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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아시스버닝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2002)와 《버닝》(2018)은 사회 변두리에 선 인간의 욕망과 소멸을 정면으로 다룬 한국 예술영화의 두 기둥입니다. 《오아시스》는 설경구·문소리 주연의 금지된 사랑을, 《버닝》은 유아인·스티븐 연·전종서 주연의 실종과 의심을 축으로 삼아 보는 이의 가슴에 오래 머무는 여운을 남깁니다.

     

    러닝머신 위에서 땀을 흘리다 보면 이상한 생각이 드는 날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서 사라진 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작년 늦가을, 북한산 등산을 마치고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을 때 TV에서 《버닝》이 시작됐습니다. 이창동 감독 이름 석 자를 보고 채널을 돌리지 않았고, 두 시간 뒤 저는 멍한 채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오아시스》까지 다시 꺼내 봤습니다. 두 영화를 연달아 보고 나서야, 이창동이 20년에 걸쳐 같은 질문을 다른 언어로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라진 것들이 남긴 불꽃

    《버닝》의 해미가 사라집니다. 아무 흔적도 없이. 핸드폰도, 고양이도, 존재 자체도. 종수(유아인)는 그 빈자리를 채우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저는 그 '사라짐'이라는 감각을 압니다.

    2013년 중국 현지에서 MRO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있었습니다. 거래처도 있고, 계좌에 돈도 있었고, 내일에 대한 계획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하나씩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야 사기였다는 걸 알았고, 주식 리딩 피해까지 겹쳤습니다. 2019년, 저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비행기 창밖으로 산동성 해안선이 멀어질 때, 15년 치 삶이 연기처럼 흩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은 해미가 아프리카 이야기를 꺼내는 부분입니다.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맨들은 배고파도 울지 않아. 그냥 춤을 춰." 그 대사가 나오는 순간, 화면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2004년 청도로 건너갈 때 아내는 위암 수술 후 5년도 채 안 된 몸이었는데 묵묵히 짐을 쌌습니다. 아이들은 중국 로컬 학교에 들어가 한국말을 쓰면 선생님께 혼났다고 했습니다. 큰아이가 울면서 전화했을 때 저는 공장 불량률 회의 중이었고, 제대로 받지도 못했습니다. 그날 밤 아이 등을 두드리면서도 저는 "아빠도 사실 무섭다"는 말을 끝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가족도 그렇게, 울지 않고 그냥 살았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이 영화에서 한 번도 '진실이 이것이다'라고 못 박지 않습니다. 해미는 실종인가, 벤이 죽였는가, 아니면 처음부터 존재했는가조차 불분명합니다. 그 불확실성이 불편하지만, 실제 삶도 그렇다는 것을 60을 넘기고 나서야 알게 됐습니다. 당신은 인생에서 사라진 무언가를 끝내 설명하지 못한 채 살아온 적이 있으신가요?

    변두리 인간이 견디는 무게

    《오아시스》의 홍종두(설경구)는 사회의 낙인을 온몸에 새기고 삽니다. 전과자, 눈치 없는 사람, 가족에게조차 짐이 되는 존재. 그런데 그가 공주(문소리) 앞에서만큼은 아무도 본 적 없는 순수함을 드러냅니다. 문소리는 경직된 근육과 뒤틀린 몸짓 속에서도 홍종두를 바라보는 순간만큼은 눈에서 빛을 흘렸습니다. 그 눈빛 하나가 장애라는 육체적 조건을 단번에 뛰어넘는 힘을 가졌습니다.

    저는 1984년 대기업 공채에 붙어 공장 생산라인에 섰을 때, 뭔가 엄청난 것이 시작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끝내 말할 수 없었습니다. 공장합리화 운동을 밀어붙이고, 원가절감 수치를 올리면서, 어느 날 거울 앞에 서니 그냥 지쳐 있었습니다. 뭔가 되려고 달렸는데 무엇이 됐는지 모르는 상태. 《오아시스》의 홍종두가 그 막막함과 포개졌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오아시스》는 2002년 개봉 당시 서울 관객 46만여 명을 기록했으며, 같은 해 제59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신인연기상·국제비평가협회상 등 5개 부문을 수상했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링크) 그럼에도 당시 국내 상업 스크린에서는 철저히 외면받았습니다. 주류가 아닌 것들, 낙인찍힌 것들은 언제나 그렇게 구석에 놓입니다.

    이창동 감독은 두 영화 모두에서 카메라를 인물의 편을 들지 않는 증인처럼 세워 둡니다. 낭만화도, 희화화도 없습니다. 그저 그들 곁에 조용히 붙어 서서 관객 스스로 판단하게 만드는 방식입니다. 자연광에 가까운 거친 빛이 그 날것의 감각을 더 깊게 만듭니다. 당신이라면 홍종두와 공주의 사랑을 어떻게 판단하겠습니까?

    이창동이 묻는 우리의 결핍

    《버닝》의 종수는 분노하지만 그 분노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조차 모릅니다. 유아인의 눈빛은 언제나 반쯤 열린 문처럼 무언가를 향하지만 결코 도달하지 못하는 막막함을 담고 있었습니다. 반면 스티븐 연의 벤은 완벽한 미소로 모든 것을 가립니다. 그 미소가 오히려 섬뜩합니다. 결핍이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공허함, 그것이 표정 하나에 압축됩니다.

