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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밍

    2026년 개봉한 이승재 감독의 장편 데뷔작 《허밍》은 재개발을 앞둔 낡은 녹음실에서 이미 세상을 떠난 배우 '미정'의 마지막 목소리를 복원하려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한국 드라마입니다. 김철윤·박서윤·김예지가 주연을 맡아 삶과 죽음 사이 어딘가에 비스듬히 놓인 기억과 상실의 감각을 102분 동안 조용하고도 깊이 있게 그려 냅니다.

    퇴근 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예고편 한 편을 보게 됐습니다. 낡은 녹음실, 죽은 배우의 목소리를 찾는 남자. 단 두 줄이었는데 가슴 어딘가를 건드렸습니다. 버스 핸들을 하루 종일 잡고 있으면 몸은 피곤한데 머리는 오히려 말짱해지는 밤이 있습니다. 그런 날 밤, 저는 《허밍》을 보러 갔습니다.

    낡은 녹음실이 품은 사라진 목소리

    영화관 좌석에 앉자마자 나직한 허밍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사도 없고 멜로디도 희미한, 그냥 입 안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 그 순간 저는 2004년 중국 산동성 웨이하이의 좁은 숙소로 순식간에 끌려갔습니다.

    가족과 함께 주재원으로 처음 발령받던 해였습니다. 큰애는 초등학교 입학 직전이었고, 작은애는 아직 제 발로 뛰어다니기도 버거운 나이였습니다. 두 녀석을 중국 로컬학교에 밀어 넣었더니, 첫 석 달은 그야말로 전쟁이었습니다. 한 마디도 못 알아들으면서 하루 여덟 시간을 교실에 앉아 있어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보다 더 오래 남은 기억이 따로 있습니다. 퇴근 후 숙소에 돌아오면 아내가 부엌에서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가사 없이, 그냥 콧노래처럼. 처음엔 무심코 들었는데, 어느 날 그게 아내가 고향을 그리워할 때만 나오는 소리라는 걸 알아챘습니다. 말로는 단 한 번도 "힘들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낯선 땅에서 아이 둘 건사하며 남편 내조하는 마흔 초반 여자의 외로움이 그 소리에 다 담겨 있었습니다.

    영화 속 성현(김철윤)이 죽은 미정의 목소리를 찾아 녹음실을 헤매는 장면을 보며, 저는 그 콧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이미 사라진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마음. 그것이 사람이든, 시절이든, 목소리이든 간에. 성현이 찾는 것은 사실 미정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 목소리가 살아 있던 시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허밍》은 2026년 2월 4일 개봉해 독립·예술영화 부문에서 주목받은 작품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링크) 102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질 만큼 영화는 관객을 조용히 붙들어 놓습니다. 당신은 '사라진 것'을 붙잡으려 했던 기억이 있습니까?

    죽은 배우를 대신한 민영의 이중 연기

    박서윤이 연기한 '민영'은 묘한 존재입니다. 무명 배우라는 설정 자체가 이미 '비어 있음'을 전제로 합니다. 그 비어 있음을 박서윤은 공허하게 연기하지 않습니다. 민영이 처음 녹음 부스 앞에 서는 순간, 그녀의 눈빛에는 두 겹의 감정이 겹쳐 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현실적 두려움, 그리고 자신이 대신해야 할 죽은 여자 '미정'에 대한 기묘한 경외심.

    배우가 죽은 배우를 연기하는 배우를 연기한다는 이중 구조 속에서, 박서윤은 몸짓을 최소화함으로써 오히려 존재감을 극대화합니다. 마이크 앞에서 입술을 열기 직전의 미세한 떨림, 숨을 참고 듣는 자세, 그 찰나의 정지가 관객에게 "미정이 지금 저 몸을 빌려 돌아온 것 아닌가"라는 착각을 심어 줍니다.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2019년 중국 MRO 사업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쿠팡 배달을 시작했을 때입니다. 공장 수백 명을 관리하던 사람이 배달통을 메고 골목을 누비고 있었습니다. 처음 두 달은 몸보다 자아가 더 힘들었습니다. '이 사람이 나인가'라는 질문이 배달 건수가 쌓일수록 반복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배달하는 나도 나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민영이 미정의 대사를 읽다가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듯, 저도 그렇게 됐습니다. 그 장면이 오래 마음에 걸렸던 이유가 거기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빈자리를 채운다는 것이 결국 자기 자신을 새로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

    김철윤의 성현은 반대 방향으로 존재합니다. 녹음 엔지니어란 직업 자체가 타인의 목소리를 담는 사람이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성현이 민영을 바라볼 때, 그는 미정을 향한 감정을 직접 쏟아낼 수 없어서 조작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으로, 헤드폰을 고쳐 쓰는 무의식적 제스처로 대신 표현합니다. 손이 말을 하는 배우. 그것이 성현이라는 인물을 완성하는 방식입니다. 당신이라면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다시 만들어 내는 일을 선택하겠습니까?

    사라지는 것들에 바치는 이승재의 헌사

    이승재 감독이 2001년생이라는 사실이 저는 놀랍습니다. 제 큰아들보다도 젊습니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공간은 젊음과 정반대의 장소입니다. 재개발 직전의 낡은 녹음실, 후미진 언덕길, 허름한 방음 부스. 이 공간 선택 자체가 이미 연출 의도의 전부를 담고 있습니다. '곧 사라질 것들'에 대한 헌사.

