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말, 쉬는 날에 혼자 극장 문을 밀었습니다. 아내는 요양보호사 현장에 나갔고, 두 아들은 각자 바빠서 결국 60 넘은 남자 혼자 113분을 앉아 있었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중간에 눈물을 꾹 참느라 꽤 혼났습니다.
1. "좀비가 된 딸을 끝까지 안는다" - 돌봄의 본질을 건드린 연출
영화 《좀비딸》은 2025년 7월 30일 개봉한 코미디·드라마 장르 작품입니다. 감독은 필감성, 주연은 조정석·최유리·이정은·조여정이며 상영 시간은 113분, 12세 이상 관람가입니다. 원작은 이윤창 작가의 네이버 웹툰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로, 5억 뷰라는 누적 조회 수가 말해주듯 이미 대중성이 검증된 IP(지식재산권, Intellectual Property)입니다.
필감성 감독은 2021년 《인질》로 장편에 데뷔했고, 이후 티빙 오리지널 《운수 오진 날》을 통해 장르물 연출력을 입증한 인물입니다. 스릴러에서 코미디·휴먼 드라마로의 장르 전환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를 두고 개봉 전부터 말이 많았는데, 저는 이 전환이 오히려 이 영화의 핵심 전략이었다고 봅니다.
감독이 직접 밝혔습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좀비가 된다면이라는 질문이 나를 자극했다"라고. 저는 이 말이 단순한 장르적 설정이 아니라 우리 일상 안에 이미 살아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치매에 걸린 부모님, 중독에 빠진 자녀, 사고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배우자.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더 이상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닌데도, 작은 기억 하나 때문에 차마 등을 돌리지 못하는 것. 좀비라는 극단적 설정이 바로 그 돌봄과 사랑의 본질을 건드리는 장치로 쓰인 겁니다.
주인공 이정환(조정석)의 직업이 호랑이 사육사라는 점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맹수를 매일 마주하면서도 두려움 대신 유대를 쌓아온 사람. 그런 사람이기에 좀비가 된 딸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는다는 설정이 자연스럽게 납득됩니다. 감독이 직업 하나를 그냥 아무렇게나 고른 것이 아니지요.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김태성 작곡가는 《명량》·《극한직업》·《파묘》 등 한국 역대 흥행작들의 오리지널 스코어(영화 음악 전반)를 맡아온 인물입니다. 감정선이 예민하게 요구되는 장면마다 음악이 과하지 않게 깔리면서, 웃다가 먹먹해지는 그 리듬이 꽤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독자 여러분, 혹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좀비딸은 그 질문을 113분 내내 아주 진지하게, 그러나 웃음을 잃지 않고 붙들고 있습니다.
2. 아버지의 상실 - "중국에 있던 8년, 나는 아빠였는가"
영화 내내 저를 붙잡은 것은 조정석의 연기보다도 제 자신의 기억이었습니다.
저는 2004년부터 2012년까지 8년 동안 중국 주재원으로 생활했습니다. 베이징과 상하이를 오가며 MRO(소모성 자재 구매 대행) 사업을 했고, 명절에도 업무 때문에 귀국하지 못한 해가 여러 번이었습니다. 두 아들이 한창 자랄 시기에 아빠는 중국 어딘가에 있었던 거죠. 아내 혼자 다 키웠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아내가 지금은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고, 1999년 위암 수술 후 완치 판정을 받고 26년째 건강하게 살아주고 있으니, 저로서는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영화 속 이정환이 딸 수아의 곁을 지키며 "나는 네 아빠야"를 반복할 때, 저는 그 대사가 뼈에 박혔습니다. 나는 그 시절 아이들 곁에서 그 말을 충분히 했는가. 중국 출장지에서 국제전화 한 통으로 때웠던 수많은 밤들이 스크린 위로 겹쳐 보였습니다.
할머니 역을 맡은 이정은 씨의 연기는 정말 압도적이었습니다. 털털하면서도 손녀 하나를 온몸으로 사랑하는 그 모습이 돌아가신 저희 어머니를 닮았어요. 어머니가 생전에 "네 자식한테 잘해라"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셨는데, 그 말이 뒤늦게야 제대로 이해됩니다.
