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4년, 저는 대기업 입사 첫날 상사의 눈빛 하나에 온몸이 굳었습니다. 살아남으려면 내 색깔을 지워야 한다고 배웠던 그 시절,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제 젊은 날의 자화상 같은 영화였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버스 핸들을 잡는 지금, 속편 소식을 접하고 나서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과연 우리는 성공을 향해 달려가면서 얼마나 많은 '나'를 잃어버렸을까요?
성공의 속도가 만들어낸 자아의 균열
2006년 개봉한 1편에서 앤디(앤 해서웨이)는 패션 잡지 런웨이의 전설적인 편집장 미란다 프리슬리(메릴 스트립) 밑으로 들어가며 서서히 자신을 잃어갑니다. 속편은 그 이후의 앤디,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라는 새로운 권력 지형 앞에 선 미란다의 이야기를 이어갈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줄거리만 보면 패션계의 화려한 세계를 다시 보여주는 것 같지만, 저는 이 영화가 결국 권력 구조 앞에서 사람이 어떻게 변형되는가를 묻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에서 자주 쓰이는 연출 기법 중 하나가 미장센(mise-en-scène)입니다. 여기서 미장센이란 화면 안에 배치되는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의상·구도·배우의 위치를 통해 감정과 권력관계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1편에서 미란다는 항상 화면 중앙을 장악하고 앤디는 그 주변을 맴돌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구도 자체가 이미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저도 2004년 중국 주재원으로 떠났을 때 비슷한 균열을 경험했습니다. 겉으로는 승진이고 기회였지만 속은 몹시 외로웠습니다. 언어도, 문화도, 관계망도 낯선 땅에서 저는 매일 처음부터 저를 증명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제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잊어갔습니다. 미란다가 파리 호텔방에서 민낯으로 혼자 앉아 있던 장면, 그 텅 빈 표정이 제 가슴을 친 이유가 바로 거기 있었습니다.
나라면 그 자리에서 어떻게 했을까요? 솔직히 저도 그 시절엔 떠날 용기가 없었습니다. 조직이라는 이름의 시스템은 개인을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바꿔놓습니다. 그것이 이 영화가 단순한 직장 코미디가 아닌 이유입니다.
타협과 신념 사이, 앤디의 선택
1편의 결말에서 앤디는 미란다의 전화기를 분수에 던집니다. 그 선택은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주었지만, 저는 언제나 그 장면 뒤에 오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엔 어떻게 살았는가?
영화 비평에서 자주 등장하는 개념이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입니다. 이는 주인공이 이야기 시작과 끝에서 내면적으로 얼마나 변화했는가를 나타내는 서사 구조를 의미합니다. 1편 앤디의 아크는 '순수 → 타협 → 각성'이었습니다. 속편이 진정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 각성이 지속 가능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또 다른 타협으로 이어졌는지를 정면으로 질문해야 합니다.
저는 2019년 사기 피해 이후 버스 운전석에 앉으며 비슷한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대기업 출신, 중국 사업가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새벽 도로를 달리는 일이 처음엔 수치스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핸들을 잡는 순간, 저는 남의 시선으로 정의된 나를 포기하는 선택을 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앤디가 전화기를 던진 것처럼요.
주인공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를 이해하려면,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심리상담을 공부하면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사람은 대개 '잃을 것이 없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을 때' 비로소 진짜 선택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앤디가 그랬고, 저도 그랬습니다.
속편이 이 지점을 외면하고 단순한 세대 갈등이나 패션쇼 볼거리로 채워진다면, 그건 상업적 소비에 그칠 것입니다. 영화 전문 매체 버라이어티는 속편 제작이 논의 중임을 보도하면서 "원작의 사회적 울림을 어떻게 현재화할 것인가가 과제"라고 짚었습니다(출처: Variety).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패션은 배경이고, 권력은 언어이며, 진짜 이야기는 그 사이에서 버티는 인간입니다.
나를 잃지 않는 것이 진짜 회복이다
2023년 9월 성령충만을 경험하고, 2024년 세례를 받으면서 저 안의 기준이 조용히 바뀌었습니다. 직함으로 나를 증명하려던 습관,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평가하던 반사적 태도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회복이었습니다. 화려한 것으로의 귀환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다시 아는 것.
영화에서 이런 내면의 전환을 담아내는 기법을 내레이션 포칼리제이션(narrative focalization)이라고 합니다. 이는 이야기가 누구의 시선과 의식을 통해 전달되는가를 결정하는 서사 기법을 의미합니다. 1편은 앤디의 시선으로 미란다를 바라보는 구조였지만, 속편이 미란다 자신의 내면을 더 깊이 파고든다면 이야기의 무게 중심이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메릴 스트립이라는 배우라면 그 전환을 능히 감당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저는 요즘 하루 4시간도 채 못 자면서 버스 운전, 보험, 공부를 병행합니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이게 회복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화려한 이력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성실하게 버티는 것. 사회복지사·심리상담사 자격증을 공부하면서도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먼저 내 마음의 지층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요.
미란다도 결국 같은 지층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냉혹함은 시스템이 만들어낸 것이고, 그 안에는 공허함이 있었습니다. 속편이 그 공허함을 직면하는 이야기를 담는다면, 단순한 후속 편이 아니라 진짜 완결 편이 될 수 있습니다.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말했습니다(출처: Viktor Frankl Institute). 앤디가 전화기를 던진 것도, 미란다가 빈 호텔방에 홀로 앉은 것도, 그 선택의 언어로 읽힙니다. 그리고 저도 새벽 버스 도로 위에서 그 자유를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조직 생활의 아픔을 아는 분, 성공과 자아 사이에서 흔들려본 분, 혹은 지금 그 기로에 서 있는 분께 이 영화를 권합니다. 속편이 나온다면, 저는 꼭 극장에서 볼 생각입니다. 60 평생의 경험을 들고 앉아, 미란다와 앤디가 나눌 눈빛을 기다릴 것입니다.
개인 평점: ★★★★☆ (4.0/5.0) — 1편 기준, 속편은 그 위를 넘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참고:
출처1: Variety — Devil Wears Prada Sequel
출처 2: Viktor Frankl Institute