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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킬러스》(2024)는 헤밍웨이 단편 《살인자들》을 모티프로 김종관·노덕·장항준·이명세 네 감독이 각자의 언어로 '킬러'를 해석한 앤솔러지 액션·스릴러 영화다. 심은경·연우진·홍사빈이 출연하며,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다중 감독 구조가 만들어낸 어둠의 질감이 이 작품만의 가장 큰 매력이다. 러닝타임 119분, 청소년관람불가.
버스 운행을 마치고 차고지에 차를 세운 건 밤 11시가 조금 넘어서였습니다. 종점에서 마지막 승객이 내리고, 텅 빈 차 안을 혼자 정리하다 보면 그 고요함이 오히려 묘하게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퇴근 후 편의점에서 커피 한 캔을 뽑아 들고 폰을 열었는데, 유튜브 알고리즘이 《더 킬러스》 예고편을 띄워 놓았습니다.
헤밍웨이 원작, 감독 4인, 앤솔러지. 그 세 단어가 눈에 걸렸습니다. 1984년 대기업 공장에서 야간 업무를 하던 시절, 새벽 두 시에 기숙사 불 끄고 몰래 헤밍웨이 단편집을 읽던 기억이 불쑥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그때 읽었던 《살인자들》은 두 킬러가 식당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묵직한 정적의 이야기였습니다. 40년이 지난 뒤에야 그 이야기가 영화로 펼쳐진다니, 그냥 지나치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둠 속 하청 구조가 드러낸 먹이사슬
영화를 본 건 그다음 주 휴무일이었습니다. 배우자가 요양보호사 공부를 한다며 책상에 앉아 있는 사이, 저 혼자 노트북 앞에 앉았습니다. 네 편의 이야기가 차례로 펼쳐지는데, 두 번째 이야기 노덕 감독의 〈업자들〉에서 손을 멈추게 됐습니다.
청부살인을 하청 주고, 그 하청이 또 하청으로 내려가는 구조. 화면을 보는데 가슴이 이상하게 쿵 내려앉았습니다. 2013년부터 중국 산동성 웨이하이에서 운영하던 MRO 사업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한국 중소기업들이 중국 공장에서 쓸 소모성 자재를 납품하는 일을 했습니다. 주재원 8년 동안 쌓은 인맥도 있고, 중국 거래처와 협상하는 방법도 알았으니 처음에는 잘 됐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한 한국인 사업가가 찾아와 물류 연계 사업을 같이 하자고 했습니다. 계약서를 쓰고 선급금을 넘기고 나서 그가 사라졌습니다. 연락처는 결번이 됐고, 중국 파트너라고 소개받은 사람들도 모두 유령이었습니다.
영화 속 하청 킬러처럼,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먹이사슬의 맨 아래에 있었던 겁니다. 그때 두 아들은 옌타이 한인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아이들 앞에서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녁밥을 같이 먹으면서 웃었고, 주말에는 칭다오 해변에도 갔습니다. 하지만 밤마다 혼자 사무실 불을 끄고 앉아 있으면, 그 어둠이 벽처럼 눌러오는 느낌이었습니다.
당신은 이 장면을 보면서 어떤 구조 속에 자신이 속해 있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나는 킬러인지 하청인지조차 모르고 뛰고 있었던 건 아닌지 영화는 그 질문을 조용히 던집니다.
노덕 감독은 이 파트에서 롱샷(long shot)을 유독 많이 씁니다. 인물들을 멀리서 잡는 그 거리감이, 이미 이 구조 안에서 개인이 얼마나 작은 지를 시각적으로 말해줍니다. 클로즈업(close-up)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얼굴을 가까이 보여주지 않는다는 건, 이 사람들이 인간이 아닌 '기능'으로만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출처: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보시스템, 링크)
기다리는 자가 보여준 절제된 공포
연우진 배우가 연기한 "기다리는 자"는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머릿속에 남는 캐릭터입니다. 기다린다는 행위가 이렇게 공격적일 수 있다는 걸, 저는 그의 몸으로 배웠습니다.
어깨가 약간 앞으로 쏠려 있고,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며, 시선은 문 쪽을 향하면서도 절대 뚫어지게 바라보지 않는, 그 절제된 긴장감. 저는 버스를 운전하면서 백미러로 승객의 눈을 자주 보는 편인데, 사람의 눈은 거짓말을 잘 못합니다. 연우진 배우는 그걸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너무 애쓰지 않는 연기가 오히려 더 무서웠습니다.
심은경 배우가 살인을 의뢰하는 장면에서는 잠시 숨을 멈췄습니다. 목소리는 낮고 평온했지만 눈빛은 달랐습니다. 입은 담담한데 눈은 절규하고 있었습니다. 그 괴리가 오히려 소름이었습니다. 예전이라면 저는 이 장면을 "연기를 잘한다"고만 넘겼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달리 보입니다. 저 절제 뒤에 얼마나 많은 감정을 쌓아두고 버텨왔는지가 보입니다. 중국에서 사업이 무너지던 날 밤, 저 역시 아내 앞에서 울지 못했으니까요.
홍사빈은 등에 칼이 꽂힌 채 눈을 뜨는 첫 장면에서, 공포가 아닌 무감각에 가까운 표정을 보여줍니다. 살면서 너무 많이 아팠던 사람은 아픔 앞에서 울지 않습니다.
