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

    버스를 몰다 보면 가끔 승객 중에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는 분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지금 어디로 가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런데 묘하게 시선이 가고,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다시 꺼내 본 것도 그런 기분 때문이었습니다. 말 없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내는 이야기.

    침묵의 눈빛과 신념

    정우성이 연기한 현상금 사냥꾼 박도원은 참 말이 없는 인물입니다. 총을 뽑기 직전, 눈을 가늘게 좁히고 상대를 정조준하는 그 눈빛 하나에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신념 전체가 담겨 있습니다. 과장된 동작이 하나도 없습니다. 군더더기를 걷어낸 그 연기 방식이, 1984년 제가 대기업 공장에서 생산관리를 배울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낭비 제거의 원칙과 묘하게 닮아 보였습니다. 쓸데없는 동작 하나도 허락하지 않는 효율의 미학, 정우성은 그것을 몸으로 구현했습니다.

    이병헌의 박창이는 정반대입니다. 그는 눈빛으로 즐깁니다. 살기(殺氣, 죽일 듯한 기세)와 유희가 동시에 번득이는 그 눈이 섬뜩하면서도 묘하게 매력적입니다. 웃는 얼굴로 총을 겨누는 장면에서 관객은 공포와 매혹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됩니다. 어깨의 각도, 걸음걸이의 리듬, 손가락 끝의 미세한 긴장감까지 — 이병헌은 몸 전체를 악기처럼 씁니다. 이 인물에서 저는 MRO 사업 시절 만났던 몇몇 중국 파트너들의 얼굴이 겹쳤습니다. 웃으며 악수하고 계약서에 도장 찍은 뒤돌아서면 딴소리를 하던 사람들. 그때는 그저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박창이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다릅니다. 그 사람들도 그 땅의 논리, 그 시절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10년 전 사기 피해로 무너질 때 느꼈던 허탈함은 솔직히 아직도 완전히 가라앉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버스 핸들을 잡으며 이렇게 글을 쓰지도 않았겠지요.

    독자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살면서 박창이 같은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으신지요. 그 만남이 여러분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궁금합니다.

    송강호의 윤태구는 이 영화의 숨통이자 심장입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과장된 표정을 쏟아내지만, 그 과장 속에 진짜 서민의 애환이 녹아 있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의 관점에서 보면, 윤태구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화면의 무게중심이 살짝 낮아집니다. 카메라도 그와 함께 허둥댑니다. 그것이 감독이 의도한 캐릭터의 위치이자, 이 영화가 가진 진짜 따뜻함입니다. 허술하고 웃기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잡초처럼 살아남는 인물. 저는 이 사람에게서 저 자신을 봤습니다. 대기업 공채로 시작해 중국 주재원, 사업 실패, 배달 알바, 버스 운전, 60대 블로그 도전까지 — 누가 보면 갈지자 인생이겠지만, 저는 매 순간 살아남으려 했습니다. 윤태구처럼.

    잡초처럼 버틴 15년

    영화의 배경인 1930년대 만주는 무법천지였습니다. 일본군, 조선 독립군, 중국 마적단이 뒤엉킨 그 공간은 규칙보다 생존이 먼저인 땅이었습니다. 저는 그 풍경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저도 그 땅 어딘가에서, 다른 시대의 방식으로, 이방인으로 15년을 살았으니까요.

    2008년 개봉 당시 저는 중국 웨이하이 공장에서 생산관리 책임자로 뛰고 있었습니다. 현지 직원 수백 명 이끌고, 불량률 줄이고, 납기 맞추고, 본사 눈치 보느라 영화 한 편 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몇 년 뒤 어느 주말, 함께 고생하던 한국인 동료 주재원이 노트북을 들고 숙소로 찾아왔습니다. "형, 이거 한 번 봐요. 중국 사막에서 찍은 한국 영화예요." 그렇게 처음 이 영화를 만났습니다.