    카메라는 방음 유리를 자주 활용했을 것입니다. 방음 유리는 완벽한 영화적 장치입니다. 소리는 차단되지만 시선은 통합니다. 성현이 유리 밖에서 민영을 바라보는 구도는 산 자가 죽은 자를 바라보는 구도와 정확히 겹칩니다. 조명은 아마도 낮임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누런 텅스텐 계열로 처리됐을 것입니다. 그 빛 아래서는 모든 것이 오래된 것처럼 보이고, 오래된 것은 모두 사라질 것처럼 보입니다.

    허밍 소리의 이동도 인상적입니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들려오는 허밍은 미정의 것이었다가 민영의 것이 되고, 이윽고 성현의 것이 됩니다. 목소리가 몸을 바꿔가며 살아남는다는 것, 그게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떠난 뒤에도 우리의 목소리가 어딘가에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위안.

    2019년 웨이하이 공항에서 비행기 창밖으로 불빛이 사라지던 그 순간이 생각납니다. 15년을 살던 땅을 떠나오는 날, 저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무슨 노래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소리가 나왔습니다. 아마 그게 제 감정을 흘려보내는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독립영화협회가 발표한 2026년 상반기 주목 독립영화 목록에 《허밍》이 포함됐습니다.(출처: 한국독립영화협회, 링크) 저예산 독립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입소문을 타는 이유는 장면 하나하나가 그냥 흘러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흥얼거렸던 것은 언제입니까? 그 소리가 무엇을 담고 있었는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허밍》은 모든 관객에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지 않고, 설명 없이 공백을 남겨 두는 방식이라 답답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뚜렷한 사건 해결이나 극적인 반전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상실을 겪어본 사람, 사라진 것을 오래 붙잡으려 했던 사람에게 이 영화는 다르게 다가옵니다. 허밍이라는 제목처럼, 이 영화는 크게 울리지 않습니다. 다만 조용히 가슴 안에서 계속 맴돌게 됩니다. 25살 감독이 첫 장편으로 이 주제를 선택했다는 것 자체가, 앞으로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는 충분한 이유가 됩니다.

    아쉬운 점을 굳이 꼽자면, 감독이 부재하는 상황에 대한 이유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뤄졌다면 서사의 밀도가 더 높아졌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5/5) — 단, 여운을 즐길 줄 아는 관객에게.

    ❓ 자주 묻는 질문

    Q. 《허밍》은 어떤 내용의 영화인가요?
    A. 재개발로 곧 철거될 낡은 녹음실을 지키는 엔지니어 '성현'이, 1년 전 함께 작업했던 영화의 후시녹음을 진행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주연 배우 '미정'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무명 배우 '민영'이 그 빈자리를 채우러 왔는데 감독마저 나타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좁은 녹음실 안에서 죽은 여자의 마지막 목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중심 줄거리입니다.

    Q. 《허밍》 결말은 어떻게 됩니까?
    A. 영화는 열린 결말 방식을 취합니다. 민영이 미정의 대사를 완성하는 과정에서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경계가 흐려지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성현도 허밍을 흥얼거리며 영화가 끝납니다. 명확한 해답보다는 "사라진 것도 어딘가에 계속 남는다"는 감각적 여운을 남기는 방식으로 마무리됩니다.

    Q. 이승재 감독은 어떤 감독인가요?
    A. 2001년생으로 중앙대학교 영화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영화제작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젊은 감독입니다. 단편 〈동화〉(2020), 〈화장터〉(2023) 등 다수의 단편을 연출한 뒤 《허밍》으로 첫 장편 데뷔를 했습니다. 사라지는 공간과 기억에 대한 감각적인 연출이 특징이며, 차기작에 대한 기대가 큰 신인 감독입니다.

    Q. 《허밍》 러닝타임과 관람 등급은 어떻게 됩니까?
    A. 러닝타임은 102분이며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습니다. 폭력성이나 자극적 장면은 거의 없고, 심리적 긴장감과 정서적 무게감이 주된 요소이기 때문에 성인 관객에게 더 깊이 와닿는 영화입니다.

    🎬 함께 보면 좋은 영화

    • 곡성 —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공간을 배경으로 현실과 초월의 경계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허밍》과 주제적으로 공명합니다. 설명 없이 공백을 남겨 두는 연출 방식도 닮아 있어, 두 영화를 연이어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이 남기는 흔적"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 파수꾼 (2011) — 억압적 관계 속에서 서서히 무너지는 인물들을 절제된 시선으로 담아낸 한국 독립 드라마로, 똥파리와 마찬가지로 폭력이 어떻게 한 사람을 형성하는지를 정면으로 파고듭니다. 두 편 모두 "왜 저렇게 됐을까"를 묻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 메서드 (2017) — 배우가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하는 메서드 연기(method acting) 과정을 극화한 작품으로, 양익준처럼 본인이 직접 각본·연출·연기를 겸한 작가주의적 접근에 관심이 생겼다면 비교 감상으로 적합합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