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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사각형 삼각형--병훈의 하루

    버스 운전을 하다 보면 명절 직전이 제일 묘합니다.

    지난 설 연휴 전날 오후, 6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어머니와 40대 아들 둘이 나란히 탔습니다. 두 정거장도 못 가서 작은아들 쪽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형이 왜 나한테 그런 식으로 얘기해." 어머니가 "조용히 해, 사람들 있잖니" 하고 말렸지만 이미 불씨가 붙은 뒤였습니다. 저는 룸미러로 세 사람을 슬쩍 살피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습니다. '저 어머니, 오늘 명절 며칠이나 버티실까.'

    그날 이후 줄곧 머릿속에 남아 있던 장면이었는데, 〈직사각형, 삼각형〉을 보면서 그 버스 안 세 사람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운행을 마치고 회사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위에 올라 유튜브를 뒤적이다가 짧은 예고편이 알고리즘에 걸렸습니다. 45분짜리 중편이라는 소개가 오히려 마음을 끌었습니다. 요즘 두 시간짜리 영화는 솔직히 버겁습니다. 늦은 저녁 운행을 마치고 씻고 나면 이미 11시가 넘어 있고, 허리디스크 때문에 오래 기댈 수도 없어서 짧고 단단한 것을 찾게 됩니다. 일요일 저녁, 아내가 요양보호사 시험 교재를 펼쳐 놓은 옆에서 이 영화를 봤습니다.

    진선규의 눈빛이 말해주는 가족 앞 억지 미소의 무게

    진선규 배우를 처음 알게 된 건 《극한직업》에서였는데, 이 배우는 유독 "말하지 않는 순간"에 강합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영화배우 사위로 등장합니다. 처가 식구들이 수입과 재정 상태를 노골적으로 캐물을 때 그가 보여주는 표정은 절묘합니다. 웃고는 있되 눈이 웃지 않는 상태. 입꼬리는 올라가 있지만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억지로 버티는 사람의 표정입니다.

    저는 그 눈빛을 보는 순간 중국 산동성 공장에서 보낸 8년이 생각났습니다. 본사 임원이 방문할 때마다 저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올해 원가절감 실적이 얼마요?"라는 질문 앞에서 웃으며 대답하되 속으로는 뜨끔한 그 감각. 젊을 때는 그게 그냥 직장생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60대가 된 지금 진선규의 눈빛을 보니, 그건 직장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에서 약자인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쓰는 표정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몸짓도 인상적입니다. 처가 식구들 사이에서 그는 팔짱을 끼지 않습니다. 팔을 무릎 위에 얹고 살짝 앞으로 숙인 자세. "나는 열려 있어요, 공격적이지 않아요"라는 신호를 몸 전체로 보내고 있는 건데, 그 자세가 오히려 더 처량해 보입니다. 여러분은 가족 모임에서 그런 자세를 취해본 적 있으신가요?

    권소현 배우의 연기는 또 다른 결입니다. 생계 노동에 지친 처제의 무력감을 거창한 오열 없이 "힘이 빠진 동작"으로 보여줍니다. 냄비를 들다가 잠깐 멈추는 짧은 정지, 남편에게 말을 건네는데 반응이 없을 때 시선이 허공을 향하는 0.5초. 저는 쿠팡·배민 배달 알바를 뛰던 시절, 밤 11시에 집에 들어오며 아내와 눈이 마주쳤을 때의 그 표정을 떠올렸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둘 다 아는 피로감. 권소현은 그걸 정확히 연기합니다. 두 배우의 케미(상호작용, 주로 앙상블 연기에서 배우들 사이의 호흡)는 과잉 없이 서로를 받쳐주는 방식으로 완성됩니다.