    화면에 펼쳐진 황톳빛 사막과 모래바람이 제가 출장으로 다녔던 중국 내륙 풍경과 겹쳐 보였습니다. 촬영지가 실제 만주가 아니라 둔황(敦煌) 인근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지만, 그 광활함은 진짜였습니다. 영화 속 세 인물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버티는 모습을 보면서, 제 중국 생활 15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습니다.

    큰아들이 중국 로컬학교에 처음 다니던 날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중국어 한 마디 못하는 아이가 교실에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저는 속으로 "이 녀석이 어떻게 버티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버텼습니다. 윤태구처럼, 계획도 신념도 없이 그냥 부딪히면서. 지금 큰아들은 경찰 공무원입니다. 그 만주의 잡초 같은 생명력이 어디서 왔는지 저는 압니다. 가족이 함께 이방인으로 살아낸 그 시간이 우리 모두를 그렇게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화 속 세 인물은 보물 지도 하나를 두고 쫓고 쫓깁니다. 그런데 저는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이 정말 원한 것이 보물이었을까. 아니면 그 광활한 대륙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을까.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와 지금 다시 봤을 때, 제게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병헌의 박창이가 단순히 '악당'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그 냉혹함 뒤에 숨은 절박함이 보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그리고 직접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면서 생긴 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평원이 품은 본능

    김지운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내러티브를 단순하게 만든 대신 캐릭터와 액션에 중심을 두었다"라고 밝혔습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겸손처럼 느껴졌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것이 얼마나 대담한 전략적 선택인지 깨달았습니다.

    카메라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집니다. 광활한 사막을 내려다보는 파노라마(panorama) 항공 숏은 인간이 얼마나 작고 미약한 존재인가를 시각적으로 선언합니다. 그 거대한 대지 위에서 세 남자가 서로를 쫓고 쫓기는 장면은 보물이 아니라 생존 자체를 위해 달리는 인간의 본능을 담고 있습니다. 반면 근접 격투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피부 가까이 달라붙어 빠른 컷으로 끊임없이 절단합니다. 이 두 앵글의 대비가 이 영화의 시각적 긴장감을 만들어냅니다.

    주목할 점은 이 영화가 1930년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민족주의적 코드를 극히 절제했다는 것입니다. 감독은 한국의 애국주의적 서사보다 뭇국적성(無國籍性,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보편성)에 배경을 두었습니다. 이것이 이 영화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통한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받았으며(출처: 영화진흥위원회, ), 누적 관객 수 6,686,054명을 기록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

    음악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작곡가 달 샤벳의 음악은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 이탈리아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의 전설적 작곡가)의 영향을 의도적으로 오마주(hommage, 존경과 경의를 담은 인용)하면서도 동양적 정서를 섞어냈습니다. 제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어린 시절, 들판에서 일하다 지평선을 바라보던 그 감각이 이 영화의 음악 속에 어딘가 녹아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광활함 앞에서 작아지는 인간, 그 안에서도 끝까지 달리는 본능.

    독자 여러분께 하나 여쭤보고 싶습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중 여러분은 어느 쪽에 가깝다고 느끼십니까. 저는 아직도 이상한 놈 쪽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다음 분들께 특히 추천드립니다. 특히 해외 생활을 경험했거나, 인생의 굴곡을 지나 다시 시작하는 분이라면 더욱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 중국이나 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본 경험이 있는 분
    •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뚜벅뚜벅 걸어온 분
    • 화려한 액션보다 캐릭터의 결이 살아 있는 영화를 좋아하는 분
    • 한국 영화의 장르적 가능성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분

    139분이라는 상영 시간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만주 대평원을 달리는 세 남자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삶도 그 광야 어딘가에 겹쳐 보이게 됩니다. 60대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저처럼, 지금 어떤 길목에 서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가 분명 무언가를 건드릴 것입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가장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달리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다."

    참고문헌

      • 영화진흥위원회(KOFIC).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영화정보 및 관객통계.
      • IMDb. The Good, the Bad, the Weird (2008).
      • 다음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작품정보.
      • 한국영상자료원(KOFA). 한국영화 아카이브 및 감독 자료.
      • 김지운 감독 인터뷰 및 제작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