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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쩔수가 없다 주역들

    지난 주말, 북한산 등산을 마치고 땀을 식히다가 CGV에 들어섰습니다. 박찬욱 감독에 이병헌, 손예진이라는 조합이라면 무조건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리는 뻐근했지만 마음은 뭔가 묵직한 것을 담고 싶었습니다. 평소 버스 운전 중 공백 시간이 생기면 영화 한 편이 큰 위로가 됩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해고 통보를 받은 그 멈춘 눈빛이 내 얼굴이었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25년 경력의 제지 전문가 유만수(이병헌)가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그 장면에서 저는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 앞으로 몸을 기울였습니다. 이병헌은 그 순간 분노하지 않습니다. 눈물도 쏟지 않습니다. 그냥 멍하니 있습니다. 그 공백이 오히려 더 무겁습니다. 관객은 그 정지된 표정 속에서 25년이라는 시간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저는 그 눈빛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1984년 대기업 공채로 입사해 생산관리·공장합리화·원가절감 운동을 이끌며 살아왔고, 중국 산동성에서 8년간 공장 관리책임자로 수백 명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다 중국 MRO 사업이 무너지고 주식 리딩 사기까지 당하며 한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졌던 그 시절이 있었습니다. 만수가 마트 계산대 앞에 서는 장면이 나옵니다. 25년 전문가가 바코드를 찍고 있는 모습. 저는 그 장면에서 피식 웃었지만 동시에 눈이 찡해졌습니다.

    저도 2019년 버스 운전을 시작하기 전 쿠팡 배달과 배민 배달을 했습니다. 새벽 네 시에 물류센터에서 무거운 박스를 들고 아파트 계단을 오르던 날, 허리디스크가 욱신거려 계단참에 잠깐 주저앉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제 머릿속에 든 생각은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가 아니라 '이걸 해내야 내일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수도 그랬을 겁니다. 자존심보다 가족이 먼저였던 것입니다.

    예전에는 '실직은 능력 없는 사람의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다르게 봅니다. 시스템이 사람을 밀어낼 때 능력은 방패가 되지 않습니다. 만수의 멈춘 눈빛은 무능함이 아니라 시스템에 의해 배신당한 사람의 얼굴입니다. 당신은 이런 순간을 겪어본 적 있습니까?

    굴욕을 관찰로 바꾼 순간 만수는 이미 다른 사람이었다

    이 영화에서 캐릭터 전환점(character arc, 인물이 변화하는 서사적 곡선)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장면은 선출 반장(박희순) 앞에서 굴욕을 당하는 장면입니다. 이력서를 내밀었더니 비웃음이 돌아옵니다. 그런데 이병헌은 그 순간 눈빛을 내리깔지 않습니다. 오히려 눈을 뜨고 상대방을 관찰합니다. 분노가 아닌 측정입니다. 이미 무언가를 결심한 사람의 냉정한 시선. 그것이 섬뜩합니다.

    저도 한국에 돌아와 재취업을 알아보던 시기, 면접관이 저보다 스무 살 어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이가 좀 있으시네요"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끝나는 분위기. 중국에서 수백 명을 이끌고 공장 생산성을 수십 퍼센트씩 끌어올렸던 사람이, 그 경험을 설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상황. 그 굴욕이 사람을 어디로 몰고 가는지 저는 몸으로 압니다.

