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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 라이드] 침묵 속에 담긴 말들을 듣는 법,희생

by 어성초님 2026. 6. 15.

퍼스트라이드

운전대를 잡고 침묵 속을 달리다 보면, 사람들은 묻곤 합니다. "그 시간이 외롭지 않으냐"라고. 저는 늘 잠깐 멈칫합니다. 외로운 게 아니라, 그 침묵이 때로는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언어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새벽 네 시, 서울 시내버스를 몰고 텅 빈 도로를 가로지를 때, 저는 종종 '이 도시에서 나는 얼마나 존재하고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그 생각의 끝에서 이 영화를 만났습니다.

〈퍼스트 라이드(First Ride, 2022)〉는 미국 LA를 배경으로 한 단편 드라마로, 이름도 배경도 거의 주어지지 않는 한 이민자 드라이버가 밤거리를 달리며 예기치 않은 승객 아이렌(Airen)을 만나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내던지는 이야기입니다. 화려한 CG도, 복잡한 플롯도 없습니다. 대신 이 영화는 '존재의 밀도'로 승부합니다. 줄거리보다 감정의 층위가 훨씬 두꺼운 영화, 저는 그런 영화를 오래 기억합니다.

왜 저는 이 영화를 보게 됐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추천 알고리즘이었습니다. 하지만 재생 버튼을 누른 건 포스터의 야경이었습니다. 새벽 도로 위에 홀로 선 차 한 대. 그게 꼭 제 이야기 같아서요.

"침묵" 속에 담긴 말들을 듣는 법

버스를 운전하다 보면 승객들이 제게 말을 거는 경우는 드뭅니다. 대부분은 조용히 앉아 창밖을 보거나 폰을 들여다봅니다. 저 역시 말을 많이 하지 않습니다. 침묵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더 많은 것을 듣습니다. 누군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탑승할 때, 한숨 한 번 내쉬고 창에 이마를 기댈 때, 말 한마디 없이도 그 사람의 하루가 읽힙니다.

〈퍼스트 라이드〉의 드라이버 역시 말이 없습니다. 영화 전체를 통틀어 그가 내뱉는 대사는 열 줄이 채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의 감정은 한 번도 모호하지 않습니다. 영화 용어로 말하자면, 이는 미장센(mise-en-scène), 즉 화면 안의 모든 시각적 요소 조명, 배우의 위치, 소품로 감정을 전달하는 연출 방식 덕분입니다. 감독은 대사 대신 차창에 맺힌 빗방울, 룸미러에 담긴 눈빛, 핸들을 쥔 손의 긴장감으로 그의 내면을 서술합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며 자꾸 제 새벽 운전석을 떠올렸습니다.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인지, 저는 소리보다 시각과 촉각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핸들의 떨림, 노면의 질감, 신호등이 바뀌는 속도. 말이 없는 세계에서도 삶은 충분히 말을 겁니다. 이 영화의 드라이버는 그걸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주인공이 왜 그토록 말을 아꼈을까요. 저는 그게 체념이 아니라 집중이라고 읽었습니다. 세상의 소음을 끄고 눈앞의 사람에게만 귀를 기울이는 방식. 말을 줄이는 것이 때로는 가장 크게 듣는 법이라는 것, 저는 운전석에서 배웠고, 이 영화의 드라이버도 그렇게 살아왔을 것입니다.

"이방인"으로 산 시간이 가르쳐 준 것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저는 중국에서 살았습니다. 처음 몇 년은 정말로 낯설었습니다. 언어도 문화도 표정을 읽는 방식도 달랐습니다. 현지인들 사이에서 저는 늘 조금씩 어긋나 있었습니다. 그 어긋남이 불편하면서도, 이상하게 저를 더 또렷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의식하게 만드는 환경. 이방인의 시선은 때로 가장 날카로운 시선입니다.

〈퍼스트 라이드〉의 드라이버는 LA에 삽니다. 하지만 그 도시가 그를 품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카메라는 늘 그를 도시의 주변부에 놓습니다. 넓은 대로 위에 홀로 선 차, 인파에서 한 발 비켜선 시선, 이름 한 번 제대로 불리지 않는 존재. 이것은 내러티브(narrative), 즉 이야기 구조 안에서 의도된 배치입니다. 감독은 그를 '없는 사람'처럼 그림으로써 오히려 가장 선명하게 보이게 만드는 역설을 씁니다.

이방인으로 산 사람은 압니다. 존재를 증명할 필요 없이 그냥 거기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중국에 있을 때 저는 밥 한 그릇 시키는 것부터 다시 배워야 했습니다. 그 경험이 저를 작게 만든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더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드라이버도 그렇습니다. 도시가 그를 환영하지 않아도, 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낯섦 속에서 타인의 낯섦에 가장 먼저 손을 내밉니다.

나라면 어땠을까요. 이름도 배경도 모르는 승객을 위해 그 밤 모든 것을 걸 수 있었을까요. 저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방인으로 오래 산 사람은, 도움받아야 할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생깁니다. 이 드라이버의 눈이 그랬습니다.

"희생"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2024년 9월 1일, 저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전 해 2023년 9월, 처음으로 성령이 임하시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희생'이라는 단어가 달리 들립니다. 예전에는 희생을 소모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희생을 사랑의 언어 중 가장 완성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주는 것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는 걸, 신앙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영화의 후반부, 드라이버는 아이렌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내던집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영화는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클로즈업(close-up), 즉 피사체를 화면 가득 당겨 찍는 기법으로 그의 얼굴을 담습니다. 두려움이 아닌 결심, 후회가 아닌 평온.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저는 화면이 아니라 어딘가 다른 곳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이렌을 알지 못합니다. 가족도 아니고, 오래된 인연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저는 그게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선택. 계산이 없는 헌신. 사회복지와 심리상담을 공부하면서 저는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지를 배웠습니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예외를 만들어내는지도 배웠습니다. 이 드라이버는 그 예외입니다.

희생은 상대가 고마워할 때 완성되는 게 아닙니다. 드라이버는 아이렌이 자신의 선택을 알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냥 그녀가 괜찮으면 됩니다. 그것이 사랑이 가장 순수해지는 순간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어떤 설명도 없이 보여줍니다.

저는 이 영화를 밤 11시 넘어 허리를 기댄 채로 봤습니다. 다음 날도 새벽 네 시에 일어나야 했고, 잠은 네 시간도 채 안 됐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바로 눕지 못했습니다. 창밖 서울의 야경을 한참 봤습니다. 저 도로 어딘가를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가 달리고 있겠구나, 그중에 이 드라이버 같은 사람이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퍼스트 라이드〉는 다음 분들께 특히 권해 드립니다.

-낯선 도시에서 혼자 버텨본 경험이 있는 분
-말이 없어도 통하는 관계가 있다고 믿는 분
-희생이란 단어 앞에서 한 번이라도 멈춰본 분
-조용한 밤에 조용한 영화가 필요한 분

쉬운 위로를 기대한다면 이 영화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단한 하루 끝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분이라면, 이 드라이버의 침묵이 가장 따뜻한 말로 들릴 것입니다.

참고:
IMDB - First Ride (2022)
한국영상자료원 - 외국영화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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