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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운행을 마치고 귀가하니 밤 열 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배우자는 간호조무사 공부 교재를 펼쳐 놓은 채 소파에서 잠들어 있었고, 저는 조용히 넷플릭스를 열었습니다. 상영 시간 3시간 26분. 재생 버튼을 누르기가 망설여졌지만, 이상하게도 손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선택이 오래 남는 영화를 만나게 해 줄 줄은 그때 몰랐습니다. 3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이 부담스러웠지만, 영화가 끝난 뒤에는 오히려 더 긴 침묵이 남았습니다.
회피가 만든 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한 어니스트 버크하트는 이 영화에서 가장 불편한 인물입니다. 악당이라면 차라리 편했을 것입니다. 그는 명백히 선하지도, 명백히 악하지도 않은 인간 그 회색 지대의 가장 깊은 곳에 사는 사람입니다.
디카프리오의 연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눈빛의 공허함입니다. 아내 몰리(릴리 글래드스턴)를 바라볼 때 그의 눈에는 분명히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나 삼촌 헤일의 지시를 따를 때 그 눈은 조금씩 꺼집니다. 선택의 순간마다 그는 도덕적 갈등을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 슬쩍 옆으로 비켜섭니다. 고개를 약간 숙이고, 입술을 잠깐 깨물고, 눈을 한 번 내리깔고 그리고는 지시를 따릅니다. 거대한 악은 이렇게 사소한 회피의 반복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디카프리오는 몸으로 보여줍니다.
당신은 어떠십니까? 살면서 한 번도 편한 쪽으로 눈을 감아 본 적이 없으십니까?
저는 솔직히 말하기 어렵습니다. 2004년 중국 산동성 웨이하이에 처음 부임했을 때, 저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관리자가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현지 협력업체와의 관계가 쌓이면서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묵인해야 하는 것들이 생겨났습니다. 납품 단가를 맞추기 위해 품질 기준을 살짝 눈감아 주는 일, 노무 문제에서 현지 중간 관리자가 하는 일을 못 본 척하는 일들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시스템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정도는 다들 하는 일이다.' 영화 속 어니스트가 "나는 몰리를 사랑한다"라고 되뇌던 것처럼, 저도 제 나름의 면죄부를 늘 손에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전엔 어니스트를 그냥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달리 봅니다. 그는 어리석은 게 아니라 너무나 평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평범함이 더 무섭습니다.
로버트 드 니로의 헤일은 더욱 섬뜩합니다. 그는 항상 웃고, 항상 친절하고, 항상 오세이 지를 위하는 척합니다. 드 니로는 그 미소를 절대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눈은 웃지 않으면서 입만 웃는 그 표정 1984년 대기업 공장에서, 그리고 중국 현지 업체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제가 마주쳤던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선의를 가장한 지배(paternalism·온정적 지배주의), 그것이 헤일이고 드 니로는 그것을 완벽하게 체현합니다.
몰리의 굳어가는 눈동자에 오 세이지 부족의 배신이 압축되어 있다
릴리 글래드스턴의 몰리는 이 영화의 진짜 중심축입니다. 절제된 표정 하나만으로도 슬픔과 분노를 동시에 전달하는 연기는 영화의 무게를 단단하게 받쳐 줍니다. 오 세이지 원주민 출신 배우를 기용하겠다는 스코세이지의 결정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였습니다. 실제로 글래드스턴은 블랙피트 족과 헤이수크 족의 혼혈 배우로, 오 세이지 여성 몰리를 단순한 피해자로 소비하지 않고 존엄을 가진 인물로 만들어 냈습니다. 이 연기로 그녀는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출처: 골든글로브 공식 사이트, 링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대사보다 침묵으로 더 많은 것을 말합니다. 남편의 거짓을 어느 순간 감지했을 때, 그녀는 폭발하거나 울부짖지 않습니다. 대신 눈동자가 아주 천천히 굳어집니다. 그 표정 하나에 오 세이지 부족이 수십 년간 당해 온 배신과 모멸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말이 없어도 스크린이 무겁게 내려앉는 연기 저는 그 장면에서 숨을 참게 되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긴 여운을 남긴 것은 오 세이지 여성들이 독살되어 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총이나 칼이 아니라 음식과 약 속에 스며드는 독. 사랑하는 사람의 손에서 건네받는 독. 그 공포는 소리치며 달아날 수도 없는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10년 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를 아끼는 척했던 그 사람이 건네는 투자 이야기가 달콤했습니다. 주식 리딩방에서 '형님, 이번엔 진짜입니다'라고 했던 목소리가 진심처럼 들렸습니다. 