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2005년, 중국 산동성 웨이하이의 허름한 주재원 아파트에서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습니다. 화질이 뭉개지는 복사본 DVD였지만, 온 가족이 배꼽을 잡고 웃었던 그 밤이 아직도 선합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서울 시내버스 핸들을 잡으며 살아가는 60대 초반의 제가 이 영화를 다시 꺼낸 이유가 있습니다.
김수미의 눈빛 하나가 조직보다 무서운 어머니를 완성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 영화의 스토리보다 김수미 선생님의 눈빛 하나에 20년째 붙들려 있습니다. 백호파 대모 홍덕자 역을 맡은 그분은 단순한 코미디 연기를 한 게 아니었습니다. 대사 한 마디 없이도 눈빛 하나로 좌중을 압도하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그 눈빛은 무서우면서도 어딘가 짠했습니다. 조직의 우두머리이기 전에 자식들 잘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눈빛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눈빛에서 제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충청도 시골 마을에서 담배밭고랑 사이를 걷던 어머니가 자식들 하나하나를 바라보던 바로 그 눈이었습니다. 어릴 때 저는 그 눈이 그저 잔소리의 전조라고만 여겼습니다. 담배 모종을 심다가 손이 느리다고 혼날 것 같아 피했던 그 눈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 눈 안에 얼마나 많은 걱정과 사랑이 담겨 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홍덕자 여사가 세 아들에게 "환갑잔치 전까지 며느리 데려와" 하고 호령하는 장면은 표면적으로는 웃음 코드이지만, 저는 그 장면에서 웃음보다 먼저 뭉클함이 왔습니다. 자식들이 올바른 짝을 만나 뿌리를 내리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바람은, 조폭 가문이든 평범한 가정이든 본질에서 다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이 장면이 그냥 코미디 설정으로만 보였는데, 지금은 달리 읽힙니다. 홍덕자 여사의 호령 안에는 자신이 걸어온 거친 삶을 자식 세대에서는 반복하지 않게 하겠다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배우 김수미의 몸 전체에서 배어 나왔고, 그래서 그 캐릭터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연기론적으로 보자면, 이것은 내면 동기(inner motivation)를 신체화하는 연기, 즉 캐릭터의 감정이 대사가 아닌 몸의 언어로 표출되는 방식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웃음을 유발하는 캐릭터에서 어머니의 진심을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검사 며느리가 들어오자 백호파 가문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신현준 씨가 연기한 장인재는 거친 조폭 아들이지만,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쩔쩔매는 장면에서 몸 전체로 연기를 했습니다. 어깨가 움츠러들고 발끝이 어색하게 모이는 그 몸짓은 대사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나 강한 척하지만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는 보편적인 진실입니다.
김원희 씨가 검사 신분을 숨기면서 가문 사람들과 부딪히는 장면들은 이 영화의 실질적인 긴장 축입니다. 표정 연기가 특히 뛰어났는데, 웃어야 할 타이밍에 억지로 웃는 그 미묘한 떨림이 캐릭터의 내적 긴장을 고스란히 전달했습니다. 억지로 유지하는 페르소나(persona, 사회적 가면)가 무너지기 직전의 그 순간, 저는 숨을 멈추고 화면을 봤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중국 공장에서 관리책임자로 있을 때, 저는 항상 흔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여야 했습니다. 현지 직원 수백 명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숙소에 돌아오면 배우자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참 힘들었어"라는 말 한마디를 하고 나서야 숨을 쉬었습니다. 김진경 캐릭터가 두 개의 얼굴을 유지하며 소진되어 가는 그 피로감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정용기 감독은 이 영화에서 상황 코미디(situation comedy)보다 배우 개인기에 기대는 연출을 택했는데, 저는 그것이 오히려 솔직한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조명은 과하지 않게 인물의 표정을 살렸고, 엉뚱하게 경쾌한 배경음악(BGM, Background Music)은 "우리 지금 웃자고 하는 겁니다"라는 솔직한 신호처럼 들렸습니다. 1984년 대기업에서 생산관리 일을 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과장된 포장보다 실질이 더 오래간다는 것이었거든요. 감독의 그 선택이 저는 그래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가문의 위기〉는 개봉 당시 최종 관객 수 약 5,635,266명을 기록하며 2005년 한국 영화 흥행 상위권에 올랐습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링크) 당시 한국 코미디 영화가 500만 이상을 동원하는 일이 흔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이 영화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웃음 버튼을 정확히 눌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셨습니까, 아니면 저처럼 엉뚱한 장소에서 보셨습니까?
웃음 뒤에 숨겨진 가족의 진심이 20년이 지나도 따뜻하게 남는다

최근 버스를 몰다가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칠순쯤 돼 보이는 어머니 한 분이 중년의 아들 둘을 양옆에 끼고 타셨습니다. 어머니가 버스 안에서도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야, 너 요즘 밥은 먹고 다니냐", "야, 너는 왜 그렇게 말라빠졌어". 두 아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예, 예" 하며 받아치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가문의 위기〉 속 장면과 겹쳐 보이던지, 저도 모르게 혼자 빙긋 웃고 말았습니다. 백미러로 그 장면을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 자신도 그 아들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10년 전 사기 피해와 주식 리딩 피해로 바닥까지 내려앉았을 때, 배우자는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줬습니다. 1999년 위암 수술을 이겨낸 사람이 오히려 저를 붙들어 준 것입니다. 쿠팡 배달을 뛰고, 배민 오토바이를 몰고, 새벽에 버스 핸들을 잡으면서도 속으로는 "내가 가장으로서 제대로 된 사람인가" 하는 자책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그럼에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가족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20년이 지나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입니다. 웃음을 앞세우지만, 그 안에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단단한가를 조용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조폭이든 아니든, 어머니는 자식 걱정을 하고, 아들은 어머니 눈치를 보고, 며느리는 낯선 가문에 적응하려 애씁니다. 그 보편적 서사(universal narrative)가 코미디라는 포장지 안에 담겨 있어서, 관객은 웃으면서도 어딘가 찡한 것입니다.
2005년에 중국에서 이 영화를 보며 웃던 제 두 아들은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큰아들은 경찰공무원이 되었고, 작은아들은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들이 한국어가 어눌해질까 봐 걱정하며 DVD를 틀어줬던 아버지가, 이제 버스를 몰며 블로그를 쓰는 60대가 되었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한 보고서는 "가족 간 공유된 문화 경험이 유대감 형성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링크) 그 웨이하이의 밤, 우리 가족이 함께 웃은 것이 그런 유대였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가족과 함께 본 영화 한 편이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아 있지 않으십니까?
아쉬운 점도 짚겠습니다.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개연성(plausibility)이 무너지는 장면들이 있고, 캐릭터들이 웃음을 위해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행동하는 순간들도 있습니다. 웃음의 밀도가 초반에 비해 후반에 눈에 띄게 떨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추천하는 대상은 분명합니다.
- 가족과 함께 부담 없이 웃고 싶은 분
- 김수미, 신현준, 김원희의 케미스트리를 좋아하시는 분
- 조폭 코미디 장르의 한국 고전을 한 편쯤 챙겨보고 싶은 분
★★★★☆ (4/5) — 완성도보다 따뜻함이 앞서는 영화입니다. 20년이 지나도 그 웃음이 기억에 남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영화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