구가 모여 앉아 영화를 틀었는데, 저는 과자를 집어 먹다가 어느 순간 손이 멈췄습니다. 수진의 기억이 조각조각 사라..
이용주 감독의 2012년 작 《건축학개론》은 20살 캠퍼스에서 시작된 말 못 한 첫사랑과 15년 후 다시 만난 두 남녀의 감정을 건축이라는 틀로 정밀하게 설계한 멜로 영화입니다. 이제훈·수지(과거)와 엄태웅·한가인(현재)의 이중 캐스팅 구조가 특징이며, 누적 관객 411만 명을 돌파한 2010년대 한국 멜로의 대표작입니다.서울 시내버스를 몰다 보면 신호에 걸려 잠깐 멈추는 순간이 있습니다. 차창 너머로 낡은 담벼락, 좁은 골목, 누군가 화분을 내놓은 현관 앞 풍경이 스칠 때면,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하나가 가슴 밑바닥에서 불쑥 올라옵니다. 향수인지 그리움인지, 아니면 그냥 세월의 무게인지. 《건축학개론》을 보고 나서야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었습니다. "완성되지 못 한 채로 남겨진 것들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