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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나날] 낯선 땅에서 나를 만났고,그 모든 시간이 "나를 알게" 해주었다

by 어성초님 2026. 6. 15.

여행과나날

2006년 봄이었습니다. 웨이하이 외곽 공단 지역, 회사가 마련해 준 숙소는 방 세 개짜리였고 냉장고도 있었습니다. 넓었습니다. 근데 그게 문제였습니다. 넓은 방에 혼자 있으면 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복도에서 들려오는 낯선 언어, 그리고 아무것도 아닌 침묵. 그때 저는 고독인지 자유인지를 한참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퇴근 후 아무 방향으로나 걸어 들어갔던 골목들이 익숙해질수록 오히려 더 낯설게 느껴졌고, 장날 시장 한복판에서 손짓 발짓으로 음식을 사 먹으면서도 저는 분명히 거기 있었지만 거기에 속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여행과 나날》(旅のおわり世界のはじまり, 2019)을 보는 내내 가슴 한쪽이 계속 당겼습니다. 영화는 2019년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공식 초청된 작품으로, 우즈베키스탄 현지 올로케이션으로 촬영됐습니다. 일본 방송국 NHK가 제작했고, 배우 마에다 아츠코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TV 취재팀의 일원으로 우즈베키스탄에 파견된 한 여성이 낯선 땅에서 서서히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줄거리라 부를 만한 사건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영화는 2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내내 시선을 붙잡습니다.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오래 머물게 되는 영화입니다.

"낯선 땅"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낯선 땅"은 지도 위의 좌표가 아닙니다. 저는 그걸 상하이에서 배웠습니다. 언어가 다르고, 음식이 다르고, 사람들이 웃는 방식조차 달랐습니다. 그런데 진짜 낯설었던 건 그 외부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 환경 속에 던져진 제 자신이 낯설었습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이방인이 된다는 것은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 나아가 자기 인식의 문제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언어로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여행과 나날》의 구로사와 감독은 바로 이 지점을 카메라로 정확히 짚습니다. 롱테이크(long take), 즉 편집 없이 한 장면을 길게 가져가는 촬영 기법을 통해 관객에게 인물과 함께 그 공간 속에 가만히 머물게 합니다. 광활한 사마르칸트 벌판, 오래된 시장 골목, 낯선 사람들의 시선들. 카메라는 서두르지 않습니다. 주인공 요코(마에다 아츠코)가 그 풍경 안에서 무엇을 느끼는지 직접 말해주지 않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 즉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 요소들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암시할 뿐입니다. 광활한 대지에 비해 유독 작게 찍힌 인물의 뒷모습이 그 자체로 이방인의 심리를 설명합니다.

주인공이 왜 그 먼 땅에서 자꾸 노래를 부르려 하는지,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취재팀 소속이니 역할은 있고, 숙소도 있고, 동행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내내 어딘가에 속하지 못하는 표정입니다. 그것은 '낯선 땅'이 물리적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거리 문제라는 것을 감독이 조용히 가리키는 방식입니다. 저는 이 장면들을 보면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공단 골목을 아무 이유 없이 걸어 들어갔던 그 밤들을 다시 꺼냈습니다. 거기에 있었지만 거기가 아니었던, 그 기묘한 감각.

낯선 땅은 지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는 그 순간, 어디서든 낯선 땅은 시작됩니다.

