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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여름, 비번 날 오후였습니다. 딱히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CGV 앞을 지나다 포스터 하나가 발걸음을 붙들었습니다. 군복 차림의 이제훈이 철책 쪽을 바라보는 그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그냥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94분 내내 손에 힘을 쥐고 앉아 있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후 극장을 나오면서 저는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단순한 탈북 액션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철책을 넘기 위해 달린 이제훈의 눈빛과 몸짓이 말하는 것
이제훈이 연기한 규남은 말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옵니다. 10년이라는 세월을 체제 안에 갇혀 살면서도 단 한 번도 꿈을 버리지 않은 사람의 눈빛, 그것은 체념과 의지가 기묘하게 뒤섞인 빛깔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제훈은 특유의 절제된 연기(미니멀리즘 퍼포먼스, minimalist performance)로 규남의 내면을 바깥으로 쏟아내지 않고 꾹 눌러 담습니다. 표정은 굳어 있지만 눈동자는 항상 어딘가를 향해 있고, 그 시선이 닿는 곳이 바로 철책, 즉 자유입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생존 방식이 된 사람이 마침내 달리기 시작하는 순간, 이제훈의 몸 전체가 달라집니다. 어깨가 열리고 보폭이 넓어지며 숨이 거칠어지는 그 순간, 관객은 비로소 10년 치 억눌린 무게를 온몸으로 느낍니다.
독자 여러분은 살면서 한 번이라도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가 내가 선택한 곳인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중국 웨이하이 공장 관리책임자로 처음 발령받던 2004년,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처음 몇 년은 버텼습니다. 공장 라인을 돌리고, 중국 직원들과 싸우듯 소통하고, 아이들을 로컬 학교에 집어넣으며 "이게 다 경험이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둘째 아들이 중국 로컬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한 마디도 못 알아들으면서 울지도 않고 책상에 앉아 있던 그 작은 등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 아이도 그 나름의 철책 앞에 서 있었던 거겠지요. 그리고 제 아이는 결국 그것을 넘었습니다. 지금은 한국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어 잘 살고 있습니다.
반면 구교환이 연기한 현상은 전혀 다른 결의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그는 체제의 충견처럼 보이지만 어딘가 균열이 가 있는 사람입니다. 구교환은 특유의 날카롭고 불안정한 눈빛으로 그 균열을 표현합니다. 웃고 있는데 차갑고, 배려하는 척하는데 계산적이며, 잡으러 쫓아가는데 막상 방아쇠를 완전히 당기지 못하는 인물. 이 복잡한 캐릭터를 구교환은 과잉 없이 처리합니다. 클라이맥스에서 총을 쏘고도 규남을 살려 보내는 장면, 그 짧은 순간의 눈빛 변화는 어떤 대사보다도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체제에 충성하는 척 살아왔지만 결국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선택을 하는 그 찰나, 구교환의 연기는 말 그대로 침묵으로 웅변합니다.
