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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재킹..목적지가 다른 사람이 타고 있다

    서울 시내버스를 몰다 보면 매일 아침 이런 감각이 찾아옵니다. 핸들을 잡은 순간, 이 차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무게가 제 두 손으로 흘러들어 오는 느낌. 50명 가까운 승객을 태우고 도심을 가르는 그 감각이 몸에 배어 있어서인지, 저는 조종간 하나에 수십 명의 목숨이 걸린 장면을 보면 남들보다 조금 다른 자리에서 화면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이재킹〉을 보게 된 건 늦은 오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습니다. 배우자가 TV 앞에 앉아 "이거 같이 봐요"라고 했고, 피곤한 몸을 소파에 뉘었는데 첫 장면부터 일어나질 못했습니다. 1971년 겨울, 속초에서 김포로 향하던 작은 여객기 안에서 폭탄이 터지는 그 순간. 2024년 개봉작이지만 저에게는 실화의 무게가 먼저 가슴을 눌렀습니다.

    핸들을 놓지 못하는 손 부기장 태인의 숨으로 하는 연기

    하정우가 연기한 부기장 태인을 보면서 저는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대사가 아니라 숨으로 연기합니다. 조종간을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다가 이내 힘을 주어 쥐는 장면, 납치범의 폭탄 협박 앞에서 눈동자가 한순간 흔들리다가 곧 냉정을 되찾는 그 찰나  그 눈빛 하나에 이 남자의 내면이 전부 담겨 있었습니다.

    공포와 책임감이 동시에 존재하는 표정은 연습으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삶 어딘가에서 그런 감각을 끌어온 사람만이 보여 줄 수 있는 결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누군가의 목숨을 손에 쥔 채 공포를 억눌러야 했던 순간을 경험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저는 있습니다. 몇 해 전 한겨울 새벽, 도심 구간을 달리다가 앞차가 갑자기 급정거했습니다. 노면은 살짝 얼어 있었고, 버스 안엔 출근길 승객들이 절반쯤 타고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브레이크를 나눠 밟으면서 핸들을 미세하게 조정했습니다. 버스는 아슬아슬하게 멈췄고, 뒷자리에서 "기사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들려왔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공포를 억누르고 손은 일을 하게 하는 것, 몸이 두려움을 느끼는 동안 기술이 살아남는 것. 태인이 느꼈을 감각이 정확히 그런 게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성동일이 연기한 기장 규식도 가슴에 깊이 남았습니다. 폭발로 한쪽 시력을 잃은 뒤 그가 보여 주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체념과 신뢰의 조합이었습니다. 조종간을 후배에게 넘기면서 말없이 눈빛만으로 "네가 해야 한다"를 전달하는 그 장면. 베테랑 배우만이 쓸 수 있는 언어였습니다. 저도 1984년 대기업 공채로 입사해 공장 생산관리 일을 할 때 선배들로부터 그런 눈빛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말로 하지 않아도 책임이 이쪽으로 넘어오는 그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지던 순간들 — 성동일은 그 무게를 정확하게 재현해 냈습니다.

    프로소디(prosody, 억양·리듬·호흡 등 언어 외적 발화 요소)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하정우와 성동일은 이 영화에서 대사의 내용보다 프로소디로 더 많은 것을 말합니다. 숨을 참는 길이, 말끝을 흐리는 방식, 침묵의 무게가 대사 한 줄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전달합니다.

    납치범 용대의 서러움이 단순한 악의를 넘어선 이유

    여진구의 납치범 용대는 이 영화에서 가장 복잡한 존재입니다. 악당인데 불쌍하고, 위협적인데 서럽습니다. 한국전쟁 때 형이 월북했다는 이유 하나로 평생 핍박받아 온 사람. 가족을 찾아 북으로 가겠다는 그의 눈빛은 단순한 악인의 눈이 아니었습니다. 억울함과 외로움과 그리움이 한꺼번에 녹아 있는 얼굴이었습니다.

    여진구는 지금껏 선한 인물들을 주로 연기해 온 배우인데, 그 선한 인상을 완전히 지우지 않은 채 악역을 연기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서웠습니다. 분노가 담긴 눈에서도 어린아이 같은 그리움이 비쳤고, 폭탄을 들고 협박하는 손에서도 떨림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잘못된 방식을 택한 사람의 고통에 공감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 얼굴에서 저는 엉뚱하게도 중국에서 보낸 15년을 떠올렸습니다. 2004년, 회사 발령으로 가족을 데리고 산동성 청도로 갔습니다. 처음 1~2년은 정말 외로웠습니다. 말이 서툴고, 문화가 달랐고, 아이들은 로컬학교에서 중국 아이들 사이에 던져졌습니다. 큰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아빠, 애들이 내 말을 못 알아들어"라고 했을 때, 저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어른인 저도 매일 그 외로움을 삭이며 살고 있었으니까요.