오 세이지 부족 사람들이 후견인(guardian·법적 재산관리인)을 신뢰했듯, 저도 신뢰하는 사람이 내미는 손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당하고 난 뒤에야 독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그 빚을 갚기 위해 쿠팡 배달을 했고, 배민 오토바이를 몰았고, 지금은 버스 핸들을 잡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회사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달리며 생각합니다. 신뢰와 배신의 차이는 결국 상대가 나를 수단으로 보느냐, 사람으로 보느냐의 차이라는 것을. 몰리가 그 차이를 마지막 순간까지 눈으로 확인하려 했듯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에서 1920년대 오클라호마 오 세이지 카운티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은 최소 60여 명의 오 세이지 부족민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며, 일부 연구에서는 수백 명에 이를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출처: 스미소니언 매거진, 링크)
스코세이지는 진흙 속을 걷는 속도로 역사의 공모를 들여다보게 만든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이 영화를 서부 활극(Western genre·총과 영웅이 등장하는 장르)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총격전도 없고, 영웅도 없고, 통쾌한 응징도 없습니다. 대신 그는 아리 애스터의 《미드소마》와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직접 밝혔듯, 의도적으로 느리고 무겁게 진흙 속을 걷는 것처럼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스코세이지는 선과 악의 대결보다,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악에 동조하는지를 끝까지 응시합니다.
이 선택이 바로 연출(mise-en-scène·화면 전체의 시각 구성)의 핵심입니다. 빠른 편집과 박진감 넘치는 장면으로 채웠다면 관객은 스릴을 즐기고 나올 것입니다. 스코세이지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관객이 불편한 채로 3시간 반을 앉아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야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카메라는 롱샷(long shot·피사체를 멀리서 전체적으로 담는 기법)으로 광활한 오클라호마 초원을 보여 주다가, 갑자기 클로즈업(close-up·인물의 표정을 극단적으로 확대하는 기법)으로 인물의 눈 안으로 파고듭니다. 이 반복이 만들어 내는 것은 거대한 역사와 한 개인의 선택이 실은 같은 이야기라는 메시지입니다. 역사적 학살(genocide·집단 학살)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 않습니다. 수천 번의 작은 회피가 쌓여서 만들어집니다.
작곡가 로비 로버트슨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났고, 영화는 그에게 헌정되었습니다. 그가 만든 음악은 오 세이지 전통 음악의 요소를 서양 오케스트라와 혼합한 것으로, 그 자체로 이 영화의 주제 두 세계의 충돌과 강요된 동화(assimilation·문화적 흡수 과정)를 소리로 구현합니다. 음악이 흐를 때마다 무언가가 서서히 죽어 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코세이지와 디카프리오의 여섯 번째 협업작이자 스코세이지와 드 니로의 열 번째 협업작인 이 영화는 제작비 약 2억 달러가 투입된 대작으로,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서 1억 5천만 달러 이상을 기록했습니다.(출처: Box Office Mojo, 링크) 상업적 성과보다 역사적 기록으로서의 무게가 훨씬 크게 남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저는 한 가지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독을 받아 마시고 있지는 않은가. 혹은 내가 누군가에게 독을 건네고 있지는 않은가.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영화는 즐거운 영화가 아닙니다. 3시간 26분이 결코 짧지 않고, 중반 이후 극적 긴장이 느슨해지는 구간이 분명히 있습니다. 오 세이지 부족의 시점을 더 깊이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몰리의 내면을 따라가는 시간이 좀 더 많았다면 이 영화는 걸작에서 불멸의 작품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남긴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것이 스코세이지가 목표한 것이었고, 그는 그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추천 대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역사 실화를 좋아하는 분
-인간 심리를 깊이 다룬 영화를 좋아하는 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릴리 글래드스턴의 연기를 감상하고 싶은 분
-천천히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영화를 선호하는 분
반면 빠른 전개와 통쾌한 결말을 원하신다면, 이 영화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솔직함도 함께 드립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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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진흥위원회(KOFIC)
- IMDb, Killers of the Flower Moon (2023)
- Box Office Mojo
- Smithsonian Magazine
- Golden Globe Awards
- 다음 영화
-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