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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과나날

    2006년 봄이었습니다. 웨이하이 외곽 공단 지역, 회사가 마련해 준 숙소는 방 세 개짜리였고 냉장고도 있었습니다. 넓었습니다. 근데 그게 문제였습니다. 넓은 방에 혼자 있으면 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복도에서 들려오는 낯선 언어,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침묵. 그때 저는 고독인지 자유인지를 한참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퇴근 후 아무 방향으로나 걸어 들어갔던 골목들이 익숙해질수록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졌고, 장날 시장 한복판에서 손짓 발짓으로 음식을 사 먹으면서도 저는 분명히 거기 있었지만 거기에 속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여행과 나날》(旅のおわり世界のはじまり, 2019)을 보는 내내 가슴 한쪽이 계속 당겼습니다. 영화는 2019년 제72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피아자그란데 부문 폐막작으로 상영된 작품으로, 우즈베키스탄 현지 올로케이션으로 촬영됐습니다. Tokyo Theatres Co. 및 Loaded Films가 제작했고, 배우 마에다 아츠코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TV 취재팀의 일원으로 우즈베키스탄에 파견된 한 여성이 낯선 땅에서 서서히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줄거리라 부를 만한 사건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영화는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내내 시선을 붙잡습니다.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오래 머물게 되는 영화입니다. 여러분도 낯선 도시에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혼자인 기분을 느껴본 적 있으신가요?

    "낯선 땅"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낯선 땅"은 지도 위의 좌표가 아닙니다. 저는 그걸 상하이에서 배웠습니다. 언어가 다르고, 음식이 다르고, 사람들이 웃는 방식조차 달랐습니다. 그런데 진짜 낯설었던 건 그 외부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 환경 속에 던져진 제 자신이 낯설었습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 나아가 자기 인식의 문제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언어로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여행과 나날》의 구로사와 감독은 바로 이 지점을 카메라로 정확히 짚습니다. 롱테이크(long take), 즉 편집 없이 한 장면을 길게 가져가는 촬영 기법을 통해 관객에게 인물과 함께 그 공간 속에 가만히 머물게 합니다. 광활한 사마르칸트 벌판, 오래된 시장 골목, 낯선 사람들의 시선들. 카메라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주인공 요코(마에다 아츠코)가 그 풍경 안에서 무엇을 느끼는지 직접 말해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라면 낯선 도시에서 혼자 남겨졌을 때, 두려움과 마주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익숙한 곳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주인공이 왜 그 먼 땅에서 자꾸 노래를 부르려 하는지,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취재팀 소속이니 역할은 있고, 숙소도 있고, 동행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내내 어딘가에 속하지 못하는 표정입니다. 그것은 '낯선 땅'이 물리적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거리 문제라는 것을 감독이 조용히 가리키는 방식입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공단 골목을 아무 이유 없이 걸어 들어갔던 그 밤들을 다시 꺼냈습니다. 거기에 있었지만 거기가 아니었던, 그 기묘한 감각.

    낯선 땅은 지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는 그 순간, 어디서든 낯선 땅은 시작됩니다.

    "홀로 서야 할 때" 비로소 두려움과 마주한다

    "홀로 서야 할 때"라는 표현을 저는 오랫동안 낭만적인 말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자리에 서보면 낭만이 아닙니다. 두렵습니다. 2019년, 중국에서의 MRO 사업을 접고 귀국하면서 저는 처음으로 제 이름 석 자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경험했습니다. 직함도 없고, 소속도 없고, 다음 달 수입도 불투명했습니다. 그 무렵 버스 핸들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핸들을 잡고 있으면서도 이게 내가 맞나 싶은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체면이니 자존심이니 하는 것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습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을 피해서는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 속 요코가 가장 긴장된 얼굴을 하는 장면은 전쟁이나 위기의 순간이 아닙니다. 낯선 무대에 홀로 올라 노래를 불러야 하는 순간입니다. 감독은 그 순간에만 카메라를 얼굴 가까이 가져갑니다. 왜일까요? 저는 그게 두려움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겠다는 감독의 선택이라고 읽었습니다. 잘 부르는 노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거기 서 있는다는 것, 소리를 낸다는 것, 그것이 이 장면의 핵심입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 도망쳤을 겁니다. 아니, 실제로 오랫동안 도망쳤습니다. 두려움 앞에서 제가 주로 쓴 방법은 더 바빠지는 것이었습니다. 더 많은 자격증을 따고, 더 많은 일을 만들어서 두려움이 파고들 틈을 없애는 방식이었습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심리상담사 공부도, 어떤 의미에서는 그 두려움을 우회하려는 시도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2023년 9월, 예기치 않게 성령충만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두려움을 우회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한가운데 그냥 서 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연출 미덕은 두려움을 해소해 주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영화는 요코의 불안을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그냥 두 눈 뜨고 거기 서 있게 합니다. 그리고 그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을 조용히 암시합니다. 그것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며칠이 지나도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시간이 "나를 알게" 해주었다

    "나를 알게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저는 꽤 늦게 알았습니다. 중국에서도 몰랐고, 귀국 초반에도 몰랐습니다. 새벽 네 시, 아직 서울이 깨어나기 전 텅 빈 도로를 달리면서 서서히,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허리가 아프고 잠은 네 시

    ❓ 자주 묻는 질문

    Q. 여행과 나날 결말 뜻 — 마지막 장면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A. 영화는 요코가 낯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행위를 통해, 두려움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한가운데 그냥 서 있는 것 자체가 변화의 시작임을 암시하며 끝납니다. 결말은 문제가 해결됐다는 신호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거리를 조금씩 좁혀나가기 시작했다는 조용한 선언에 가깝습니다.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오래 마음에 남는 엔딩입니다.

    Q. 여행과 나날 실화 여부 —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여행과 나날》은 실화 기반 작품이 아니라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오리지널 픽션입니다. 다만 우즈베키스탄 현지 올로케이션 촬영을 통해 사마르칸트의 실제 풍경과 시장, 사람들을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적인 질감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그 현실감이 오히려 주인공의 감정을 더 생생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Q. 여행과 나날 러닝타임 및 관람 난이도 — 어떤 분께 추천하나요?
    A. 러닝타임은 약 2시간(120분 내외)이며, 빠른 편집이나 강한 사건 전개 없이 롱테이크 위주로 흘러가는 작품입니다. 극적인 갈등이나 반전을 기대하는 분보다는, 조용히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화를 좋아하는 분께 잘 맞습니다. 낯선 환경에서 혼자 지내본 경험이 있다면 공감의 밀도가 훨씬 높아지는 영화입니다.

    Q. 여행과 나날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특징 — 이 감독의 다른 작품과 어떻게 다른가요?
    A.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큐어》《회로》같은 공포·스릴러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여행과 나날》은 그 계보와는 전혀 다른 결의 작품입니다. 공포 대신 고독을, 긴장 대신 침묵을 택하면서도 특유의 롱테이크와 공간 연출은 그대로 살아 있어, 감독의 폭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주는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 함께 보면 좋은 영화

    • 프리랜서 — 소속과 역할을 잃은 자리에서 자유와 불안 사이를 오가는 감각이, 낯선 땅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요코의 내면과 맞닿아 있습니다.
    • 얼굴 — 상실과 애도를 통해 비로소 자기 자신을 다시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다룬 작품으로, 고독 속에서 내면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여행과 나날》의 정서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 악마는 플러스 사이즈를 입는다 — 주어진 역할과 환경 속에서 "나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낯선 땅에서 자기 자신을 서서히 마주해 가는 요코의 여정과 같은 질문을 공유합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