독자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 삶에서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소리를 지를 수 있었던 때였습니까, 아니면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던 때였습니까?
장항준 감독의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에서는 "특급 살인마"라는 존재가 끝까지 얼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요소의 총체)으로만 그의 존재감을 쌓아 올리는 방식인데, 이것이 오히려 실제보다 더 강한 공포를 만들어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무섭다는 걸, 이 영화는 연출로 증명합니다.
네 감독의 시선이 완성한 악의 얼굴
네 명의 감독이 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메시지입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킬러'를 해석한다는 건, 세상에 악이 하나의 얼굴만 가진 게 아니라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김종관 감독의 〈변신〉은 흡혈과 각성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쓰면서도, 그 안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존의 공포를 담았습니다. 이명세 감독의 〈무성영화〉는 가장 난해했지만 가장 오래 생각나는 파트였습니다. 조명이 유독 강렬했는데, 인물을 비추는 빛의 각도가 계속 바뀌면서 같은 얼굴이 선인처럼, 악인처럼, 피해자처럼 번갈아 보였습니다. 빛의 방향을 바꾸는 것만으로 사람의 도덕적 위치를 뒤집는 연출 저는 그걸 이명세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저는 이런 앤솔러지 영화를 보면 "통일감이 없다"는 불만을 먼저 느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달리 보입니다. 통일감이 없는 게 아니라, 통일될 수 없는 악의 본질을 네 가지 언어로 번역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9년 한국으로 돌아온 뒤, 주식 리딩 피해까지 겹쳐 통장 잔고가 바닥이었습니다. 쿠팡 배달을 했고, 배민도 했습니다. 그 시절 새벽 네 시에 배달통을 달고 한강 다리를 건너면서 '나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 —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식당 안에 홀로 남겨진 의자 하나 — 을 보면서 그 새벽의 기억이 겹쳐왔습니다.
악은 거창한 모습으로 오지 않습니다. 하청 계약서 한 장으로, 눈빛 한 번으로, 기다림 한 자락으로 옵니다. 이 영화는 그 사실을 네 가지 방식으로 조용히, 그리고 집요하게 말합니다.
한국 앤솔러지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한국영상자료원도 이 영화를 2024년 주목작으로 분류했습니다. (출처: 한국영상자료원, 링크)
결론적으로, 《더 킬러스》는 화려한 액션보다 인간 내면의 어둠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분들에게 적합한 영화입니다. 네 감독의 개성이 충돌하는 만큼 어느 파트는 맞고 어느 파트는 낯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불균형 자체가 이 영화의 솔직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삶도 언제나 균등하지 않으니까요.
- 추천 대상: 한국 영화의 실험적 시도가 궁금한 분, 헤밍웨이 원작에 관심 있는 분, 화려함보다 분위기와 여운을 좋아하는 분
- 비추천 대상: 명확한 기승전결과 단일 플롯을 원하는 분
별점: ★★★☆☆ (3/5) — 네 감독의 개성이 충돌하는 지점이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그 불균형을 즐길 수 있다면 충분히 값진 경험이 됩니다.
❓ 자주 묻는 질문
Q. 더 킬러스 결말은 어떻게 해석하나요?
A. 네 편의 이야기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끝나지만, 공통적으로 '킬러'가 아닌 '기다리는 자'의 관점으로 마무리됩니다. 마지막 〈무성영화〉 파트의 빈 의자 장면은 관객에게 "당신은 이 구조 속에서 어느 자리에 앉아 있는가"를 묻는 열린 결말로 읽힙니다. 감독들이 의도적으로 답을 주지 않은 선택이라고 저는 해석합니다.
Q. 더 킬러스 러닝타임과 관람 등급은 어떻게 되나요?
A. 러닝타임은 119분이며,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입니다. 네 편의 이야기로 나뉘어 있어 체감 러닝타임은 짧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다만 각 파트의 분위기 차이가 크기 때문에, 집중력이 필요한 영화입니다.
Q. 헤밍웨이 원작 《살인자들》을 미리 읽고 봐야 더 재미있나요?
A. 원작을 알고 보면 감독들이 어떤 요소를 어떻게 비틀었는지를 비교하는 재미가 생깁니다. 하지만 원작을 모르고 봐도 충분히 이해 가능한 구조입니다. 헤밍웨이의 단편은 분량이 짧으니, 영화 보기 전날 30분 정도 투자해 읽어두면 훨씬 입체적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Q. 더 킬러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실화 기반은 아닙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1927년 단편소설 《살인자들》과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2)을 모티프로 한 창작 작품입니다. 다만 하청 구조나 권력의 먹이사슬 같은 설정은 현실의 사회 구조와 매우 닮아 있어 실화처럼 느껴지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 함께 보면 좋은 영화
- 명량 — 거대한 구조 속에서 개인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를 극단적 상황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더 킬러스》의 먹이사슬 테마와 맞닿아 있습니다.
- 군함도 — 권력 구조의 하층부에 놓인 사람들이 어떻게 착취당하고 또 저항하는지를 그린 영화로, 〈업자들〉 파트의 하청 구조와 함께 보면 한국 사회의 위계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