10여 년 전 사기를 당하고 정말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중국에서 쌓은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경험을 했고, 그 이후 쿠팡 알바, 배달의민족 라이더, 그리고 지금의 버스 운전과 보험 투잡까지. 다시 서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그 시간 동안 저를 붙잡은 건 결국 가족이었습니다. 아내가 흔들리지 말라 했고, 아들들이 아무 소리 없이 제 옆에 있어줬습니다.
이 영화에서 좀비가 된 수아는 말을 잃었지만 춤과 아주 작은 기억들은 남아 있습니다. 프로소디(prosody, 언어의 리듬·억양·감정을 담은 비언어적 표현)라는 개념처럼, 언어가 사라진 뒤에도 감정의 흔적은 남는다는 이야기를 이 영화는 조용히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이들에게 말로 하지 못했던 것들이, 그래도 어딘가에 흔적으로 남아 있길 바란다고.
독자 여러분, 혹시 오늘 자녀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게 언제입니까? 이 영화는 그 사소한 질문을 아주 묵직하게 돌려보냅니다.
3. 생존과 부성 - 버스 핸들 위에서 다시 읽은 '아빠'라는 단어
저는 매일 새벽 서울 시내버스 핸들을 잡습니다. 고혈압과 고지혈증 약을 챙겨 먹고, 허리디스크 때문에 장시간 운전 후엔 허리를 펴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한쪽 귀 난청 때문에 승객이 작게 말하면 두 번 되묻기도 하지요. 그래도 핸들을 잡는 건, 이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성실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2025년 12월 21일, 하나님의 힘을 빌려 금연을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담배를 손에서 놓지 못했는데, 신앙 안에서 결심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버텨지더군요. 아직 진행 중입니다만, 이것도 저에게는 작은 생존의 서사입니다. 이 영화의 이정환이 매일 좀비가 된 딸 곁에서 하루를 버텨내는 것처럼, 나 역시 매일 아침 핸들 앞에서 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아버지입니다.
감염(infection)이라는 의학적 개념을 이 영화는 은유로 씁니다. 좀비 바이러스라는 외부의 감염이 한 가족의 구조 전체를 바꿔놓는 과정. 하지만 동시에 이정환과 수아, 그리고 할머니 사이에는 카타르시스(catharsis, 감정의 정화·해소)가 반복적으로 일어납니다. 가족이란 상처를 주고도, 또 그 상처를 함께 삭이는 존재라는 것을 이 영화는 장르의 문법 안에서 꽤 솔직하게 말합니다.
조여정이 맡은 역할에 대해서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만, 극의 전환점에서 그가 가져오는 감정의 밀도가 상당합니다. 앰비밸런스(ambivalence, 한 대상에 대해 사랑과 적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심리 상태)라는 단어가 딱 어울리는 캐릭터였습니다.
이 영화가 웹툰 원작임을 알고 나면, 원작의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이야기의 시간·인과·감정의 설계 방식)를 영화 문법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감독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도 눈에 들어옵니다. 웹툰 특유의 리듬감과 시각적 과장을 영화가 완전히 흡수하기보다, 약간 절제하면서 현실감을 살린 편입니다. 그 절제가 오히려 감동을 더 깊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버스기사인 저도, 사육사인 이정환도, 결국 매일 무언가 거대한 것 앞에서 조용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입니다. 아버지라는 역할이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멋지게 뭔가를 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오늘도 그 자리에 있어주는 것.
혹시 요즘 부모님이나 자녀와 멀어진 느낌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이 영화를 권합니다.
참고로 원작 웹툰 정보는 네이버 웹툰 공식 페이지에서, 영화 상세 정보와 예매는 CGV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마무리 이런 분께 권합니다
자녀와 말이 줄어든 아버지, 부모님 곁에 오래 있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는 분, 그리고 좀비 액션보다 가족의 온기가 필요한 모든 분께 이 영화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