"홀로 서야 할 때" 비로소 두려움과 마주한다

"홀로 서야 할 때"라는 표현을 저는 오랫동안 낭만적인 말로 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자리에 서보면 낭만이 아닙니다. 두렵습니다. 2019년, 중국에서의 MRO 사업을 접고 귀국하면서 저는 처음으로 제 이름 석 자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경험했습니다. 직함도 없고, 소속도 없고, 다음 달 수입도 불투명했습니다. 그 무렵 버스 핸들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핸들을 잡고 있으면서도 이게 내가 맞나 싶은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체면이니 자존심이니 하는 것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습니다. 그런데 그 두려움을 피해서는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영화 속 요코가 가장 긴장된 얼굴을 하는 장면은 전쟁이나 위기의 순간이 아닙니다. 낯선 무대에 홀로 올라 노래를 불러야 하는 순간입니다. 그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많은 클로즈업(close-up), 즉 인물의 얼굴을 화면 가득 당겨 찍는 기법이 사용됩니다. 감독은 그 순간에만 카메라를 얼굴 가까이 가져갑니다. 왜일까요? 저는 그게 두려움을 숨기지 않고 보여주겠다는 감독의 선택이라고 읽었습니다. 잘 부르는 노래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거기 서 있는다는 것, 소리를 낸다는 것, 그것이 이 장면의 핵심입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봤습니다. 아마 도망쳤을 겁니다. 아니, 실제로 오랫동안 도망쳤습니다. 두려움 앞에서 제가 주로 쓴 방법은 더 바빠지는 것이었습니다. 더 많은 자격증을 따고, 더 많은 일을 만들어서 두려움이 파고들 틈을 없애는 방식이었습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심리상담사 공부도, 어떤 의미에서는 그 두려움을 우회하려는 시도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2023년 9월, 예기치 않게 성령충만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두려움을 우회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한가운데 그냥 서 있어도 괜찮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연출 미덕은 두려움을 해소해 주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영화는 요코의 불안을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그냥 두 눈 뜨고 거기 서 있게 합니다. 그리고 그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을 조용히 암시합니다. 그것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며칠이 지나도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그 모든 시간이 "나를 알게" 해주었다

"나를 알게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저는 꽤 늦게 알았습니다. 중국에서도 몰랐고, 귀국 초반에도 몰랐습니다. 새벽 네 시, 아직 서울이 깨어나기 전 텅 빈 도로를 달리면서 서서히,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허리가 아프고 잠은 네 시간을 넘기기 힘든 날들이지만, 핸들을 잡고 달리는 그 침묵 속에서 저는 제 자신과 가장 솔직하게 마주하게 됩니다. 아무도 없고, 꾸밀 이유도 없는 그 새벽 도로가 제게는 일종의 고백의 공간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요코가 노래를 마치고 내려올 때 그녀의 얼굴에는 성취의 표정이 없습니다. 그냥 끝났다는 얼굴입니다. 저는 그 표정이 오히려 더 정직하다고 느꼈습니다. 자아 발견이 드라마틱한 장면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감정의 정착 같은 것이 진짜 변화의 얼굴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말없이 보여줍니다. 이것이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부분입니다.

다만 한 가지, 솔직하게 짚고 싶습니다. 이 영화의 고독은 어느 정도 선택된 고독입니다. 주인공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고, 그녀가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것은 누군가의 강요가 아닙니다. 반면 생계 앞에서 밀려난 이방인 감각, 선택이 아니라 상황이 밀어 넣은 고독은 결이 다릅니다. 사업을 접고 처음 버스 기사 유니폼을 입었을 때의 그 감각은 이 영화가 담아내는 쓸쓸함과는 온도가 좀 다릅니다. 영화가 그 차이까지 건드렸다면 더 넓은 울림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게 이 작품의 유일한 아쉬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영화에 고맙습니다. 상하이의 골목도, 귀국 후의 공백도, 새벽 도로의 침묵도, 그 모든 것이 허투루 흘러간 시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이 영화가 조용히 확인해 줬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됩니다. 거기 서서 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라는 것. 지금 생각하면 그 오랜 이방인의 시간들이 저를 만들어 온 시간이었습니다.

《여행과 나날》은 뚜렷한 사건이나 반전을 기대하는 분께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낯선 환경에서 일하거나 살아본 경험이 있는 분, 삶의 방향이 바뀌는 전환점을 지나고 있는 분, 혹은 아무도 없는 새벽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이라면, 이 영화의 침묵이 분명 말을 걸어올 것입니다.

참고:
칸국제영화제 공식 아카이브 — 2019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필모그래피 — 일본영화데이터베이스 J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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