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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운행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왔더니 아내가 요양보호사 일을 마치고 먼저 와 있더군요. 둘 다 말 한마디 꺼내기도 귀찮을 만큼 지쳐 있으면서도 뭔가 함께 볼 것을 찾다가 이 영화를 틀었습니다. 45분짜리라는 게 솔직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요즘 두 시간짜리 영화를 끝까지 앉아서 볼 여력이 쉽게 나질 않거든요. 그런데 보다가 등이 서늘해졌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낯선 사람들
술상 앞에 모여 앉은 가족들이 나누는 대화, 표면은 안부인데 속은 전부 돈 얘기더군요. 영화배우인 사위가 오랜만에 처제 부부의 집에 나타났더니 첫마디가 "요즘 수입이 어때요?"입니다. 저도 비슷한 자리를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중국에서 주재원으로 8년을 보내고 귀국해 MRO 사업(기업 유지·보수·운영에 필요한 소모품 및 설비 공급 사업)을 6년 했는데, 잘 나갈 때는 다들 반겼고 사기 피해를 당하고 나서는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가족 모임에서 누군가의 시선이 살짝 비껴가는 느낌, 대화가 묘하게 짧아지는 느낌, 그게 얼마나 사람을 작아지게 만드는지 지금도 몸이 기억합니다.
처제가 생계 노동에 지쳐 있는 모습이 특히 마음에 걸렸습니다. 남편은 무심하고, 주변은 말리는 척하면서 실질적인 도움은 없고, 오해를 풀려고 꺼낸 말이 도리어 더 큰 상처가 되는 장면. 저는 쿠팡·배민 알바를 하면서 버스 운전을 시작하던 때가 떠올랐습니다. 몸은 한계인데 쉴 수가 없고, 그 상황을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알아주길 바라는데 잘 전달이 안 될 때, 사람은 참 외롭습니다. 말이 많아질수록 더 외로워지는 역설이 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그럼 나라면 그 술상에서 어떻게 했을까요? 저도 자신 없습니다. 사기 피해 이후로 저 역시 가족 모임에서 말을 아끼게 됐으니까요. 진짜 속마음을 꺼냈다가 그게 상처가 되어 돌아오는 경험을 몇 번 하고 나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입을 닫습니다. 그게 가족이라도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 제목이 직사각형과 삼각형입니다. 보면서 제 나름대로 생각해봤습니다. 직사각형은 네 면이 다 맞닿아 있어 가족처럼 보이지만, 삼각형은 세 꼭짓점이 서로 밀어내는 방향으로 힘이 작용합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모였지만 실제로는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사람들. 이 영화가 담고 싶었던 게 바로 그 형태의 불일치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배우들의 눈빛이 대사보다 먼저 말을 한다
진선규 씨는 제가 참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사위 역할은 겉으로는 주목받는 영화배우이지만, 처가 식구들의 시선이 오로지 자신의 통장 잔고에만 쏠려 있다는 걸 눈치채는 순간부터 표정이 미묘하게 변합니다. 활짝 웃으려다가 어딘가 한 박자 늦게 웃는 그 타이밍, 말을 잇다가 입을 다무는 순간의 목 근육 긴장감. 이런 작은 신체 언어(Body Language, 말 없이 몸으로 전달하는 감정 표현)들이 대사 한 마디보다 훨씬 많은 것을 전달합니다. 연극 무대 출신답게 온몸으로 감정을 조절하되 과하지 않게 눌러두는 연기가 압권이었습니다.
오의식 씨가 연기한 처제의 남편은 제가 보기에 가장 무서운 캐릭터였습니다. 악의 없이 무심한 사람, 그게 얼마나 상대방을 갈아먹는지를 그는 눈빛 하나로 보여줍니다. 상대가 감정을 터뜨릴 때도 약간 당황한 듯 두리번거리는 눈동자, 자기가 왜 혼나는지 진짜로 모르는 그 표정. 저도 살면서 저런 사람 곁에 있어봤기 때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악인이 아니라 그냥 둔감한 사람, 그게 때로는 악인보다 더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는 걸 이 배우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구현해 냈습니다.
권소현 씨가 연기한 처제는 이 영화의 진짜 심장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생계의 무게를 매일 혼자 들고 살아온 사람 특유의 피로감, 눈 주변의 긴장, 웃음이 눈까지 닿지 않는 반쪽짜리 미소를 정말 섬세하게 구현했습니다. 갈등이 몸싸움으로 번지는 장면에서 그녀의 몸짓은 분노라기보다 오랫동안 쌓인 외로움이 폭발하는 것처럼 보여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사실 선택이 아니라 한계였던 겁니다. 더 이상 눌러둘 공간이 없어진 사람이 마지막으로 터뜨리는 소리, 그게 몸으로 나온 것뿐이지요.
이희준 감독이 카메라로 건네는 질문
이희준 감독은 배우 출신답게 카메라를 배우의 몸에 아주 가까이 붙입니다. 클로즈업(Close-up, 피사체를 화면 가득 채워 세밀한 표정이나 사물을 강조하는 촬영 기법)이 단순히 감정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관객을 그 불편한 대화 속으로 밀어 넣는 도구로 쓰입니다. 멀찍이 떨어져서 구경하게 두지 않겠다는 연출 의도가 분명히 느껴집니다.
조명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앙부비언트 라이트(Ambient Light, 자연광이나 공간 자체의 조명을 활용하는 촬영 방식)에 가까운 실내조명이 장면 전체에 깔려 있어서 어딘가 낡고 지친 느낌을 자아냅니다. 특별히 아름답게 꾸민 화면이 아니라, 실제 우리 집 거실 같은 질감. 그게 이 영화를 훨씬 더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픽션인데 다큐멘터리(Documentary, 실제 사건이나 인물을 기록하는 방식의 영상물)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음악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 영화는 사운드 디자인(Sound Design, 음악·효과음·대화 등 모든 청각 요소를 설계하는 작업)을 최소화합니다. OST가 거의 없다시피 하고, 대신 술잔 부딪히는 소리, 숟가락이 상에 닿는 소리, 누군가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립니다. 이 침묵에 가까운 설계가 오히려 대사 하나하나의 무게를 두 배로 만들어줍니다. 말과 말 사이의 공백이 이 영화에서 제일 큰 소리를 냅니다.
이 작품이 내 삶에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가족에게 가장 솔직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현실에서 가장 솔직하기 어려운 대상도 가족이라는 것. 그 모순을 이희준 감독은 45분 안에 아주 정직하게 담아냈습니다. 첫 연출작 〈병훈의 하루〉(2018)에서 공황장애를 앓는 청년을 통해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봤다면, 이번에는 그 시선을 가족이라는 집단으로 확장했습니다. 내러티브(Narrative,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구조와 방식)가 단순한데도 울림이 크게 느껴지는 건 바로 그 정직함 때문입니다.
저는 2025년 12월 21일부터 하나님의 힘을 빌려 금연을 시작했습니다. 담배를 끊으면서 제일 어려운 게 뭔지 아십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처제가 생계를 혼자 짊어지고 버티는데 남편이 그걸 모르는 것처럼, 내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가까운 사람이 못 볼 때가 제일 힘듭니다. 이 영화는 그 감각을 정확하게 건드렸습니다.
추천 대상: 가족 모임이 가끔 전쟁터처럼 느껴지는 분, 말이 많아질수록 더 외로워진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는 분, 짧지만 밀도 높은 한국 독립영화를 찾는 분께 권해드립니다. 45분이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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