    한국영화학회 연구(2020)에 따르면 이창동 감독의 작품은 "사회 구조적 폭력과 개인의 실존적 무력감을 동시에 포착하는 리얼리즘 미학"으로 평가됩니다.(출처: 한국영화학회, 링크) 《오아시스》와 《버닝》은 그 미학의 두 극점입니다. 전자는 사랑이 어떻게 사회의 벽에 부딪히는지를, 후자는 욕망이 어떻게 연기처럼 소멸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저는 2025년 12월 21일부터 금연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힘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다 사라지듯, 사람도 그렇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버닝》을 보며 다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라지지 않기로 했습니다. 새벽 4시 반에 눈을 뜨고,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타고, 버스 핸들을 잡고, 퇴근 후 블로그를 씁니다. 60대의 재기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냥 매일 자리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두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연출 선택은, 결말을 보는 이에게 위임한다는 점입니다.

    • 《오아시스》: 판타지 시퀀스(공주가 자유롭게 움직이는 장면)를 현실과 섞어 넣어, 관객이 어디까지를 현실로 볼지 스스로 결정하게 합니다.
    • 《버닝》: 마지막 장면에서 종수의 선택이 정당한지, 광기인지 판단의 여지를 완전히 열어 둡니다.

    이창동 감독은 답을 주지 않는 감독입니다. 그 불친절함이 역설적으로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당신은 이 두 영화의 결말을 어떻게 읽으셨나요?

    두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묘하게 마음이 무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단단해지는 느낌이 납니다. 사라진 것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남은 것들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아시스》와 《버닝》은 그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영화입니다. 쉽게 소비되는 영화를 원한다면 다른 걸 고르십시오. 하지만 한 번쯤 자신의 결핍을 정면으로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두 편을 밤에 혼자 보시길 권합니다.

    별점 ★★★★☆ (4/5)
    (각 작품 개별로도 4점, 두 편을 함께 읽는 경험으로는 5점에 가깝습니다)

    ❓ 자주 묻는 질문

    Q. 《오아시스》와 《버닝》 중 어떤 것을 먼저 보는 게 좋을까요?
    A. 개봉 순서대로 《오아시스》(2002) → 《버닝》(2018) 순으로 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이창동 감독이 20년에 걸쳐 어떻게 같은 주제를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켰는지 흐름이 잡히기 때문입니다. 《오아시스》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내던 감정을 《버닝》에서는 얼마나 절제하고 모호하게 바꿨는지 비교하며 보면 두 배로 풍성하게 감상할 수 있습니다.

    Q. 《버닝》 결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A. 이창동 감독은 종수의 마지막 행동이 정당한 복수인지, 망상에 의한 폭력인지 의도적으로 열어 두었습니다. 하루키 무라카미 원작 단편 「헛간을 태우다」와 달리 영화는 관객 각자가 벤의 죄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결말의 의미가 달라지는 구조입니다. "사라진 해미의 고양이를 종수만 봤는가"라는 디테일 하나로도 해석이 갈리는 만큼, 두 번 이상 볼수록 다른 장면이 눈에 들어오는 영화입니다.

    Q. 《오아시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실화는 아닙니다. 이창동 감독이 직접 쓴 오리지널 각본이며, 장애인과 전과자라는 두 소수자의 사랑을 통해 사회의 편견과 배제를 드러내는 픽션입니다. 다만 문소리가 연기를 위해 수개월간 뇌성마비 환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준비했고, 그 결과 2002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신인연기상을 받았습니다. 연기의 리얼리티 면에서는 실화처럼 느껴질 만큼 밀도가 높습니다.

    Q. 두 영화의 러닝타임과 관람 난이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A. 《오아시스》는 132분, 《버닝》은 148분으로 둘 다 두 시간이 넘습니다. 상업 영화처럼 빠른 편집과 자극적인 전개를 기대하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반면 느린 호흡과 여백을 즐길 수 있다면, 그 긴 시간이 오히려 작품 안으로 깊이 빠져드는 시간이 됩니다. 주말 저녁, 스마트폰을 옆에 두지 않고 조용히 보시길 권합니다.

    🎬 함께 보면 좋은 영화

    • 시버 — 사회에서 밀려난 인물이 내면의 한계와 싸우는 구조가 《오아시스》와 《버닝》의 정서와 맞닿아 있습니다. 변두리 인간이 어떻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버티는지를 비교하며 보면 두 작품이 더 선명하게 읽힙니다.
    • 검객 — 시대의 중심이 아닌 자리에 선 인물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오아시스》의 홍종두가 품고 있는 고집스러운 순수함과 닮은 결이 있습니다.
    • 끝장수사 — 진실이 무엇인지 끝까지 밝혀내려는 집착이 《버닝》에서 종수가 해미의 실종을 추적하는 방식과 묘하게 공명합니다. 진실을 향한 강박이 인간을 어떻게 몰고 가는지 비교하며 보면 흥미롭습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