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 핸들을 잡으면서 영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정확히는 영화가 아니라, 오늘 버스에 탔다 내린 사람들 생각이다. 젊은 여자가 이어폰을 꽂고 창밖을 보는 표정, 점심시간도 아닌데 혼자 도시락 봉투를 들고 탄 30대 남자, 누군가에게 카카오톡을 보내다가 잠깐 멈추는 얼굴. 나는 그 얼굴들을 뒤통수로 느끼면서 운전한다. 손수현 감독의 독립영화 「프리랜서」(2024)를 처음 접하게 된 건, 그런 얼굴들을 오래 보아 온 내가 이 영화의 제목에서 뭔가를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자유롭다는 말 뒤에 숨겨진 삶의 무게
이 영화는 단편이다. 러닝타임(상영 시간)이 짧다. 그런데 짧다는 게 얕다는 뜻은 아니다. 연수와 현지, 두 여자가 술집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연수는 현지의 대범한 삶이 걱정되고, 현지는 연수의 경제 사정이 걱정된다. 그리고 연수는 현지에게 어려운 부탁을 꺼낸다. 줄거리만 보면 아주 단순하다.
그런데 손수현 감독이 정말 말하고 싶었던 건 따로 있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감독은 '프리랜서'라는 단어 자체를 해체하려 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프리랜서란 원래 중세 유럽의 용병(傭兵)에서 나온 말입니다. 어느 주군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의 창(lance)을 자유롭게(free) 파는 사람. 낭만적으로 들리지요. 그런데 실상은 어떻습니까? 다음 일감이 언제 올지 모르고, 아파도 쉬면 수입이 끊기고, '잘 지내?'라는 말에 '잘 지내'라고 대답하는 게 습관이 된 삶. 감독은 그 현실을 두 여자의 짧은 대화 안에 압축해 넣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2019년 이후의 제 얼굴을 봤습니다. 중국 주재원(현지 파견 근무자) 8년, MRO 사업(산업 시설 유지·보수·운영 물자 거래) 6년을 마치고 사기를 당한 뒤, 쿠팡 새벽 배송, 배달의민족 라이더, 그리고 지금의 버스 운전까지. 저도 한동안 프리랜서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내일이 불확실하고, 그러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나는 괜찮다"는 얼굴을 유지해야 했던 그 시절.
독자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자유롭다'는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는 편입니까, 아니면 어딘가 서늘해지는 편입니까?
불안을 들키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조용한 싸움
이 영화에서 가장 예리한 지점은 두 사람의 걱정 방식입니다. 연수는 현지를 걱정합니다. 그런데 그 걱정을 들여다보면, 사실은 '나는 왜 이렇게 조심스럽게만 사는가'라는 자기 의심이 그 안에 들어 있습니다. 현지는 연수를 걱정합니다. 그런데 그 걱정 속에는 '나는 겉으로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속은 정말 괜찮은가'라는 불안이 자리합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걱정하는 척, 실은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심리학 용어로는 투사(projection, 자신의 감정을 타인에게서 보는 심리 기제)라고 부릅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진짜로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사기를 당하고 한동안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배우자에게도, 아들들에게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습니다. 그게 자존심인지 두려움인지 그때는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두 가지가 뒤엉킨 것이었습니다. 불안을 들키는 순간 무너질 것 같은 느낌, 그게 프리랜서 연수와 현지가 술집에서 서로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꺼내지 못하는 이유와 같지 않았을까요?
감독이 직접 출연을 겸한 것도 이 지점과 연결된다고 저는 봅니다. 오토에스노그라피(auto-ethnography, 자기 경험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서술 방식)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찰자가 아닌 당사자로서 이 이야기를 해야 했던 것이겠지요. 그 선택 자체가 이 영화의 진정성(眞正性)을 높입니다.
버스를 운전하다 보면 혼자 탄 사람의 표정에서 비슷한 것을 읽을 때가 있습니다. 잘 지내는 척하는 얼굴. 저도 한때 그 얼굴이었습니다. 혹시 지금 그 얼굴로 하루를 보내고 계신 분이 있습니까?
서로를 걱정하는 것이 곧 연대가 되는 순간
그럼에도 이 영화가 어둡기만 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다. 현지는 연수의 부탁을 들었습니다. 영화는 그 부탁의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단편 특유의 여백(餘白) 화법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부탁을 꺼냈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불안을 숨기던 사람이 드디어 한 마디를 꺼낸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연대(連帶, solidarity)의 시작점입니다.
저에게 그 순간은 2025년 12월 21일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금연을 결심한 날. 대단한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솔직해지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혼자 다 할 수 있다'는 허울을 내려놓고, 무언가에 기대기로 한 것. 프리랜서 삶이 무너질 때 진짜 연대가 시작된다는 것을 저는 그때 다시 배웠습니다.
이 영화는 부천 판타스틱 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받은 작품입니다. 독립영화에 관심 있는 분들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상영 정보를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또한 한국 독립영화 전반에 대한 소개는 한국독립영화협회 사이트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당신 곁에 지금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말을 그냥 넘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이 영화는 이런 분께 권합니다.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거나, 조직 밖에서 혼자 버텨온 경험이 있는 분. 누군가에게 부탁 한 마디 꺼내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지 아는 분. 짧지만 오래 남는 이야기를 원하는 분.
줄거리보다 여백이 많은 영화입니다. 그 여백을 채우는 건 결국 관객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제 이야기로 이 영화를 꽉 채울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