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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둠스데이] 질서의 역설 (통제, 희생, 공허)

by 어성초님 2026. 6. 15.

어벤저스:둠스데이

2006년, 중국 웨이하이에서 주재원으로 일하던 저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스스로를 설득했습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내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 확신이 없으면 하루를 버틸 수 없었으니까요. 어벤저스: 둠스데이를 보는 내내, 저는 그 시절 제 얼굴을 스크린 위 닥터 둠에게서 자꾸 찾고 있었습니다.

완벽한 통제는 자유의 부정에서 시작된다

어벤져스: 둠스데이는 2025년 5월 개봉한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멀티버스 사가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앤서니·조 루소 형제가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저 이후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았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아이언맨이 아닌 닥터 둠으로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극장은 가득 찼습니다. 닥터 둠은 멀티버스의 붕괴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현실 자체를 재설계하려 하고, 어벤저스는 그 계획의 한가운데 흩어진 채로 다시 집결합니다.

여기서 아크 빌런(Arc Villain)이란, 단일 영화의 악당이 아니라 여러 작품에 걸쳐 세계관 전체를 움직이는 중심 적대 세력을 의미합니다. 타노스가 그랬듯, 둠은 단순히 세상을 파괴하려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는 세상이 스스로를 망치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설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는 — 무섭게도 — 일종의 논리가 있습니다.

저는 사회복지사와 심리상담사 자격증을 공부하면서 통제 욕구의 심리 기제를 조금씩 이해하게 됐습니다. 인간이 통제에 집착하는 건 대부분 고통의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예측 불가능한 세계에서 한 번 크게 무너진 사람은, 다시는 그 자리에 서고 싶지 않아서 모든 변수를 직접 쥐려 합니다. 2019년 사기 피해 이후 저도 그랬으니까요. 아무것도 믿지 않고, 아무것도 맡기지 않고, 제 손 안에서만 움직이는 세계를 만들려 했습니다. 그게 얼마나 소진되는 일인지는 한동안 몰랐습니다.

닥터 둠이 틀린 건 그가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해법을 찾았지만, 그 해법의 재료로 타인의 자유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틀렸습니다. 나라면 같은 자리에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질서를 위한 희생은 결국 인간성을 지운다

영화의 중반부, 히어로들이 하나씩 둠의 계획에 의해 무력화되는 시퀀스는 이 작품에서 가장 긴 호흡의 장면입니다. 화려한 액션보다 그 정적인 무력감이 더 오래 남았습니다. 루소 형제는 여기서 서사적 압박(Narrative Compression) 이는 다수의 인물과 사건을 동시에 조이면서 관객이 숨 쉴 틈 없이 압도감을 느끼게 만드는 편집 기법입니다  을 능숙하게 사용합니다. 다만 그 속도가 때로는 개별 캐릭터의 감정선을 희석시켰고, 그게 제가 이 영화에서 아쉬웠던 부분입니다.

연대가 진짜 감동이 되려면, 그 이전에 각자의 고독이 충분히 보여야 합니다. 히어로들이 왜 다시 함께 서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스펙터클 사이사이에 조금 더 자리를 얻었으면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희생을 다루는 방식은 진지합니다. 둠의 논리 안에서 희생은 계산입니다. 몇을 잃으면 더 많이 살릴 수 있다는 수식. 반면 히어로들의 희생은 계산 이전의 것, 그냥 내가 지금 이 사람 곁에 있겠다는 선택입니다. 저는 새벽 버스를 몰면서 그와 비슷한 감각을 가끔 느낍니다. 텅 빈 도로 위, 핸들을 잡고 있는 건 거창한 사명이 아니라  오늘 이 노선 위에 탄 승객 한 명을 안전하게 데려다주겠다는, 그 작은 책임감 하나입니다.

MCU의 희생 서사에 대한 분석은 마블 공식 스토리 아카이브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출처: Marvel Entertainment](https://www.marvel.com/articles/movies/avengers-doomsday)).).) 다만 제가 느낀 건  희생의 의미는 결국 그것이 자발적인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강요된 희생은 착취이고, 자발적인 희생은 사랑입니다. 둠이 끝내 실패하는 건 그 차이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얻은 자가 마주한 것은 공허였다

영화의 마지막, 둠이 원하던 질서를 손에 넣는 순간 — 스크린 위의 그 표정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승리한 자의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얼굴에서 이상하게도 2013년 귀국 직후 서울 도로를 혼자 걷던 제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사업이 무너지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밤. 그때 가장 무서웠던 건 두려움이 아니라 아무 감각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카타르시스 결핍(Cathartic Void)이란, 극적 긴장이 해소된 이후 관객이나 인물이 느껴야 할 감정적 해방감 없이 텅 빈 상태만 남는 내러티브 효과를 의미합니다.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그 공허를 관객에게도 전달합니다. 둠이 원한 것을 얻는 순간, 우리는 함께 그 공허의 가장자리에 서게 됩니다.

그 공허가 어디서 오는지를 저는 신앙으로 조금 이해하게 됐습니다. 2023년 성령충만의 경험 이후, 저는 제가 집착하던 많은 것들의 정체를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채워지지 않는 욕구가 아니라, 채우는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요. 2024년 9월 세례를 받던 날, 물 위에 서는 그 감각이  이상하게도 이 영화 마지막 장면과 겹쳐 보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만 비로소 시작되는 무언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이 영화에서 아이언맨의 유산을 짊어진 채, 정반대의 인물을 연기합니다. 그 캐스팅 자체가 이미 하나의 질문입니다. 토니 스타크가 자기희생으로 세계를 구했다면, 빅터 폰 둠은 세계를 구하려다 자기 자신을 잃었습니다. 무엇이 달랐는가. 저는 그것이 결국 타인에게 기댈 수 있었는가, 없었는가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큰 선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킬 수 있는가"라는 이 영화의 물음은 오늘 우리 현실에서도 유효합니다. 기술과 자본이 효율의 이름으로 개인을 재배치하는 시대에, 이 영화는 오락의 외피를 두른 진지한 경고입니다. IMDb에 기록된 작품 정보와 평단 반응도 그 맥락에서 참고할 만합니다([출처: IMDb](https://www.imdb.com/title/tt14513804/)).).)

MCU에 오랜 애정을 가진 분, 지금 자신의 삶에서 통제와 내려놓음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분께 이 영화를 권합니다. 화려한 액션을 원하시는 분도 만족하실 수 있지만, 그보다 오래 남는 건 둠의 텅 빈 승리입니다.

참고:
[Marvel Entertainment — Avengers: Doomsday](https://www.marvel.com/articles/movies/avengers-doomsday))
[IMDb — Avengers: Doomsday](https://www.imdb.com/title/tt14513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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