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 운행을 마치고 늦은 밤 집에 들어와 넷플릭스를 켰습니다. 딱히 뭘 볼 생각도 없었는데 추천 목록에 뜬 《애덤 프로젝트》를 그냥 틀었습니다. 두 시간 가까이 보고 나서 한동안 리모컨을 손에 쥔 채 멍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기 때문입니다.
캐치볼 한 장면이 40년을 꺼낸 이유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2050년의 전투기 조종사 애덤(라이언 레이놀즈)이 시간 여행 중 2022년에 불시착해 12살의 자기 자신(워커 스코벨)을 만나고, 두 사람이 함께 2018년으로 가서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 루이스(마크 러펄로)와 재회한다는 이야기입니다. SF적 설정이 뼈대지만, 정작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은 거기 있지 않습니다.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건 세 사람이 함께 캐치볼을 하는 장면입니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저 아들들과 공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애덤은 압니다.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걸. 어른 애덤이 눈물을 억지로 참으면서 공을 던지는 그 표정을, 저는 한참 동안 바라봤습니다.
저도 아버지에게 하지 못한 말들이 있습니다. 1984년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 아버지가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기억합니다. 그때 "고맙습니다, 아버지 덕분입니다"라는 말을 끝내 입 밖에 내지 못했습니다. 무뚝뚝한 성격 탓이라고 스스로 변명했지만, 사실은 어색함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하지 못한 말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 있더군요.
캐치볼 장면이 그렇게 마음을 건드린 이유가 거기 있었습니다. 감독 숀 레비는 이 영화에 대해 "시간 여행 영화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영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특수효과나 액션이 기억에 남는 게 아니라, 공 하나를 주고받는 세 사람의 침묵이 남습니다. 저처럼 무뚝뚝하고 말수 적은 사람도 그 장면에서는 몰래 눈물을 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른 애덤이 12살 자신에게 한 말이 저를 찌른 이유
이 영화의 진짜 핵심은 어른이 된 자신이 어린 자신에게 건네는 말입니다. 어른 애덤은 12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네가 겪는 고통은 네 잘못이 아니야."
그 대사를 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영화 속 12살 애덤이 아니라 제가 찔린 기분이었습니다. 40년 넘는 세월 동안 수없이 스스로를 탓했습니다. 사기를 당했을 때도, 사업이 실패했을 때도, 직장을 옮겨야 했을 때도 "내가 뭔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감독은 왜 굳이 '어른 자신'과 '어린 자신'이 직접 만나는 설정을 선택했을까요? 부모나 친구가 위로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자기 자신이 건네는 위로는, 다른 어떤 말보다 깊숙이 파고듭니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남이 해줄 때와, 어른이 된 자신이 직접 해줄 때의 무게가 다른 것입니다. 그 설정 하나만으로 이 영화는 단순한 SF 이상이 됩니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자랐던 어린 시절의 저를 가끔 떠올립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이 영화를 보면서 진지하게 생각해봤습니다.
-앞으로 사기도 당하고 크게 실패하는 날도 온다
-그래도 결국 버티게 되어 있으니 지금 너무 겁먹지 마라
-아버지께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나중으로 미루지 마라
특히 세 번째 말을 꼭 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그걸 몰랐고, 결국 하지 못했으니까요.
라이언 레이놀즈의 연기는 그의 장기인 가벼운 입담이 출발점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아래에 단단하게 가라앉은 슬픔이 같이 느껴집니다. 캐치볼 장면에서 그의 눈이 흔들리는 순간, 관객은 그게 '연기'가 아니라 '감정'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 차이가 배우와 좋은 배우를 가르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아들의 아버지로서 이 영화 앞에 서다
저는 아들이 둘 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두 방향으로 동시에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들이었고, 동시에 아버지이기도 합니다.
충분히 좋은 아버지였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봤습니다. 버스 운행을 마치고 늦게 귀가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함께 놀아주는 시간이 충분했는지, 아이들이 힘들다는 신호를 보낼 때 제대로 알아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영화 속 루이스처럼, 저도 아이들에게 '그냥 아빠'가 아닌 '기억되는 아빠'이고 싶다는 생각이 이 영화를 보고 들었습니다.
나라면 어땠을까요? 만약 제가 어른 애덤처럼 돌아가신 아버지를 딱 한 번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저는 무슨 말을 했을까요? 아마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옆에 서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게 저라는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침묵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위키백과 애덤 프로젝트 항목에 따르면 이 영화는 2022년 3월 넷플릭스 공개 첫 주에 영어권 영화 1위를 기록했습니다. 로튼 토마토 비평가 점수는 67%에 그쳤지만, 관객 점수는 90%에 달합니다. 비평가와 관객 사이의 그 온도 차이가 흥미롭습니다. 영화적 완성도를 따지는 눈에는 빈 곳이 보일 수 있지만, 자기 안에 비슷한 감정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빈 곳이 전혀 보이지 않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따뜻하게 남아 있는 분들, 혹은 반대로 아버지와의 관계에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있는 분들 모두에게 이 영화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닿을 것입니다. 저는 전자에 해당합니다. 아버지는 인자하고 말없이 뒤에서 지켜봐 주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 영화가 아팠습니다.
《애덤 프로젝트》는 SF 장르의 껍데기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어른이 된 자신과 어린 자신의 화해를 담은 가족 영화입니다. 아버지를 먼저 떠나보낸 분, 혹은 지금 자녀를 키우며 "나는 충분히 좋은 부모인가"를 고민해 본 적 있는 분이라면 특히 천천히 봐주셨으면 합니다. 화려한 영화는 아니지만, 오래 남는 영화입니다. 주관적 평점: ★★★★☆ (4/5)
참고: 위키백과 - 애덤 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