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여름 471만 관객을 모은 《파일럿》은 김한결 감독, 조정석 주연의 코미디 영화로, 스타 파일럿이 한순간의 실수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뒤 여동생 신분으로 위장 취업해 재기를 노리는 이야기다. 슬랩스틱과 버벌 코미디를 넘나드는 조정석의 연기와 "절박한 인간은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라는 진지한 질문이 웃음 속에 함께 담겨 있다.큰아들에게서 문자가 온 건 버스를 차고지에 세우고 운전석에 멍하니 앉아 있던 저녁이었습니다. 경찰공무원으로 바쁘게 사는 녀석이 "아버지, 요즘 코미디 영화 하나 괜찮은 게 있던데 같이 봐요"라고 보내온 문자가 반가웠습니다. 결국 혼자 CGV 앞에 섰습니다. 그렇게 《파일럿》을 만났습니다.절박함이 만든 위장 취업의 민낯영화는 시작부터 속도감이 있습니다. 스타 파일럿 한정우(조..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마이클 키튼 주연의 2014년 블랙 코미디 드라마로, 슈퍼히어로 역할로 전성기를 누렸던 한물간 배우가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재기를 꿈꾸며 현실과 환상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는 이야기다. 마이클 키튼의 자전적 무게감과 엠마누엘 루베즈키의 원테이크 촬영이 맞물려, 보는 내내 영화인지 다큐인지 구분이 흐릿해지는 독특한 체험을 선사한다.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처음 이 영화를 알게 됐습니다. 작년 늦가을, 퇴근 후 회사 헬스장에서 시속 8킬로로 달리다가 유튜브 영화 리뷰 채널에서 흘러나온 한 줄 설명에 손이 멈췄습니다. "한때 잘 나갔던 배우가 재기를 꿈꾼다." 속도를 줄이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날 밤 퇴근하자마자 찾아서 봤고, 영화가 끝난 뒤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
2025년 10월 개봉한 라희찬 감독의 코미디 액션 〈보스〉는 조폭 보스 자리를 서로 떠넘기는 세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유쾌하게 던진다. 조우진·정경호·박지환 세 배우의 앙상블이 98분을 꽉 채우는 작품으로, 웃음과 연민을 동시에 건드리는 색다른 조폭 영화다.버스 운행을 마치고 차고지에 들어서던 늦은 오후, 동료 기사 한 분이 옆에 딱 붙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 조우진이 조폭 보스 자리를 죽어도 안 하려 해요. 중식당 하겠다고."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귀에 걸렸습니다. 권력을 향해 싸우는 이야기가 아니라, 권력을 피해 달아나는 이야기라니. 발걸음이 저절로 극장 쪽으로 향했습니다.보스를 거부한 세 남자의 속사정용두시 최대 조직 식구파의 보스 임대수가 갑작스러..
이환경 감독의 2013년 천만 관객 영화 《7번 방의 선물》은 지적장애 아버지 용구(류승룡)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수감된 교도소에서 딸 예승(갈소원·박신혜)과 나누는 절절한 부성애를 그린 코미디 드라마입니다.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건드리는 한국형 신파의 정점으로, 1972년 춘천 조작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현실의 무게를 동화적 감성으로 풀어냈습니다.2013년 겨울, 저는 중국 웨이하이의 한국인 상영관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보았습니다. MRO 사업을 막 시작하던 때였고, 주말 저녁 큰아들(중학생)과 작은아들(초등학생)을 데리고 찾아간 자리였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상영관 밖으로 나오니 한겨울 웨이하이의 바닷바람이 뺨을 때렸는데, 아이들 눈이 둘 다 벌게져 있었습니다. 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손을 하나..
2015년 개봉한 이병헌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으로, 김우빈·이준호·강하늘이 백수·재수생·엄친아 세 친구를 연기한 코미디 영화입니다. 후반부 신파 없이 마지막까지 웃음을 밀어붙이는 일관된 전개로 누적 관객 304만 명을 동원했습니다.아내가 소파 옆에서 TV를 틀었을 때, 저는 이미 잠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주말 오후 늦게 버스를 몰고 들어온 터라 눈꺼풀이 무거웠거든요. 그런데 화면에서 김우빈이 뭔가를 능청스럽게 저지르는 장면이 눈에 들어오더니, 어느새 115분을 꼼짝없이 앉아서 다 봤습니다. 웃겼습니다. 그런데 웃음이 걷히고 나서 남는 것이 있었습니다. 스물이라는 나이가 원래 저렇게 지질하고, 그래서 눈부신 거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미화 없이 밀어붙인 세 배우의 지질한 용기김우빈, 이준호, 강하늘..
이기혁 감독의 장편 데뷔작 〈메서드연기〉(2026)는 '알계인 배우' 꼬리표를 벗어나려는 이동휘가 사극 임금 역에 무모하게 뛰어들며 벌어지는 메타 코미디다. 이동휘·윤경호·강찬희가 실제와 허구 사이의 경계를 유쾌하게 무너뜨리며, 웃음 뒤에 진지한 여운을 남긴다.버스를 몰다 보면 사람의 얼굴을 많이 보게 됩니다. 이른 아침 정류장에서 올라타는 사람들은 저마다 어딘가로 가고 있고, 저마다 어떤 역할을 오늘도 해내야 합니다. 운전기사, 회사원, 부모, 자식. 어느 날 문득 그 역할과 자기 자신이 얼마나 다른지 의식하게 될 때, 사람은 조금 외로워집니다. 영화 〈메서드연기〉는 바로 그 틈을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예고편에서 이동휘가 금식을 선언해 놓고 바지 속에 삼각김밥을 숨겨두다 들통나는 장면을 처음 봤을 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