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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의지만이 절망을 버티게 한다, 창의, 연대

by 어성초님 2026. 6. 16.

오디세이

2025년 새벽 4시, 텅 빈 서울 외곽도로를 달리다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핸들을 잡은 손, 창밖의 무인 가로등, 적막한 도로. 화성의 붉은 황야와 그 새벽이 이상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외롭다기보다 오히려 평온했던 그 순간이, 저로 하여금 리들리 스콧의 2015년작 《오디세이(The Martian)》를 다시 꺼내 생각하게 만든 계기였습니다.

의지만이 절망을 버티게 한다

영화는 단순합니다. NASA 우주인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가 화성 탐사 중 동료들과 분리되어 홀로 남겨지고, 그가 구조될 때까지 551일을 버티는 이야기입니다. 줄거리 자체는 그리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가 단순한 서바이벌 스릴러가 아닌 이유는, 와트니가 절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내러티브 톤(narrative tone)이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감정적 분위기를 의미합니다. 리들리 스콧은 이 영화의 내러티브 톤을 철저히 낙관주의로 설계했습니다. 죽음의 공포 대신 유머, 비통함 대신 과학적 문제 해결. 처음에는 솔직히 그 선택이 다소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현실의 절망이란 것은 저 배경음악처럼 70년대 디스코 한 곡으로 덮이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살아남으려는 사람이 매일 유머를 유지한다는 것, 그것이 가장 처절한 생존 방식이라는 것을.

2019년 사기 피해 이후 저는 쿠팡 새벽 배송과 배달 라이더를 병행했습니다. 무너질 것 같은 날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 제가 자신에게 했던 말은 거창한 의지의 선언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하루만 버티자." 그게 전부였습니다. 와트니가 화성에서 하루치 식량을 계산하며 살아가는 방식, 그 방식이 낯설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나라면 어땠을까요? 화성에 홀로 남겨졌을 때, 저는 첫날밤을 버틸 수 있었을까요.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압니다. 와트니처럼 다음 날 아침의 할 일 목록을 쓰기 시작했다면, 그 순간 이미 생존은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맷 데이먼의 연기는 의외로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는 울지 않고, 소리치지 않습니다. 처음엔 감정이입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그 절제가 사실에 가장 가깝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은 오히려 감정을 내면으로 밀어 넣고 기능적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사기 피해 직후 저도 울 틈 없이 다음 날 새벽 배송 동선을 짰습니다. 그 경험이 데이먼의 연기를 진짜처럼 읽게 해 주었습니다.

창의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다

와트니는 식물학자입니다. 그는 화성의 황무지에서 감자를 재배합니다. 동료들의 배설물을 비료 삼아, 거주 모듈의 공기를 조절하며, 철저히 과학적인 방식으로. 이 장면들이 단순한 볼거리가 아닌 이유는, 그 창의가 있는 재료만으로 최선을 끌어낸다는 생존의 원리를 정확히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드 SF(Hard Science Fiction) 란 실제 과학 원리와 물리 법칙에 최대한 충실하게 설정을 구성한 SF 장르를 의미합니다. 이 영화는 하드 SF의 대표작으로 자주 언급됩니다. 실제로 NASA는 이 영화의 과학적 묘사에 상당 부분 협력했으며, 화성 토양의 특성, 태양 에너지 활용 방식, 통신 지연 문제 등이 실제 우주 탐사 연구와 맞닿아 있습니다(출처: NASA 공식 사이트 - The Martian).

주인공이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와트니가 포기 대신 감자밭을 선택한 것은 단순한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지금 내가 가진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는 태도, 즉 자기 책임형 문제 해결 방식입니다.

저는 이 태도를 어쩌면 그보다 먼저 배웠습니다. 2006년 상하이 주재원 시절, 설 연휴를 혼자 보냈습니다. 가족은 서울에, 현지 동료들은 모두 고향으로 떠난 뒤였습니다. 창밖의 폭죽 소리를 라면을 끓이며 혼자 들었습니다. 이방인이라는 감각이 피부로 왔던 그 밤, 저는 내일 당장 처리해야 할 거래처 서류 목록을 작성했습니다. 외로움을 이기는 방법이 감정이 아닌 행동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미리 파악하지 못한 것은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준비를 더 철저히 하게 됩니다. 와트니의 창의도 그런 성격에서 나온 것이라고 저는 읽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 내가 아직 찾지 못한 방법이 있다는 전제. 그 전제가 감자밭을 만들어냈습니다.

연대가 고립을 끝내는 유일한 답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지구의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밤하늘을 바라봅니다. 와트니 한 명을 위해서입니다.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의 생존이 세상에 저토록 의미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여기서 집단 공감(collective empathy)이란 개인의 고통이나 상황에 공동체 전체가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연결되는 심리적 현상을 의미합니다. 사회복지사와 심리상담사 자격을 공부하면서 저는 이 개념이 단순한 감정 이상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연대는 고립된 개인을 심리적으로 회복시키는 가장 강력한 자원입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 사회적 지지와 심리적 회복).

2023년 성령충만을 경험하고 2024년 세례를 받은 이후, 저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감각이 무엇인지를 다르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종교적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고독의 한복판에서도 연결되어 있다는 실질적인 감각이었습니다. 그 감각과 영화의 그 장면이 정확히 맞닿았습니다.

다만 제가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이 있습니다. 구조 이후의 이야기가 너무 짧다는 것입니다. 와트니가 지구로 돌아온 뒤 겪을 심리적 재적응, 사회와의 재연결 과정은 거의 생략됩니다. 심리상담 공부를 하면서 저는 외상 후 회복이 사건의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영화는 귀환을 해피엔딩으로 봉인해 버리는데, 진짜 오디세이는 오히려 집에 돌아온 다음부터일 수 있습니다. 그 여백이 이 영화가 위대함에 한 발 못 미치는 지점입니다.

여기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란 생명을 위협하는 극한 경험 이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후유증을 의미합니다. 551일의 고립을 버텨낸 사람이 가장 힘든 시간은 어쩌면 지구로 귀환한 다음 일지 모릅니다. 저는 사기 피해 이후 경제적으로 회복하는 데 몇 년이 걸렸지만, 심리적으로 원래의 감각을 되찾는 데는 그보다 훨씬 더 걸렸습니다. 와트니에게도 그 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가 빠진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가 고립을 끝낸다는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는 틀리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가질 때, 세상은 그를 위해 움직인다. 그것이 이 영화가 2025년 새벽 버스 안에서도 저를 움직인 이유입니다.

이 영화는 우주 SF에 관심 없는 분들께도 권합니다. 특히 지금 무언가를 버티고 있는 분들, 혼자라는 감각이 너무 짙은 분들, 아직 다음 수를 모르는 상황에 놓인 분들께 권합니다. 와트니는 영웅이 아닙니다. 그는 그냥 오늘 하루를 포기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참고:
출처 1: NASA - The Martian
출처 2: 한국심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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