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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길에 동료 기사가 "요즘 볼 만한 영화 있어요?" 하고 물었을 때, 저는 며칠 전 혼자 조용히 다녀온 극장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93분짜리 액션 영화라니, 처음엔 지친 몸을 좌석에 기대고 눈이나 즐겁게 해 주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좌석에서 몸을 곧추세우고 있었습니다. 스크린 속 니키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떨리는 손이 멈추지 않는 이유 - 밀라 요보비치의 두 얼굴

    밀라 요보비치는 이 영화에서 두 개의 얼굴을 동시에 살아냅니다. 전직 특수부대원이라는 강인한 껍데기 안에, 딸의 어린 시절을 통째로 놓쳐버린 어머니의 죄책감이 켜켜이 쌓여 있는 얼굴입니다.

    클로이 납치 소식을 접한 직후의 장면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분노와 공황이 0.5초 간격으로 교차하는 눈빛에서, 훈련된 군인의 반응인지 무너지는 엄마의 반응인지 경계가 흐릿합니다. 바로 그 흐릿함이 이 연기의 핵심입니다. 턱 근육이 미세하게 떨리고 입술은 꽉 다물어지는 그 순간, "울면 안 된다, 움직여야 한다"는 내면의 명령을 몸이 먼저 실행합니다. 관객은 대사 한 마디 없이 그 싸움을 그대로 목격하게 됩니다.

    액션 장면에서의 몸짓도 주목할 만합니다. 87 노스 프로덕션(존 윅 시리즈의 무술 설계팀)이 짜 넣은 근접 전투 동작들은 칼리 무술(필리핀 전통 격투기로 빠른 타격과 무기 활용이 특징) 기반이지만, 밀라는 거기에 절박함이라는 감정 레이어(감정의 겹)를 덧씌웁니다. 존 윅이 기계처럼 완벽한 전사라면, 니키는 손이 떨리면서도 멈추지 않는 전사입니다. 적을 제압한 뒤 잠깐 어깨가 처지는 그 찰나, 관객은 그녀가 강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딸 때문에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헬스장이 떠올랐습니다. 2024년 10월부터 회사 헬스장에서 매일 한 시간 이상 러닝을 하고 턱걸이를 해왔습니다. 첫 한 달은 러닝머신 위에서 10분도 버티기 어려웠고, 허리디스크 때문에 발바닥이 저려 내딛는 발걸음마다 이를 악물어야 했습니다. 포기하지 않았던 건 강해서가 아닙니다. 허리 하나 못 잡으면 운전대도 못 잡는다는 두려움이 저를 매일 아침 거기 세워놓은 겁니다. 니키의 흔들리는 어깨가 그 기억을 건드렸습니다.

    딸 클로이 역의 이사벨 마이어스도 단순한 구출 대상에 머물지 않습니다.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동시에 품은 16세 소녀의 혼란을 절제된 표정으로 담아냈고, 두 사람의 관계 회복 서사가 단순한 액션의 배경이 아니라 이 영화의 진짜 심장임을 관객에게 조용히 알려줍니다. 독자 여러분은 영화를 볼 때 주인공의 눈빛에 얼마나 오래 머무르시나요?

    시계는 왜 계속 화면에 등장하는가 - 16년이 압축된 72시간

    아드리안 그 룬베르그 감독은 람보: 라스트 워에서도 보여줬듯, 시간의 압박을 영화의 심장으로 쓰는 연출가입니다. 《프로텍터》에서 72시간이라는 카운트다운은 단순한 스릴 장치가 아닙니다. 니키가 딸에게 갚아야 할 16년이라는 빚을 극단적으로 압축한 상징입니다.