    낯선 땅에서 가족을 찾아가려 했던 용대의 절박함이, 가족을 낯선 땅으로 끌고 간 제 죄책감과 이상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그때 저는 '내가 왜 이 사람을 악당이라고만 봤을까' 하고 잠시 멈춰 생각했습니다. 예전엔 납치범이라는 사실만으로 단번에 선악을 구분했겠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의 맥락이 얼마나 긴지를, 나이가 들수록 더 실감하게 됩니다.

    채수빈의 승무원 이옥순 역도 조용하지만 강했습니다. 공포 속에서도 승객들을 살피는 그 태도 하나가, 그 시절 여성들이 묵묵히 감당해 온 무게를 담아냈습니다. 실제 이옥순의 모델이 된 분이 53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아 이 영화를 관람했다는 사실은, 영화가 끝난 뒤에야 찾아봤는데 그 대목에서 다시 한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좁은 조종실에서 김성한 감독이 선택한 절제의 연출

    김성한 감독은 이 영화를 스펙터클로 만들지 않겠다는 선택을 분명히 한 것 같습니다. 〈아수라〉와 〈1987〉의 조감독 출신으로 이번이 첫 상업 장편입니다. 제약이 많은 출발점이었는데, 그 제약을 감독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연출은 카메라가 좁은 조종실 안에서 인물들의 얼굴을 클로즈업(close-up, 피사체를 화면 가득 담는 촬영 기법)으로 잡는 방식이었습니다. 넓은 공간을 보여 주지 않고 좁히면 좁힐수록 긴장감이 오히려 커집니다. 이는 컨파인드 스페이스 드라마(confined space drama, 극도로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심리극)의 고전적 원칙인데, 김 감독은 그것을 1971년 시대 고증과 결합해 설득력을 높였습니다.

    비행기가 한 바퀴 회전하는 장면은 CG가 아니라 실제로 세트장을 회전시켜 촬영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은 거의 모든 것을 디지털로 처리하는데, 굳이 물리적 세트를 돌린 선택 — 저는 그게 배우들에게 실제 몸의 감각을 주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배우의 몸이 진짜 기울면, 그 공포는 연기가 아닌 반응이 됩니다. 그 반응이 화면을 통해 관객의 몸으로 전달됩니다.

    미장센(mise-en-scène, 화면 안의 모든 시각적 요소를 배치·구성하는 연출 개념)의 측면에서도 이 영화는 흥미롭습니다. 기내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인물들의 위치가 끊임없이 권력관계를 표현합니다. 납치범이 조종실 문 앞에 서 있을 때와 부기장 옆자리에 앉았을 때의 화면 구도가 전혀 다른 심리적 압박을 만들어 냅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하이재킹〉은 2024년 개봉 후 누적 관객 수 약 170만 명을 기록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대형 블록버스터에 비하면 작은 숫자지만, 실화 기반의 밀실 스릴러로서는 결코 작지 않은 성과입니다. 〈1987〉 각본가 김경찬 작가가 함께한 만큼, 이 영화가 단순한 납치 액션이 아니라 시대의 비극을 담은 서사로 읽히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 연구자들도 1971년 대한항공 납북 미수 사건을 냉전 시기 분단 트라우마(trauma, 심리적 상흔)의 상징적 사례로 다루고 있습니다.(출처: 국사편찬위원회)

    결론적으로 〈하이재킹〉은 액션 영화처럼 포장돼 있지만 본질은 사람 영화입니다. 두려움 앞에서 손을 놓지 않는 사람, 가족을 찾아 잘못된 방향으로 달린 사람, 공포 속에서도 옆 사람을 살피는 사람. 세 가지 인간의 모습이 좁은 기내 안에서 충돌하고 교차합니다.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은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 책임의 무게를 매일 몸으로 감당하는 직업을 가진 분
    • 가족을 위해 낯선 환경에 뛰어든 경험이 있는 분
    • 악인의 서러움에서도 인간을 보려는 분
    • 화려한 CG보다 배우의 눈빛에서 감동받는 분

    피곤한 날, 소파에 앉아 조용히 보기에 딱 알맞은 영화입니다. 다만 마음이 좀 무거워질 각오는 하셔야 합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