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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는 거의 보지 않는 편입니다. 특히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뒤에는 귀신이 등장하는 작품을 더 멀리했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이 "아버지, 이건 공포 영화가 아니에요."라며 권한 영화가 바로 《파묘》였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저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 작품은 귀신보다 역사가 더 무서운 영화였습니다.
오컬트라는 포장지 안에 든 것
극장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미국 LA에서 활동하는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이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의뢰를 받아 움직이는 장면부터, 이건 단순한 귀신 이야기가 아니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풍수지리(風水地理, 땅의 기운이 인간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동양 사상)를 근거로 묫자리가 화근임을 짚어내고, 풍수사(風水師, 땅의 기운을 읽어 묏자리나 집터를 잡는 전문가)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합류해 파묘(破墓, 묻혀 있는 무덤을 파내는 행위)를 진행하는 것이 줄거리의 전부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묘를 파헤치는 순간, 영화는 장르를 바꿉니다 친일파의 묘 안에서 수직으로 세워진 일본 무사의 관이 드러나는 그 장면에서 저는 등줄기가 서늘해졌습니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1979년, 중학교 역사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하셨던 말씀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입니다.당시 학교에서 '일제가 산맥에 쇠말뚝을 박아 민족의 정기를 끊으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내용을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역사학계에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지만, 어린 시절 제게는 매우 강한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게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마흔 해가 지나도 잊히지 않았던 그 장면이 스크린 위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감독은 왜 하필 오컬트라는 그릇을 선택했을까요? 장재현 감독은 인터뷰에서 "공포보다는 동아시아적인 그로테스크함과 신비로움에 집중했다. 오컬트는 수단이고 본질은 역사다"라고 직접 밝혔습니다. 저는 그 말이 정확히 맞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다큐멘터리나 드라마로 다루면 사람들은 "알고 있는 이야기"로 소비합니다. 하지만 귀신과 묫자리와 파묘라는 무속(巫俗, 무당을 중심으로 한 한국 전통 신앙 체계)의 언어로 포장하면, 관객은 내장으로 느끼게 됩니다. 그게 이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불러들인 진짜 이유라고 저는 봅니다.
중국에서 보았던 것과 스크린에서 본 것
2004년부터 7년간 저는 중국 주재원으로 살았습니다. 처음 몇 달은 업무에 치여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 현지인들이 일본이라는 단어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피부로 느끼게 됐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거래처 미팅에서, 택시 기사와의 짧은 대화에서. 그 감정은 단순한 반일 감정이 아니라 뭔가 더 깊고, 아직 아문 적 없는 상처 같은 것이었습니다.
파묘를 보면서 저는 그 기억들이 자꾸 겹쳤습니다. 역사의 상처란 세대가 바뀌어도 쉽게 희석되지 않는다는 것, 그걸 중국에서 7년 내내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에서 친일파의 묘에 일본 무사의 관이 함께 묻혀 있다는 설정은, 그냥 오컬트적 상상이 아니라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죽어서도 이어진다는 섬뜩한 은유입니다. 나라면 그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만약 역사를 모르는 채로 봤다면 그냥 무서운 장면으로 지나쳤을 것입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따로 짚고 싶습니다. 최민식이 연기한 풍수사 상덕은 말수가 적고 거칠지만, 땅의 기운을 읽는 눈빛 하나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저는 이 캐릭터가 영화 전체의 중심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해진이 연기한 장의사 영근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귀신과 맞서는 순간 성경 구절을 외칩니다. 김고은이 연기한 화림은 무속인을 신비롭게만 그리지 않습니다.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끝까지 의식을 이어가는 인간적인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절제된 목소리와 눈빛만으로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연기는 영화의 현실감을 높였습니다. 지난해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저로서는 그 장면이 묘하게 공감됐습니다. 무속과 기독교라는 전혀 다른 신앙이 같은 적을 향해 힘을 합치는 그 구도가, 사실은 우리 사회가 역사 앞에서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아래는 이 영화가 받은 주요 평가들입니다.
제7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포럼 부문 공식 초청 — 한국 장르 영화의 완성도를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은 사례
제6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감독상(장재현) 수상 — 연출의 탁월함을 국내에서도 공인
누적 관객 수 1,000만 명 돌파 — 단순 흥행을 넘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작품이라는 증거
역사는 기억하지 않으면 돌아온다
영화가 끝나고 아들과 한참을 이야기했습니다. 경찰 공무원으로 일하는 아들은 국가와 사회에 대해 저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 이 영화 결국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냐고 묻는 거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한 마디가 두 시간짜리 영화의 핵심을 꿰뚫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된다는 말은 너무 자주 쓰여서 식상해졌습니다. 파묘는 그 진부한 경고를 식상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귀신이 나오고 굿이 벌어지고 땅을 파헤치는 이 영화에서, 진짜 공포는 귀신이 아닙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들, 제대로 애도되지 못한 것들,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채 땅속에 묻혀 있는 역사의 상처들이 공포의 본체입니다.
감독이 선택한 장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나무에 못 박는 소리를 악기처럼 사용한 음악이었습니다. 그 소리가 단순한 효과음이 아니라 식민지배의 폭력성을 청각으로 번역한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보통 공포 영화에서 음악은 관객을 놀라게 하기 위해 씁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음악은 관객을 슬프게 합니다. 그 차이가 파묘를 단순한 오컬트 영화와 구분 짓는 지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감독은 왜 이 이야기를 지금, 이 방식으로 했을까요? 저는 아마도 지금이 가장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역사를 직접 체험한 세대는 점점 줄어들고, 기억은 희미해지고, 가해의 역사는 가끔 부정되거나 축소됩니다. 그럴 때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기억을 붙들어두는 것입니다. 파묘는 그 역할을 134분 동안 충실히 해냈습니다.
이 영화는 공포를 즐기러 가는 분보다, 《파묘》는 단순히 무서운 영화를 찾는 분에게는 의외의 작품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와 인간의 기억,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긴 여운을 남길 영화입니다. 공포보다 생각할 거리를 오래 남기는 작품이었습니다. 20~30대라면 몰랐던 역사를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저처럼 그 시대를 공부한 세대라면 잊고 있던 것들이 불쑥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큰아들과 함께 보길 잘했습니다. 영화 한 편이 부자(父子) 사이의 역사 대화를 두 시간 넘게 이어지게 했으니까요.
참고: 나무위키 - 파묘(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