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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청춘] 열 여덟이 묻는다, 당신은 괜찮냐고 (존재, 공감, 탈출)

by 어성초님 2026. 6. 2.

 

규칙보다 사람을 먼저 본다는 것,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예순 하나 먹은 버스 기사입니다. 매일 핸들을 잡고 수백 명을 태우고 내리다 보면 교복 입은 아이들이 꼭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걸 봅니다. 이어폰 꽂고, 아무것도 안 보이는 척하면서, 사실은 무언가를 간절히 보고 싶어 하는 눈빛. 《열여덟 청춘》을 보는 내내 그 아이들 얼굴이 겹쳐졌습니다. 이 영화가 저한테 말을 걸어온 건 그래서였습니다. "당신의 열여덟은 어땠냐"라고.

열여덟 청춘이 아름다워요

존재 — 인정받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오래 그걸 기억하는지

존재 인정(Validation), 쉽게 말하면 "네가 거기 있다는 걸 내가 안다"는 신호입니다. 심리상담 공부를 하면서 저는 이게 생존 본능만큼이나 근본적인 욕구라는 걸 배웠습니다. 인간은 규칙을 어겼을 때보다 존재를 무시당했을 때 더 크게 무너진다는 겁니다.

신임 담임 정희주는 부임 첫날부터 파격입니다. 반장도 사물함도 돌아가며 맡고, 휴대폰도 자율에 맡깁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 제안 자체가 아닙니다. 희주가 그 제안을 통해 아이들한테 전달하는 메시지가 핵심입니다. "나는 너희를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 한 문장이 교실 안 공기를 바꿉니다.

수행평가에도 들어가지 않는 감정일기를 과제로 내는 장면에서 저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심리상담 이론에서는 이걸 정서 인식 훈련(Emotional Awareness Training), 즉 자기감정을 언어로 인식하고 기록하는 작업이라고 부릅니다. 점수와 무관하게 "네 감정이 중요하다"라고 선언하는 행위입니다. 10년 전, 사기 피해를 당하고 세상에 문을 닫아걸었을 때 저를 다시 세워준 것도 결국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판단 없이 "왜 그랬는지"를 물어봐 준 누군가. 그때 그런 사람이 한 명만 더 있었다면 얼마나 달랐을까. 그 생각이 영화를 보는 내내 멈추질 않았습니다.

어일선 감독은 이 장면을 조명 하나 드라마틱하게 쓰지 않고 조용히 담아냅니다. 거창한 연설도 없고 음악도 절제되어 있습니다. 그 고요함이 오히려 더 오래 가슴에 남습니다. 교실이라는 공간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감정을 묵살해 왔는지를 감독은 대사가 아니라 분위기로 고발합니다.

주인공 이순정이 왜 그토록 교실을 답답해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답은 간단합니다. 거기서 자신이 '이순정'이 아니라 '학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름 없는 자리. 그게 열여덟을 가장 외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공감 — 오지랖이라고 불리는 것이 사실은 무엇인지

공감(Empathy)은 감정을 함께 느끼는 것이고, 동정(Sympathy)은 감정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겁니다. 이 둘의 차이를 모르는 어른이 아이를 망칩니다. 희주 선생은 공감하는 사람입니다. 순정은 처음에 그 공감을 오지랖으로 읽습니다. 당연합니다. 진짜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은 관심을 의심합니다.

전소민은 이 역할을 놀라울 만큼 세밀하게 연기합니다. 희주가 순정한테 다가갈 때 쓰는 표정이 애틋하지도 않고 가르치려 들지도 않습니다. 그냥 있어 줍니다. 그 '있어 줌'의 연기가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면서 모든 걸 하는 배우가 좋은 배우입니다. 전소민이 그랬습니다.

김도연이 연기하는 이순정은 반대로 '막고 싶은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합니다. 스와힐리어 공책을 덮는 손, 대화를 끊는 짧은 대답들. 저는 그 디테일에서 중국 주재원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낯선 땅에서 8년을 보낼 때, 저도 감정을 누르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탈출 계획 같은 것도 없이 그냥 버텼습니다. 순정처럼 아프리카행을 꿈꾸지는 않았지만,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싶다는 그 마음만큼은 똑같이 알고 있습니다.

희주가 감춰온 슬픔을 순정이 눈치채는 장면이 이 영화의 진짜 전환점입니다. 공감은 강자가 약자한테 베푸는 게 아닙니다.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알아봐 주는 것, 그게 진짜 공감입니다. 나라면 그 순간 어땠을까. 저였다면 아마 그 선생을 더 오래 의심했을 겁니다. 순정이 결국 마음을 여는 그 속도가 오히려 리얼했습니다.

서사적 공명(Narrative Resonance), 즉 관객이 스크린 속 인물의 감정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이 이 영화엔 여러 번 있습니다. 그 순간마다 감독은 음악을 빼거나 줄입니다. 침묵이 감정을 더 크게 만드는 연출입니다. 인디영화가 대형 상업영화보다 이 기술을 더 잘 씁니다. (출처: 인디스페이스)

탈출 —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왜 비겁하지 않은지

열여덟 친구들

순정이 스와힐리어를 공부하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입니다. 아프리카로 탈출하겠다는 계획. 어른들 눈에는 철없어 보이는 그 꿈이 사실은 얼마나 진지한 자기 보호 본능인지를 감독은 판단 없이 담습니다.

도피(Avoidance)와 탈출(Escape)은 심리학에서 다르게 봅니다. 도피는 문제를 외면하는 것이고, 탈출은 자신을 살리기 위해 환경을 바꾸려는 시도입니다. 순정의 아프리카 꿈은 도피가 아닙니다. 그건 열여덟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자기 선언입니다. "나는 여기서 이대로 끝나지 않겠다"는.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경상도 촌구석에서 서울로 올라와 살아남겠다고 버텼던 스무 살 무렵, 그때 그 버팀이 탈출이었는지 도피였는지 한동안 헷갈렸습니다. 심리상담사 공부를 하면서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도망치는 동시에 살아남으려 하는 것, 그게 사람입니다.

희주 선생이 순정의 아프리카 꿈을 "말도 안 된다"라고 꺾지 않는 것,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교육 철학입니다. 비지시적 상담(Non-Directive Counseling), 쉽게 말하면 답을 주지 않고 스스로 찾도록 옆에 있어 주는 방식입니다. 칼 로저스(Carl Rogers)가 주창한 이 접근법은 상대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을 핵심으로 합니다. 희주가 교실에서 하는 일 전체가 그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출처: 한국상담학회)

우등생 김경희와 나머지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부딪히는 과정도 이 '탈출' 주제와 연결됩니다. 경희는 어쩌면 모범생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는 또 다른 형태의 탈출 욕구를 가진 아이입니다. 다들 자기만의 방식으로 지금 이 자리가 전부가 아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게 열여덟이고, 어쩌면 예순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60년을 넘게 살면서 규칙을 어기는 것보다 규칙 뒤에 숨은 사람을 못 보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걸 배웠습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규칙을 잘 지키는 게 아니라, 그 규칙 너머를 볼 수 있는 눈을 갖는 일입니다. 이 영화는 그 단순하고 중요한 진리를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전합니다.

이 영화는 교육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청춘 멜로도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제대로 된 공감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봐야 할 영화입니다. 10대 자녀를 둔 부모라면 더더욱. 그리고 저처럼 한때 누군가 "왜 그랬는지" 물어봐 줬다면 달랐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진 모든 분들께 권합니다.
101분이 짧습니다. 그게 이 영화의 가장 정직한 칭찬입니다.

참고: https://indiespace.kr/491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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