홍사빈이 연기한 동혁은 아무런 계획도 없이 먼저 철책을 향해 달려가는 젊음의 무모함과 순수함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그 서투름이 오히려 이 영화에서 가장 순수한 자유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이 숨겨놓은 자유의 언어와 연출의 침묵
이종필 감독의 전작들을 떠올리면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2020)의 따뜻한 유머, 「박하경 여행기」(2023)의 서정적 감성과는 결이 다른 액션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들여다보면 이 감독이 일관되게 던져온 질문이 이 영화에도 그대로 흐릅니다. "당신은 지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이 영화가 선택한 사운드 디자인(sound design)은 인상적입니다. 총소리나 폭발음보다 오히려 정적(silence)과 숨소리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규남이 철책을 향해 달릴 때 배경음악은 거의 빠집니다. 대신 흙을 박차는 발소리, 거친 숨소리, 철조망이 긁히는 소리가 귀를 채웁니다. 이 선택은 관객을 스펙터클(spectacle)이 아닌 감각 속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다만 각본상 아쉬움도 있습니다. 현상이라는 캐릭터의 내면 동기, 즉 그가 왜 결국 규남을 놓아주기로 했는지에 대한 개연성이 조금 더 두터웠더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구교환의 연기가 그 빈틈을 상당 부분 메워주긴 하지만, 서사(narrative) 자체에서의 설명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이런 영화를 보면 "저건 북한 이야기야, 나와는 다른 세계"라고 거리를 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게 봅니다. 철책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2019년 겨울, 사기를 당하고, 주식 리딩으로 또 한 번 털리고 나서 저는 스스로가 감옥 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가 가둔 게 아니었습니다. 실패가, 빚이, 자책이 저를 가뒀습니다. 규남이 북한이라는 체제에 갇혔듯, 저는 제 자신이 만든 절망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 통합전산망 기준으로 「탈주」는 2024년 누적 관객 수 2,563,266명을 기록하며 손익분기점(약 200만 명)을 가뿐히 넘겼습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링크) 중간 규모 예산의 한국 액션영화가 이 정도 흥행을 거뒀다는 것은, 이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공명(resonance)을 건드렸는지를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철책 앞에 서 있으십니까? 아니면 이미 넘고 계십니까?
눈감아준 선택 하나가 한 사람의 삶을 바꾸는 순간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오래 남은 장면은 화려한 액션 시퀀스가 아닙니다. 현상이 총을 겨누고도 끝내 방아쇠를 완전히 당기지 않는 그 정지된 순간입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제 버스 동료 한 명이 떠올랐습니다. 제가 가장 힘들던 시절,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옆에 앉아서 캔커피 하나를 내밀던 사람. "어떻게 됐어요?"도, "힘내요"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커피 한 캔. 그게 때로는 말 천 마디보다 큰 힘이 됩니다. 현상이 규남에게 준 것도 거창한 도움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눈을 감아준 것, 총구를 내린 것. 그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저도 제 철책을 넘기 위해 꽤 오래 준비했습니다. 쿠팡 배달을 하고, 배민 오토바이를 몰고, 2019년부터 버스 핸들을 잡았습니다. 그러면서 자격증을 땄습니다. 화물, 택시, 사회복지사, 심리상담사, 병원동행매니저까지. 2024년 10월부터는 회사 헬스장에서 매일 1시간 이상 러닝과 턱걸이를 했습니다. 2023년 9월에는 성령을 받았고, 2024년 9월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2025년 12월 21일, 하나님의 힘을 빌려 금연을 시작했습니다.
돌아보면 누군가 눈감아준 덕도 있었고, 내가 스스로 달린 덕도 있었습니다. 어느 쪽이 더 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건 결국 달렸다는 것이겠지요.
2026년 5월 26일부터 이백 강의를 들으며 블로그를 시작한 것도 저에게는 하나의 탈주입니다. 60대 초반에 디지털이라는 철책 앞에 선 것입니다. 규남처럼 준비는 오래 했습니다. 이제 달리는 중입니다.
한국심리학회(KPA)가 발표한 자기 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자율성(autonomy)·유능감(competence)·관계성(relatedness)이 충족될 때 내적 동기가 강화된다고 합니다. (출처: 한국심리학회, 링크) 규남의 탈주는 그 세 가지 결핍에서 출발한 것이었고, 그렇기에 관객이 그 달음질에 이토록 몰입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총평과 추천
「탈주」는 잘 만든 장르영화입니다. 94분이 짧게 느껴질 만큼 속도감이 있고, 이제훈과 구교환 두 배우의 시너지는 기대 이상입니다. 다만 현상의 내면 동기에 대한 각본상의 설명이 얇다는 점, 그리고 감동의 여운이 스크린을 나서면 다소 빠르게 식는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 추천 대상: 한국 액션영화를 좋아하는 분, "나도 한 번쯤 다 던지고 싶다"라고 생각해 본 분, 이제훈·구교환의 팬
- 비추천 대상: 두꺼운 서사와 감정적 완성도를 원하는 분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