    이희준 감독이 아파트 한 칸에 욱여넣은 한국 가족의 서열

    이희준 감독이 선택한 공간은 아파트 한 채입니다. 45분 내내 카메라는 거의 그 공간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 선택은 단순한 제작비 절감이 아닙니다. 한국 가족에게 아파트란 서열과 관계가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감독은 로만 폴란스키(Roman Polanski)의 밀실극(密室劇, 제한된 공간 안에서 인물 간의 심리적 긴장을 끌어내는 연출 기법) 방식을 참조하면서도, 거기에 슬랩스틱(slapstick, 과장된 몸동작과 충돌을 활용한 코미디 기법)을 접목합니다.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연상케 하는 대화극(conversation piece, 대사와 인물 간 논쟁이 서사를 이끄는 형식) 구조 위에 몸싸움이라는 코미디 요소를 얹는 방식입니다. 이 조합이 의외로 잘 맞습니다.

    편집 리듬(edit rhythm, 컷 전환의 속도와 장면 길이가 만드는 영화적 호흡)이 특히 눈에 들어왔습니다. 가족이 노골적으로 사위의 수입을 캐묻는 장면에서 컷 전환이 촘촘하게 빨라지다가, 권소현이 남편과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에서 갑자기 롱테이크(long take, 편집 없이 한 번의 긴 촬영으로 이어지는 기법)로 늘어집니다. 이 리듬의 변화가 관객을 '웃다가 멈칫하게' 만드는 핵심입니다.

    저는 1984년 대기업 공장에서 합리화 개선활동(생산 공정의 낭비 요소를 찾아 효율을 높이는 활동)을 맡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배운 게 하나 있는데, 문제는 항상 공간의 구조에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동선이 꼬인 공장은 반드시 사고가 납니다. 이 영화의 아파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홉 명이 좁은 공간에 욱여넣어지는 순간, 갈등은 구조적으로 예정돼 있습니다. 감독은 그걸 알면서 의도적으로 그 공간을 고른 겁니다. 당신의 가족 모임 공간은 얼마나 '설계'되어 있나요?

    싸우다 뭉치는 아이러니 속에서 가족이란 도형을 다시 묻다

    영화의 결말은 아이러니합니다. 방금 전까지 처제 부부가 몸싸움을 벌이고, 사위는 수입 캐묻기에 지쳐 있었는데, 옆집과 시비가 붙자 이 가족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한 덩어리가 됩니다. 처음 이 장면을 봤을 때 저는 픽 웃었습니다. 그리고 곧 씁쓸해졌습니다.

    2004년 설날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가족 모두 중국 청도로 데려간 직후라 한국에 들어갈 형편이 안 됐습니다. 처가에 전화 한 통 드리는 것으로 설을 대신했는데, 처남이 수화기를 받더니 대뜸 "자네 거기서 월급 더 받는다던데, 형 결혼 때 우리 집에서 보탠 거 생각하면…" 하고 말꼬리를 흘렸습니다. 아내는 안색이 굳었고 저는 "명절 잘 보내세요"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날 밤 청도 사택 거실에서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창밖엔 폭죽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그런데 그 처가가, 10년 뒤 제가 사기 피해로 가장 힘들었을 때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온 곳이기도 했습니다. "자네 괜찮아?" 그 한마디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가족이라는 도형(영화 제목의 직사각형과 삼각형)은 각도가 맞지 않고 변의 길이도 제각각이지만, 외부의 힘이 가해지면 어떻게든 붙어 있으려는 성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는 그 아이러니를 45분 안에 정확히 담아냅니다. 여러분 가족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나요?

    45분짜리 중편이지만 밀도는 두 시간짜리 영화 못지않습니다. 명절 전후, 또는 오랜만에 가족이 모이는 날 보시길 권합니다. 가족 모임이 피곤한 분, 처가나 시가 관계에서 소진감을 느끼는 분, 그리고 "우리 가족은 왜 이럴까" 하고 한 번쯤 의문을 품어본 분이라면 분명 공감할 장면이 있을 겁니다.

    짧지만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보고 나서 한동안 가족 얼굴이 떠오르는 영화입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