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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8번 출구 리뷰] 일상의 균열을 감지하는 힘, 우리를 구하는 '깨어 있음'에 대하여

73분짜리 영화가 이렇게 오래 머무를 줄은 몰랐습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소개됐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봤는데, 막상 틀고 나서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새벽이었는데, 그 통증도 한동안 잊었습니다."반복되는 일상"이 균열을 숨긴다반복되는 일상은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든다. 그게 함정이다.2004년 처음 상하이에 발령받았을 때, 저는 매일 같은 길을 걸었습니다. 숙소에서 사무실까지, 사무실에서 식당까지. 몇 달이 지나자 그 길이 너무 익숙해져서 오히려 이상한 날에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어느 날 평소 가던 골목이 공사로 막혀 있었는데, 저는 그걸 한 블록 지나쳐서야 알아챘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너무 익숙해지면 오히려 눈이 닫힌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8번 ..

영화 2026. 6. 14. 10:06
[마이클] 결함 속에 숨겨진 신성의 역설, 세상을 깨우다 ( 기적, 치유)

새벽 첫차를 몰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지금 이 핸들을 잡고 있는 내가, 대기업 사원증을 달고 중국 출장 비행기를 탔던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인지. 그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던 어느 날 밤, 오래된 DVD 케이스를 꺼냈습니다. 1996년 노라 애프론 감독의 영화 《마이클》이었습니다.결함 속에 숨겨진 신성의 역설영화 속 마이클(존 트라볼타)은 천사입니다. 하지만 이 천사는 담배를 물고, 파이를 탐하고, 여자를 밝힙니다. 날개는 달려 있지만 깃털은 지저분하고 몸에서는 냄새가 납니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저는 솔직히 '이게 천사 맞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한 5분쯤 지나고 나니 오히려 그게 위로였습니다.마이클이라는 캐릭터는 아이러니의 교과서 같은 사례입니다. 그가 거룩하기 때문에 감동을 주는 게..

영화 2026. 6. 13. 17:56
[정보원] 국가 시스템 은, 개인은 그 톱니바퀴 속에서,소모 되고

《정보원(The Informer)》(2019)은 안드레아 디 스테파노 감독이 연출한 범죄 스릴러로, FBI와 마약 카르텔 사이에서 이중 스파이로 살아가는 전과자 피트 코스타(조엘 키나만)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114분 분량이며, 로사문드 파이크·클라이브 오웬·아나 데 아르마스가 함께 출연했습니다.새벽 4시, 핸들을 잡기 전에 잠깐 핸드폰을 들여다보다 이 영화를 틀었습니다. 다 보고 나서 한참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무언가 건드려진 게 있었는데, 그게 뭔지 정리가 안 됐습니다. 며칠 지나서야 알았습니다. 이 영화가 첩보물처럼 생겼지만 실은 다른 걸 묻고 있더라고요. 국가와 시스템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 질문이 제 안에서 오래된 기억 하나를 건드렸던 겁..

영화 2026. 6. 13. 10:38
[얼굴] 어머니의 죽음 ,우리가 함께 , 애도가 삶을 다시 열어준다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너무 어렵다"는 인상만 남았습니다. 대사도 없고, 설명도 없고, 화면은 한참을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새벽 네 시 반에 첫차를 몰고 나가면서 갑자기 그 장면들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텅 빈 도로, 아무도 없는 루브르의 복도, 그리고 그 안에서 혼자 서 있는 이강생의 뒷모습. 그제야 알았습니다. 이 영화는 설명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담아두고 있다는 것을."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나는 멈췄다"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말은, 어떤 언어로도 충분히 담기지 않습니다. 차이밍량 감독이 이 영화를 만든 직접적인 계기가 바로 어머니의 죽음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저는 다시 처음 장면으로 돌아갔습니다...

영화 2026. 6. 12. 21:50
[레드 노티스] 영화 리뷰-배신의 연속 속에서도 빛난 세 배우의 케미

서울 새벽 거리를 수백 명의 승객과 함께 달린 뒤 집에 돌아오면, 머리를 비우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그날 넷플릭스에서 선택한 영화가 바로 《레드 노티스》였습니다. 화려한 액션과 끊임없는 반전, 그리고 세 배우의 뛰어난 호흡이 피로를 잊게 만들었습니다.반전과 케미, 이 영화가 90%의 관객을 사로잡은 이유《레드 노티스》는 인터폴의 최고 수배 등급을 뜻하는 '레드 노티스'를 소재로 한 글로벌 액션 코미디입니다. FBI 프로파일러인 존 하틀리는 전설적인 미술품 도둑 놀런 부스를 쫓다가 오히려 누명을 쓰고 레드 노티스 수배자가 됩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지만, 바로 이 설정이 영화 전체를 끌어가는 핵심 동력입니다. 두 사람은 진짜 범인인 비숍을 잡기 위해 손을 잡고, 클레오파트라의 황금 알 세 개를 둘러싼 추..

영화 2026. 6. 7. 07:33
[영화 캐리온 리뷰] 공항 검색대, 그 밀폐된 공간에서 마주한 생존의 무게

2004년부터 7년간 중국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공항 보안 검색대를 수십 번 통과했습니다. 당시에는 그냥 줄 서서 가방 올리고 벨트 풀고 통과하면 그만이었습니다. 그 검색대 직원이 어떤 마음으로 거기 서 있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야 뒤늦게 미안해졌습니다.공항이라는 무대가 만들어내는 밀폐감《캐리온》은 크리스마스이브의 LA 국제공항(LAX)을 배경으로 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날, 수십만 명이 귀향을 위해 몰려드는 공간. 영화는 이 혼잡함을 단순한 배경으로 쓰지 않습니다. 자우메 콜렛세라 감독은 공항이라는 공간의 특수성, 즉 들어가면 마음대로 나올 수 없고, 모든 이동이 감시되며, 예외 없이 검색을 받아야 하는 그 통제된 구조 자체를 압박 도구로 씁니다.TSA는..

영화 2026. 6. 6.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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