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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의 힘

    영화를 보게 된 건 순전히 교회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주일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이 광고 시간에 짧게 언급하셨습니다. "기독교 영화인데, 액션도 있고 젊은 분들도 좋아할 것 같아요." 기독교 영화라고 하면 자칫 설교처럼 무거워지거나, 반대로 너무 가볍게 미화되는 경우를 몇 번 봐온 터라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런데 '학원 액션'이라는 단어가 제 안의 어떤 본능을 건드렸습니다. 고등학교 때 탁구부 대표로 뛰면서 몸으로 부딪히는 삶을 살았고, 지금도 매일 아침 회사 헬스장에서 러닝과 턱걸이를 이어가는 사람이라 그런지, 몸으로 싸우는 이야기에는 눈이 먼저 갑니다. 결국 버스 비번 날 오후, 혼자 극장을 찾았습니다.

    눈빛 하나로 인물의 무게를 설득한 배우들의 연기

    최지온 감독이 직접 연기한 격투기 마스터 '유신'은 처음 화면에 등장할 때부터 남다릅니다. 화려한 표정 변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절제(節制)입니다. 눈빛 하나로 상황을 읽고, 입술 끝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내면을 드러냅니다. 감독이 직접 주연을 맡으면 자기 과시에 빠지기 쉬운데, 최지온은 그 반대를 택했습니다. 유신이 북을 처음 발견하는 장면에서 그는 시선을 바로 주지 않습니다. 카메라 밖을 향한 듯한 사선(斜線) 시선으로 북의 상황을 훑습니다. 개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저울질하는 그 찰나의 눈빛에서, 힘을 가진 자의 침묵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표정만으로 설득시킵니다.

    소년가장 '북' 역은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만호 패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에서 배우는 분노와 굴욕감을 동시에 몸에 담습니다. 주먹을 꽉 쥐었다가 천천히 푸는 손동작,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깔면서도 완전히 포기하지 않은 눈의 흔들림. 그 손과 눈의 불일치가 북이라는 인물의 핵심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이런 장면을 본 적 있으신가요? 굴복한 척하지만 내면은 아직 꺼지지 않은 사람의 얼굴을요.

    저는 그 손동작을 보며 2004년 청도 공장이 떠올랐습니다. 중국 주재원으로 처음 부임했을 때, 공장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서열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라인 반장이 20대 초반 여성 직원을 공개적으로 망신 주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저는 책임자로서 중국어로 끼어들었습니다. 반장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고, 그날 이후 관계가 한동안 어색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여직원이 나중에 몰래 찾아와 "謝謝(쎄쎄)"라고 말하고 돌아갔습니다. 그 두 글자가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영화 속 유신이 북 편에 처음 서는 장면이 바로 그 기억을 건드렸습니다.

    손주열이 연기한 '백만호'는 단순한 악역으로 소비되지 않습니다. 팔을 느슨하게 걸치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주변을 통제하는 무심한 동작들이 오히려 더 섬뜩합니다. 분노해서 폭력을 쓰는 게 아니라, 습관처럼 권력을 쓰는 인간의 모습. 그것이 현실에서 마주치는 진짜 권력의 얼굴이기에, 더 불편하고 더 리얼했습니다.

    카메라가 선택한 빛과 어둠이 만든 공간의 언어

    최지온 감독의 카메라는 학교라는 공간을 두 가지 색조(色調)로 나눕니다. 만호 패거리가 장악한 구역은 형광등 빛이 차갑고 평평하게 퍼지는 조명(平面照明)으로 처리됩니다. 그늘이 없습니다. 감추는 것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다는 뜻입니다. 권력이 공공연하게 작동하는 공간의 색입니다.

    반면, 유신이 홀로 있거나 북과 대화하는 장면들은 한쪽에서 들어오는 측면 조명(側面照明)으로 처리됩니다. 얼굴의 절반은 밝고, 절반은 어둡습니다. 이 명암 대비(明暗對比)는 이 인물들이 아직 결정하지 못한 것들, 드러내지 못한 것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조명이 내러티브(narrative, 이야기의 흐름)를 대신 말하는 방식입니다.

    여러분은 영화를 볼 때 조명을 의식하며 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으로 "조명이 이야기를 한다"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이해했습니다.

    카메라 앵글(angle, 촬영 각도)도 의도적입니다. 만호가 북을 내려다볼 때는 하이 앵글(high angle, 위에서 내려다보는 구도)을 사용하고, 유신이 만호를 마주할 때는 정면 수평 앵글을 씁니다. 힘의 방향이 바뀌는 것을 카메라 높이로 표현한 겁니다. 말 한마디 없이 구도만으로 권력 이동을 보여주는 이 연출이 154분 내내 일관되게 유지됩니다.

    젊을 때였다면 아마 이런 부분을 그냥 지나쳤을 겁니다. 그냥 액션 장면이 시원하면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겠지요. 60대가 된 지금은 오히려 싸움 장면보다 그 전후의 빛과 구도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나이가 들수록 말보다 맥락을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힘은 어디서 오는가, 60대 버스기사가 스크린에서 찾은 답

    영화의 핵심 질문은 명확합니다. '힘을 가진 자가 운명에 순응할 것인가, 거스를 것인가.' 그리고 그 힘은 어디서 오는가.

    저는 이 질문 앞에서 오래 멈췄습니다. 솔직히 저는 한동안 힘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10년 전 사기 피해를 당하고, 주식 리딩 피해까지 겹치면서 한동안은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 자체가 목표였습니다. 그때 제가 선택한 것은 쿠팡·배달의민족 배달 알바였습니다. 새벽에 버스를 몰고, 쉬는 날에는 오토바이를 몰았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초라하게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저한테는 그 두 바퀴가 버티는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 9월 28일,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제가 느끼는 '힘'의 출처가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힘이 몸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더 강해지면, 더 많이 벌면, 더 많이 쌓으면 힘이 생긴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힘은 내가 가진 것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기대는 것의 깊이에서 온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영화 속 유신이 "HIM", 즉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는다는 메시지가 설교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이 이 감독의 실제 언어였기 때문입니다. 만들어낸 감동 코드가 아니라, 자기 삶에서 길어 올린 언어. 그 진정성이 154분을 버텨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서 힘을 얻고 계신가요? 그 출처가 어디인지 한 번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이 영화는 신앙이 없는 분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습니다. 힘없는 자의 편에 서는 것이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가, 그리고 그 용기는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은 신앙의 유무와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주하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학교 폭력의 현실, 신앙의 언어, 60대가 되어서야 보이는 힘의 본질에 관심 있는 분께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특히 삶이 버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꽤 오래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