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2월, 저는 대기업을 떠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서른넷이었습니다. 동료 서너 명과 함께 빼곡히 들어찬 상영관에 앉아 쉬리를 처음 봤을 때,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한 수 아래"라던 제 편견이 첫 장면 10분 만에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25년이 지난 지금, 매일 아침 서울 시내버스 핸들을 잡는 60대 초반의 제가 이 영화를 다시 꺼내 드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유중원의 흔들리는 눈빛이 담아낸 침묵의 연기한석규가 연기한 유중원은 제가 아는 한 한국 영화에서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무너지는 인물입니다. 그는 크게 울지 않습니다. 소리를 지르지도 않습니다. 대신 눈이 흔들립니다. 이명현이 이방희임을 알게 되는 순간, 한석규의 ..
웨이하이 숙소의 작은 노트북 화면으로 이 영화를 처음 봤습니다. 2004년, 중국에 막 부임한 지 몇 달이 안 된 시절이었습니다. 동료가 건네준 DVD 한 장이 그 인연의 시작이었고, 그날 밤 저는 두 시간 넘게 꼼짝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21년이 지난 지금, 서울 시내버스 운전석에 앉아 출근 전 다시 한번 이 영화를 틀었습니다. 같은 영화가 이렇게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습니다.형제를 살리려는 진태의 집착이 결국 형제를 무너뜨린다장동건이 연기한 이진태는 처음부터 영웅이 아닙니다. 구두통을 메고 골목을 달리는 사내, 동생 진석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이른 새벽부터 땀을 흘리는 형입니다. 그 눈빛에는 팍팍한 살림 속에서도 절대 지지 않겠다는 형의 자존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