    박찬욱 감독의 미장센(mise-en-scène, 화면 안에서 배치되는 모든 시각 요소)이 이 부분에서 특히 날카롭습니다. 만수의 집 실내조명은 지나치게 따뜻하고 가정적입니다. 그 과장된 온기 속에서 살인을 결심하는 가장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구조 자체가 블랙 코미디(black comedy, 어두운 현실을 웃음으로 비틀어 전달하는 장르)의 본질입니다. 카메라는 시종 만수의 시점에 오래 머뭅니다. 피해자들이 쓰러지는 장면보다, 만수가 그 이전에 얼마나 정당하게 무시당했는지를 먼저 충분히 보여줍니다. 그래서 관객은 어느 순간 "저 사람은 없어져야 해"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카메라는 슬쩍 물러섭니다. 당신도 동조했다고 말하듯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에서도 이병헌은 격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덤덤하고 절차적입니다. 마치 공장에서 불량품을 라인 밖으로 걷어내듯. 저는 그 몸짓을 보면서 생산관리 시절 매일 불량률 분석 보고서를 작성하던 제 손을 떠올렸습니다. 효율을 추구하도록 훈련된 사람이 그 논리를 다른 곳에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 불편한 질문을 이 영화는 웃음 뒤에 숨겨놓습니다.

    손예진의 미리는 또 다른 층위의 연기입니다. 그녀는 남편이 무엇을 하는지 전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묻지 않습니다. 그 침묵이 공모(共謀)입니다. 식탁 너머 남편을 바라보는 눈빛, 취업 성공 소식을 들었을 때 안도인지 체념인지 모를 미소.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연기는 총소리가 나는 장면이 아니라 두 사람이 말없이 밥을 먹는 장면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신의 식탁 풍경은 어떻습니까?

    나는 다른 길을 걸었지만 그 벼랑 끝을 안다

    만수의 선택과 저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그러나 그 벼랑 끝에 서본 감각만큼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한 사람을 구석으로 몰아갈 때 그 사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 영화는 풍자(satire, 사회적 모순을 비틀어 비판하는 표현 방식)와 스릴러 사이에서 정직하게 보여줍니다.

    저는 2023년 9월 28일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날 이후 뭔가가 바뀌었습니다. 분노가 기도로 바뀌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다음 날 아침 헬스장 러닝머신 위에서 땀으로 씻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2024년 10월부터는 매일 1시간 이상 러닝과 턱걸이, 허리 강화 운동을 했고, 그토록 괴롭히던 허리디스크가 많이 호전됐습니다. 2025년 12월 21일에는 하나님의 힘으로 40년 넘게 피워온 담배를 끊었습니다. 그날 아침 첫 번째 담배를 집지 않았을 때의 그 느낌, 아직도 생생합니다.

    원작인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The Ax)》는 미국 중산층 가장의 이야기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그것을 한국 사회 구조 속으로 이식(移植)하면서, 연공서열·나이 차별·IMF 이후 세대의 집단적 상흔을 겹쳐놓았습니다. 그 선택이 탁월합니다. 만수는 악인이 아닙니다. 그가 악인처럼 보이게 만드는 구조가 문제입니다. 박찬욱은 그 구조를 직접 비판하지 않습니다. 관객이 만수에게 공감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만들면서 슬그머니 그 질문을 건넵니다.

    60대 초반인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내내 불편했습니다. 그 불편함이 좋았습니다. 좋은 영화는 편안함을 주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흔들어놓습니다. 만수가 결국 재취업에 성공하고 가정의 평화를 되찾은 듯 보이는 엔딩에서, 저는 웃음보다 �긴 침묵이 먼저 왔습니다. 이 평화는 진짜인가. 이 사회는 그 평화를 허락할 자격이 있는가. 당신은 그 엔딩 장면에서 무엇을 느꼈습니까?

    이 영화는 50대 이상, 직장 상실이나 재취업 실패를 경험한 분, 평범하게 살아왔는데 어느 날 구석으로 몰린 기억이 있는 분께 특히 강하게 추천합니다.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적 쾌감을 원하는 분에게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이 영화의 진짜 값어치는 웃음 뒤에 남는 불편한 질문에 있습니다. 138분이 결코 길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장센과 이병헌의 절제된 연기 앙상블(ensemble, 여러 요소가 하나의 인상을 만들어내는 조화)을 극장 스크린으로 경험하십시오.

    ★★★★☆ (4/5) — 만수의 눈빛이 불편하게 익숙한 분이라면, 이 영화는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참고 및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