    카메라 운용을 보면 이 의도가 더 선명해집니다. 니키가 혼자 움직일 때의 카메라는 핸드헬드(촬영자가 직접 들고 촬영하는 방식으로 흔들림이 생생한 현장감을 만든다)로 불안하게 흔들리고, 신디케이트 조직 장면에서는 차갑고 정적인 와이드샷(피사체를 멀리서 넓게 잡는 구도)을 씁니다. 흔들림과 고정의 대비로 개인과 조직의 크기 차이, 즉 절망적인 힘의 불균형을 관객이 몸으로 느끼게 만드는 미장센(화면 구성의 모든 시각적 요소를 배치하는 연출 기법)입니다.

    세트와 소품도 의미 있게 읽힙니다. 클로이의 방은 엄마가 부재했던 시간을 증언하듯 니키의 흔적이 거의 없습니다. 반면 니키가 머무는 공간에는 낡은 딸 사진 한 장이 반드시 등장합니다. 그것은 니키가 떠나 있는 동안에도 딸을 잊지 않았다는 자기 위안이었겠지만, 사진과 실물 사이의 시간차가 바로 이 영화의 갈등 구조 전체를 요약합니다.

    예전에 저는 이런 영화를 볼 때 연출을 거의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주인공이 강하면 되고, 액션이 시원하면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카메라가 어디를 향하는지, 소품이 어떻게 놓여 있는지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이백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글을 쓰기 위해 영화를 다시 보는 훈련을 한 덕분인지, 60이 넘어서야 영화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영화에서 소품 하나에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걸 느껴보신 적 있으신가요?

    공장 안에 있던 아버지가 스크린에서 받은 질문

    2004년 봄, 중국 산동성 웨이하이로 첫 발령을 받던 날, 큰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작은아들은 막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가족을 데려간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지만, 중국 로컬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험한 결정이었습니다. 한국말도 채 완성되지 않은 아이들이 중국어로 수업을 들어야 했고,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 구석에 혼자 서 있었다는 이야기를 훨씬 나중에야 큰아들에게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공장 안에 있었습니다. 불량률을 낮추는 회의를 하고, 현지 직원들과 씨름하면서, 아이가 낯선 교실에서 눈물을 삼키고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니키가 딸에게 "미안하다"는 말조차 전하지 못한 채 72시간의 추격전을 시작할 때, 저는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아주 잘 알 것 같았습니다. 사과는 나중에 하겠다는 생각, 지금은 일단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 그 절박함이 화면 밖으로 넘어와 제 가슴에 부딪혔습니다.

    중국 15년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뒤, 저는 사기 피해와 주식 리딩 피해를 연달아 겪었습니다. 쿠팡·배민 배달을 뛰면서 버스 핸들을 잡고 다시 일어서던 그 시간들, 그리고 지금 N잡을 시작하며 60대에 블로그를 처음 써보는 이 시간들 모두가 어떻게 보면 니키의 72시간과 닮아 있습니다. 타임리밋(시간제한 구조)이 다를 뿐,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라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한 가지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영화가 완벽하진 않습니다. 신디케이트 조직의 내부 묘사가 다소 단순하고, 경찰과 군대가 니키를 표적으로 삼는 설정이 충분히 설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밀라 요보비치의 몸 연기와 그 룬베르그의 공간 연출이 이야기의 허점을 상당 부분 메워줍니다. 여러분이 만약 누군가에게 빚진 시간이 있다면, 이 영화가 꽤 깊은 곳을 건드릴 겁니다.

    《프로텍터》는 특수부대 출신 어머니의 액션 영화라는 포장 안에, 부재했던 시간을 몸으로 갚으려는 부모 이야기를 담아놓은 작품입니다. 화려한 CGI(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보다 배우의 몸과 눈빛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을 좋아하시는 분, 존 윅 스타일의 실전적 액션을 즐기시는 분, 그리고 일 때문에 가족 곁을 오래 비워본 경험이 있는 분께 특히 추천드립니다. 반대로 서사의 개연성을 꼼꼼히 따지시는 분께는 아쉬움이 남을 수 있습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